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르도 명가' 칠레 도전 20년史…"한국 초저가 붐, 경쟁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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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간 보르도 명가 '20주년' 특별인터뷰"이번에 리뉴얼한 에스쿠도 로호 라인업은 순수한 포도를 표현한 프렌치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테루아(Terroir)가 잘 반영된 프리미엄 와인으로 저평가 돼 있는 칠레 와인의 프리미엄을 높이겠습니다."
▽ 알마비바 이어 '에스쿠도 로호' 도전
▽ "지구온난화, 20년 전 칠레 선택 옳았다"
▽ "한국 다이내믹 와인 시장" 가치소비 기대
엠마누엘 리포 바롱 필립 로칠드 마이포 칠레 사장(CEO)은 지난 11일 서울 와인바 베라짜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2015년 취임한 엠마누엘 리포 사장은 프랑스 출신으로, 1999년 프랑스 바롱 필립 드 로칠드 본사에서 레드 와인 양조를 담당했다. 2004년 바롱 필립 드 로칠드 마이포 칠레 와이너리 기술 감독을 거쳐, 2007년 마이포 칠레 와인메어커도 역임했다. 올해 바롱필립 드 로칠드 칠레는 20주년을 맞았다. 프리미엄 와인을 강화하기 위해 에스쿠도 로호 라인업을 개편했다. 기존보다 제품 라인업보다 확대된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오리진과 리제르바 버라이어탈을 새롭게 추가했으며, 기존의 그란 리제르바도 블랜딩 비율을 바꿔 품질을 높였다. 그란 리제르바 블랜딩과 리제르바 버라이어탈은 올해 12월 출시되며, 오리진은 내년 출시될 예정이다.
와인 명가인 바롱필립 드 로칠드의 프랑스 샤또 그랑크리 스타일의 와인 메이킹에 칠레의 테루아의 노하우를 더한 제품들이다.
엠마누엘 리포 사장은 "이번 라인업은 오크터치 영향을 최소화해 좀 더 자연 친화적으로 테루아( 와인을 재배하기 위한 제반 자연조건) 자체를 더 반영했다"며 "이번에 360도 리뉴얼을 통해 포도 고유의 특성을 반영한 프리미엄 칠레 와인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에스쿠도 로호 오리진'은 카베르네 쇼비뇽 100%를 사용했다. 다크 체리 등 검은 계열의 과일 향이 풍부하며 바닐라 모카 볶은 헤이즐넛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입 안 가득 과일향과 함께 묵직한 바디감이 더해지면서 좋은 균형감(밸런스)을 자랑한다.
프리미엄 시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해당 시장 내 경쟁자들은 많지만, 카베르네 쇼비뇽 100%를 사용한 프렌치식 칠레 와인으로 승부수를 걸겠다는 방침이다. 리포 사장은 "프랑스에 있던 기술을 접목한 와인은 사실 경쟁자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며 "칠레의 자연적인 조건과 우리의 노하우가 결합돼 잘 숙성된 와인이 나온 만큼, 충분히 시장 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이번 리뉴얼 및 개편 작업에만 5~10년을 투자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세계적으로 칠레 와인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금액대로는 30% 이하의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며 "프랑스 명망있는 와이너리인 로차일드가 칠레 와인의 프리미엄을 더하기 위해 그간 에스쿠도 로호의 모든 요소를 바꿨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칠레의 테루아를 잘 살렸다는 점도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리포 사장은 에스쿠도 로호 출시 시점인 1999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바롱 필립드 로칠드는 칠레로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칠레의 테루아가 와인 생산의 최적이라는 점에서다.
그는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는 반면 칠레의 남쪽은 서늘한 기후가 유지되고 있다"며 "좋은 일조량에 서늘한 기후가 있다는 점은 프리미엄 와인이 나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가들이 그린에너지 잠재력이 가장 좋은 나라로 칠레를 꼽은 만큼, 와인 메이킹에 적합한 지역"이라며 "칠레는 브라질 멕시코 다음으로 20년간 좋은 경제 환경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칠레에서 테루아 영역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1999년 칠레에 갔을 때 테루아는 800km 정도로 제한돼 있지만, 지금은 1500km로 2배 가까이 되는 테루아를 재발견하면서 영역이 더 확장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저가 와인 시장과 경쟁하기 보다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더 강화해 갈 계획이다. 리포 사장은 "한국 마트에선 초저가 와인 붐이 일어나고 있지만 초저가 와인들과 경쟁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백화점과 호텔, 미슐랭 레스토랑 등 프리미엄 채널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의 성과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와인 시장의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해서다. 그는 "4년 전 한국에 왔을 땐 저가 와인을 찾는 경향이 강해 시장이 덜 발달된 느낌을 받았다"며 "이번엔 가치소비 영향으로 프리미엄 와인도 찾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다이나믹한 시장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알코올 소비량이 높다는 점도 국내 와인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다. 리포 사장은 "한국이 와인 소비력이 높진 않지만 알코올 소비는 많은 편"이라며 "다른 알코올 소비가 많다는 점에서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지난해 한국에서 샴페인 성장률이 가장 높았다는 점도 와인 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액 증가율은 16.2%를 기록했다. 최근 3년간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셈이다. 와인 구매도 늘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 기준 와인 매출 비중은 22.7%로 국산 맥주(21.4%)를 처음으로 제쳤다. 주류 중 가장 높은 매출 비중을 차지한 수입맥주(25.3%)와 비교해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에스쿠도 로호 와인은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그는 "불고기나 생선전, 초문어도 잘 어울린다"며 "특히 여러 포도로 블렌딩한 그랑레제르바는 몇 가지 양념을 곁들여먹는 보쌈과도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내년엔 '알바미마'를 구현한 와인도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에스쿠도 로호는 그랑레제르바와 같은 프리미엄 라인도 있었지만, 프리미엄을 더 강화하기 위해 개편하고 있는 것"이라며 "내년엔 리틀 알바미마가 아닌 '알바미마'라고 할 수 있는 와인도 내놓으면서 프리미엄 전략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