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오랜 항쟁 끝에 몽골에 항복한 이후 큰 변화…13세기말 ‘대몽골 울루스’에 편입돼 세계와 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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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의 한국경제史 3000년 (29) 팍스 몽골리카 (상)1231년부터 시작된 몽골의 침입과 고려왕조 28년에 걸친 항쟁은 고려의 사회와 경제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안겼다. <고려사>는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1254년의 일이다. “이해에 몽골병에 사로잡힌 남녀가 무려 20만6800여 명이요, 살육된 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지나가는 주군(州郡)마다 모두 잿더미가 됐으니, 전란이 있은 이래로 이때처럼 심한 적이 없었다.”
몽골 침입과 세계 편입 결국 1259년 고려는 몽골에 항복하는데, 이후에도 전란은 끊이지 않았다. 1270년 고려 중앙군의 핵심 전력인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켰다. 삼별초는 새로운 왕을 옹립하고 근거지를 진도와 제주도로 옮기면서 고려와 몽골 연합군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1273년 삼별초의 난이 진압되자 원(元) 제국으로 이름을 바꾼 몽골은 일본 정벌에 나섰다.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일본 정벌에서 군수를 조달하고 병사로 동원된 고려 인민의 고통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였다.
피해가 컸던 만큼 전란 이후 재건된 고려의 사회와 경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13세기 말 전란의 피해는 거의 복구됐다. 1296년 개경에 1008개 기둥으로 연결된 긴 복도의 시전(市廛)이 다시 세워졌다. 그보다 앞서 1279년에는 원과의 역참로가 개통됐다.
이로써 고려왕조는 한반도에서 발칸반도까지, 베트남에서 헝가리까지, 시베리아에서 인도까지의 광활한 유라시아대륙과 지중해에서 인도양을 거쳐 동중국해와 발해만에 이르는 광대한 해원(海原)을 종횡으로 엮는 대(大)몽골 울루스에 깊숙이 포섭됐다. 울루스는 국가 또는 백성이란 뜻이다. 이전의 세계는 7개의 비교적 자급적인 지역으로 구성됐으며, 이슬람이 각 지역을 중개하는 중심부를 이뤘다. 대몽골 울루스 하에서 세계는 최초로 단일의 세계체제로 통합됐다.
제시된 지도는 14세기 유라시아대륙과 바다를 아우른 역참로와 교통로, 해로의 그물망과 곳곳에 들어선 문화 교류의 시설을 보여준다. 대몽골 울루스의 육상과 해상을 아우른 광대한 교역로와 은(銀)본위에 기초한 단일의 통화제도는 세계적 범위의 자유무역을 촉진했다. 이 교역로를 따라 세계 각 지역의 지식, 기술, 상품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돼 각 지역의 전통 사회와 경제에 큰 충격을 줬다.
거대한 제국…과학문명 확산 대몽골 울루스의 중심은 원 제국이었다. 원은 광대한 영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면서 노예제 폐지, 종교의 자유, 정치와 종교의 분리, 정치의 세속화, 법에 의한 통치, 공공교육과 같은 문명의 원리를 혁신적으로 개발했다. 이것들은 이후 서유럽에서 근대문명의 문을 여는 데 중요한 기틀이 됐다. 중국에서 건너간 컴퍼스, 활자, 종이, 주판 등의 선진기술은 서유럽에서 과학혁명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원 제국 학자들은 최초의 세계지도를 그렸으며 이란 고대사, 이슬람사, 오구즈사, 중국사, 유대사, 프랑크사, 인도사의 서술로 이뤄진 최초의 세계사를 편찬했다.
대몽골 울루스를 종횡으로 엮은 세계 무역은 오르탁이라 불린 중앙아시아 무슬림 상인에 의해 주도됐다. 원의 황실과 정부는 오르탁 상인에게 자금을 대여하고 서아시아의 진귀한 보화를 취득했다. 원의 수도에 머문 고려 왕들은 자연스럽게 오르탁 상인들과 접촉했다. 오르탁 상인들이 고려를 찾아오기도 했다.
이슬람 사절단 오다 1295년 충렬왕은 최초로 관영 교역선을 원에 파견했다. 충렬왕의 왕비로 온 원의 제국대장공주는 고려 인삼을 중국 강남에 수출해 큰 이익을 봤다. 1308년 충선왕은 직염국을 설치해 원이 선호한 고급의 염색 모시를 생산했다. 1309년 개경의 외항인 예성강에서 50척의 관선이 원으로 출항했는데, 주요 화물은 아마도 충선왕이 생산한 모시였을 것이다. 충숙왕은 여러 명의 상인을 고관으로 발탁했는데, 이전에 없는 일이었다. 충숙왕은 중국인과 색목인을 관료로 채용했다. 이 무렵 개경에는 다수의 서역 상인이 거주했다. 그들과 고려 여인의 정교를 노래한 쌍화점이란 고려가요는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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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골 울루스 하에서 세계는 최초로 단일의 세계 체제로 통합됐다. 제시된 지도는 14세기 유라시아대륙과 바다를 아우른 역참로와 교통로, 해로의 그물망과 곳곳에 들어선 문화 교류의 시설을 보여준다. 대몽골 울루스의 육상과 해상을 아우른 광대한 교역로와 은(銀)본위에 기초한 단일의 통화제도는 세계적 범위의 자유무역을 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