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양자 컴퓨터 시대, 암호화 기술에 주목해야

자연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 도울 양자컴퓨터
빠른 연산으로 현 암호화체계 무력화할 수도
'양자 후 암호화'란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길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현재 가장 성능이 좋은 고전적 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릴 계산을 지난달 구글의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가 3분 만에 풀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양자 컴퓨터가 고전적 컴퓨터보다 특정 분야에서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가 실현된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같은 양자적 현상을 이용한다. 중첩이란 관측되지 않은 상태의 양자 입자는 ‘동시에 둘 또는 그 이상의 상태를 지닌다’는 얘기다. 얽힘은 ‘양자 사물은 그 사물에 전적으로 국한되지 않은 특질을 지닐 수 있다’는 얘기다. 양자 역학은 ‘얽힘’이 우주의 피륙을 이룬다고 한다. 가장 미세한 입자들이 서로 얽히고 그 얽힌 입자들이 다시 얽히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돼 우리가 보는 고전적 세계가 나온다는 것이다.고전적 컴퓨터에선 자료들이 2진수(binary digit·bit)로 코드화돼 두 개의 확정된 상태(0 또는 1)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양자 컴퓨터에선 상태들의 중첩이 가능한 양자비트(quantum bit·qubit)를 사용하므로, 자료가 동시에 두 상태에 속할 수 있다. 이런 특질은 양자 컴퓨터가 엄청난 기억을 지닐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n qubit 양자 컴퓨터는 ‘2의 n제곱’ 상태까지 지닐 수 있다. 구글의 양자 컴퓨터는 53qubit를 지녔다.

양자 컴퓨터는 그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근본은 양자적 현상들인데, 고전적 컴퓨터는 너무 투박해 그런 현상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자연히, 수학 모형을 만들 때 고전적 컴퓨터는 많은 단순화를 해야 한다. 이제 양자적 현상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양자적 현상들을 계산에 쓰는 방안을 처음 제시하면서,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그 점을 지적했었다.

양자 컴퓨터는 우리가 자연현상을 보다 정확하고 정교하게 ‘모사’하고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다. 아울러, 지금 양자적 지식의 부족으로 연구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약품과 소재들의 개발에서 성과를 얻도록 할 것이다.당장은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지금 세계의 모든 상거래는 ‘공개 열쇠 암호화(public key cryptography)’에 의존한다. 누구든 임의의 소수 둘을 곱한 값을 공개 열쇠로 밝히고 소수 둘은 ‘개인 열쇠’로 삼는다.(예컨대, 17과 11을 개인 열쇠로 삼으면, 공개 열쇠는 187이다)

그와 거래하는 사람들은 공개 열쇠를 이용해 보낼 정보를 암호화한다. 거기 쓰이는 계산은 역산이 불가능한 일방 함수(one-way function)여서 다른 사람들은 염탐할 수 없다.(일방 함수의 일례인 시계 계산에선, 9+5=2이고 11+3=2다. 암호화된 2만으로는 원래의 수들을 역산할 수 없다)

암호화된 정보를 받은 사람은 개인 열쇠인 소수들을 이용해 일방 함수를 역산하고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 물론 염탐꾼들도 공개 열쇠를 인수분해해서 소수 둘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공개 열쇠가 워낙 큰 숫자들이라서, 고전적 컴퓨터로는 몇만 년 걸린다.이 힘든 작업도 양자 컴퓨터는 단 몇 분 만에 해낼 수 있다. 발명자들의 이름을 따서 RSA(Rivest Shamir Adleman)라 불리는 이 멋진 암호화 체계가 무력해지는 것이다. 이에 따르는 혼란과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이전의 암호들과는 달리, RSA는 따로 암호 해독 열쇠를 배포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양자 후 암호화(post-quantum cryptography)는 해외에선 상당히 발전됐다. 물론 RSA만큼 편리할 수도 안전할 수도 없지만 그만큼 창의적 발견의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도 수학적 재능과 지적 야심을 갖춘 젊은이들이 이 험준한 과제에 도전할 만하다. 이런 지적 모험보다 더 큰 내재적 가치를 지닌 창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