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진영' 자문 받고 설문조사한 에너지문화재단 [조재길의 경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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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 정서를 알고 있느냐”는 의원 질의가 이어지자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과 찬성하는 여론이 둘 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양한 여론 조사에선 탈원전 반대 의견이 훨씬 높게 나왔습니다. 다만 지난 5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발표한 ‘에너지 국민인식 조사’에선 상반된 결과가 나왔지요. 성 장관의 발언은 이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조사 결과를 염두에 둔 걸로 보입니다.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실시했던 이 여론 조사가 지극히 편향된데다 심지어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당시 “국민의 84%가 탈원전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뿌렸지요. 여론조사 회사는 메트릭스코퍼레이션이란 소규모 기업이었고, 지난 3월8일부터 4월5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국민 1000명과 원자력·석탄 발전소의 반경 10㎞ 이내 지역주민 2880명 등 총 3880명을 대면 조사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에너지정보문화재단 등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에너지 국민인식 조사’의 설문 문항을 만들기 전 총 4명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맡겼습니다. 자문위원 명단이 이번에 공개됐는데 이은영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대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전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과학부 교수(시민환경연구소장), 김창섭 가천대 IT학과 교수(전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등입니다. 곽 의원은 “자문위원 모두 탈원전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출신들”이라며 “이들이 설문조사안을 3번에 걸쳐 수정하면서 탈원전 필요성을 유도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이은영 대표는 설문 관련 의견에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방향성이 불분명하다”며 “(일반 국민 대신) 차세대와 여성층 등 특정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영희 교수는 “에너지에 대해 일반적인 사항을 먼저 묻고 하위로 원전 문항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구요. “탈원전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습니다.이런 ‘주문’에 따라 여론조사 문항은 ‘에너지 전환 정책이 세계적인 추세다’‘에너지 전환은 태양광 등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로의 확대를 의미하고 새 일자리를 창출한다’ 등 장점을 나열한 뒤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상 ‘교육’ 수준의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에너지 전환 정책이 전기요금에 미치는 영향’을 설문 문항에 포함했다가 자문위원들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반대하자 질문 자체를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자문위원들은 “관행대로 전화 설문을 하지 말고 1대 1로 대면 조사를 실시하라”고 조언했지요. 대면 조사의 경우 조작 가능성이 있어 철저한 조사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곽 의원실이 3880명이 작성했다는 설문지 중 일부를 재단에서 제출 받아 검증해본 결과, 상당부분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일부 작성지의 서명이 매우 유사했던 겁니다. ‘V’ 표시와 동그라미 등 한 사람이 여러 장을 적은 흔적도 보였지요. 곽 의원은 “대면조사 과정에서 조사원들이 결과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전수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이 여론조사를 실시한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과거 ‘원자력문화재단’이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직후였던 2017년 말 이름을 바꿨지요. 매년 실시해온 ‘원자력 국민인식 조사’란 이름도 ‘에너지 국민인식 조사’로 변경했구요. 1992년 원전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 하루 아침에 ‘반(反)원전 나팔수’로 변신한 건 아이러니입니다. 이 곳 이사장은 탈원전주의자인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대표는 윤기돈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이 맡고 있습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이번 설문을 위해 73명의 조사원을 동원했습니다. 투입된 예산만 1억원에 달했지요. 국민들이 매달 납부하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 적립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지원했다고 합니다. 곽 의원은 “앞으로 정권이 또 바뀌면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원전이 꼭 필요하다는 설문을 다시 내놓을 건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다양한 여론 조사에선 탈원전 반대 의견이 훨씬 높게 나왔습니다. 다만 지난 5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발표한 ‘에너지 국민인식 조사’에선 상반된 결과가 나왔지요. 성 장관의 발언은 이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조사 결과를 염두에 둔 걸로 보입니다.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실시했던 이 여론 조사가 지극히 편향된데다 심지어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당시 “국민의 84%가 탈원전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뿌렸지요. 여론조사 회사는 메트릭스코퍼레이션이란 소규모 기업이었고, 지난 3월8일부터 4월5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국민 1000명과 원자력·석탄 발전소의 반경 10㎞ 이내 지역주민 2880명 등 총 3880명을 대면 조사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에너지정보문화재단 등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에너지 국민인식 조사’의 설문 문항을 만들기 전 총 4명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맡겼습니다. 자문위원 명단이 이번에 공개됐는데 이은영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대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전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과학부 교수(시민환경연구소장), 김창섭 가천대 IT학과 교수(전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등입니다. 곽 의원은 “자문위원 모두 탈원전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출신들”이라며 “이들이 설문조사안을 3번에 걸쳐 수정하면서 탈원전 필요성을 유도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이은영 대표는 설문 관련 의견에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방향성이 불분명하다”며 “(일반 국민 대신) 차세대와 여성층 등 특정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영희 교수는 “에너지에 대해 일반적인 사항을 먼저 묻고 하위로 원전 문항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구요. “탈원전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습니다.이런 ‘주문’에 따라 여론조사 문항은 ‘에너지 전환 정책이 세계적인 추세다’‘에너지 전환은 태양광 등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로의 확대를 의미하고 새 일자리를 창출한다’ 등 장점을 나열한 뒤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상 ‘교육’ 수준의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에너지 전환 정책이 전기요금에 미치는 영향’을 설문 문항에 포함했다가 자문위원들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반대하자 질문 자체를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자문위원들은 “관행대로 전화 설문을 하지 말고 1대 1로 대면 조사를 실시하라”고 조언했지요. 대면 조사의 경우 조작 가능성이 있어 철저한 조사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곽 의원실이 3880명이 작성했다는 설문지 중 일부를 재단에서 제출 받아 검증해본 결과, 상당부분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일부 작성지의 서명이 매우 유사했던 겁니다. ‘V’ 표시와 동그라미 등 한 사람이 여러 장을 적은 흔적도 보였지요. 곽 의원은 “대면조사 과정에서 조사원들이 결과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전수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이 여론조사를 실시한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과거 ‘원자력문화재단’이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직후였던 2017년 말 이름을 바꿨지요. 매년 실시해온 ‘원자력 국민인식 조사’란 이름도 ‘에너지 국민인식 조사’로 변경했구요. 1992년 원전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 하루 아침에 ‘반(反)원전 나팔수’로 변신한 건 아이러니입니다. 이 곳 이사장은 탈원전주의자인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대표는 윤기돈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이 맡고 있습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이번 설문을 위해 73명의 조사원을 동원했습니다. 투입된 예산만 1억원에 달했지요. 국민들이 매달 납부하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 적립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지원했다고 합니다. 곽 의원은 “앞으로 정권이 또 바뀌면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원전이 꼭 필요하다는 설문을 다시 내놓을 건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