"시장 거스르는 '소주성' 잘못 인정하고 경제 설계도면 다시 그려야"

다산경제학상 수상자에게 듣는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
김윤정 서강대 교수
‘제38회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오른쪽)와 ‘제8회 다산 젊은 경제학자상’을 받은 김윤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11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시상식 후 경제 현안을 놓고 토론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경제정책의 설계 도면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 역할은 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뒷받침하는 데 그쳐야 한다.”(김윤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제38회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인호 교수와 ‘제8회 다산 젊은 경제학자상’을 받은 김윤정 교수는 11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시상식 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다산 정약용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기리고 경제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제정된 두 상은 국내 경제학자에게 수여되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정부, 시장원리 거스르고 있다”

두 경제학자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이 교수는 “시장원리라는 ‘중력’에 따라 순리대로 흐르는 것이 경제”라며 “정부가 이념에 매몰된 정책을 펴면서 시장 순리를 거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익과 비용을 고려한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을 정부가 정책으로 바꿀 수 없다”며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부동산 가격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이 교수는 긍정적 경기 지표를 찾기가 어려운 현실을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제부처 수장들은 현 경제정책의 성과로 실업률 하락 등을 들고 있는데 이는 경기가 좋아진 결과라기보다는 재정을 풀어 단기 일자리를 만들어낸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중장기적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임시 일자리 만들기 등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빠르게 줄어드는 기업 투자에 대해 염려했다. 그는 “오락가락하는 경제정책 탓에 기업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며 “이런 가운데 대외 여건마저 악화되자 기업들이 움츠러들었고 투자를 줄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기 회복능력 약화”두 경제학자는 곳곳에서 경제 위기의 징후가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매주 주말 시내에서 집회가 열리는 등 사회 분위기가 극도로 혼란스럽다”며 “혼란한 사회 분위기와 대외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가계·기업의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잠재력이 줄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 교수는 “그동안 한국 경제는 경기 침체기를 겪다가도 금세 회복할 만큼의 저력과 회복력을 갖췄다”면서도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생산가능인구도 줄면서 이 같은 회복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도 경고했다. 이 교수는 “불황기에는 산업·기업의 부실이 정리되면서 경제의 기초체력이 올라가는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최근 우리 경제가 둔화되고 침체기에 진입했지만 부실이 정리되거나 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과 기업의 부실이 한층 깊어지는 가운데 경제의 기초체력마저 약화될 경우 경기가 반등할 계기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수출 지표가 나빠지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올 들어 각종 수출 지표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며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지 못한 데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글로벌 교역량이 대폭 축소된 여파”라고 말했다. 이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변수의 파급력이 크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것에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빨랐다”며 “불어난 가계부채는 다양한 파급경로를 거쳐 소비와 국내총생산(GDP)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두 교수는 디플레이션 진입 여부에 대해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징후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서울 집값 등 자산 가격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는 점을 볼 때 디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손을 쓰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 투자가 줄어드는 등 수요가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 경고음이 커지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통화정책 실효성 떨어져”

두 경제학자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효율적 재정정책을 주문했다. 그는 “기준금리가 내려가도 실물경제가 반응하지 않는 등 통화정책 유효성이 크게 약화됐다”며 “재정정책을 다시 설계해 우리 경제를 수렁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저기에 퍼주는 것이 아니라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재정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표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거두며 선전하는 것은 경제에 청신호라고 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다행스럽게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리는 등 민간부문이 제 역할을 다하면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며 “정부도 일본 수출규제 등에 적절히 대응하고 정치·외교 정책에 힘써서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규제완화로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늘어나는 규제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며 “규제완화와 투자유인 정책, 생산성을 높이는 대책 등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 가족과 제자들이 참석했다. 이 교수 부인 이경원 씨와 서울대 경제학부 제자들이 축하 꽃다발을 전달했다. 김 교수 부군인 김덕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참석해 ‘경제학 교수 부부’로 주목을 받았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