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상조 靑 정책실장 "정부도 경제상황 엄중하게 보고 있다"

한경 인터뷰

"문 대통령이 기업 적극 찾는 것도
낙관적으로 안본다는 인식 반영"
소주성 대신 '소·부·장' 강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11일 청와대 사랑채에서 진행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정책의지를 강조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사진)은 “청와대를 포함해 정부에서 누구도 현 경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장 수용성을 고려한 정책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민간 경제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청와대의 경제낙관론을 일축했다.

김 실장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보완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한 달 평균 다섯 차례 경제 현장을 찾는 것도 엄중한 경제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며 “광주와 구미에 이어 세 번째 상생형 일자리도 이달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용어를 두고 소모적 논란을 하기보다 임기 절반을 지나는 이제는 성과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강화에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공정, 소득창출 등 3대 핵심 정책 요소가 모두 들어 있다”며 ‘소주성’과 ‘소부장’의 역할 교체를 시사했다.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선 “이달 말 동(洞) 단위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핀셋 규제를 내놓을 예정”이라며 “시장 상황에 따라 동·단지별로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수출규제 상황반장’을 맡고 있는 김 실장은 한·일 관계에 대해 “일본도 추가 규제에 나서지 않는 등 사태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문제 해결의 ‘입구’를 찾기 위한 양국 간 암중모색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소주성 용어 더 고집 안해
좋은 정책도 시장이 받아들여야 가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양손잡이 경제학자’로 칭했다. 경제학자들이 정책을 설명할 때마다 ‘한편에는(on the one hand)’ ‘또 다른 한편으로(on the other hand)’ 식으로 장단점을 나열하자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외팔이 경제학자를 데려오라”고 역정을 냈다는 일화에서 나온 표현이다. 김 실장은 “이해관계 충돌이 불가피한 정책의 속성상 보수와 진보가 모두 박수치는 경제정책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삼성 사업장 방문을 일각에서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도 털어놨다. 김 실장은 “경제는 경제, 경영은 경영, 재판은 재판”이라며 “최근 삼성 방문을 두고 일부에서 비판하는데 원칙을 후퇴시키거나 훼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봐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친기업 행보를 하다가 공정경제를 강조하는 등 정책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시장의 수용성을 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조정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철학이다.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2년 전 만들어진 이후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경제 환경의 변화로 당초 취지가 구현되기 어려워졌다. 경제 주체의 비용부담이 당초 예상보다 커진 만큼 속도를 조절하는 유연성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정책기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경제가 어렵고 엄중하지만 과거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근시안적 대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실적 문제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대응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기조 자체를 경제민주화에서 부동산 부양으로 선회한 박근혜 정부의 오류를 따라가는 것은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문 대통령과 나의 생각이다.”

▷주 52시간제 도입 보완대책 입법이 늦어지고 있다.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어려운 상황이라 하위 행정법령이나 모범기준을 통해 실효성 있는 대책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난 4일 경제4단체장 오찬에서도 네 분 모두 하위법령을 통해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경제는 버려진 자식이냐’고 비판한 것을 보고 4단체장에게 편하게 말씀 듣자는 취지로 연락했는데, 박 회장은 ‘그건 국회를 겨냥해 한 말인데 청와대가 화답했다’고 하더라.”▷청와대의 경제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 부분에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문 대통령은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근로시간 보완책 등을 지시한 것이다. 한국을 둘러싼 경제환경이 좋다고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문 대통령의 경제인식은 ‘단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일하는 어느 사람도 현 상황을 낙관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인식이 시장에 전달이 안되는데.

“대통령이 한 달에 평균 다섯 차례의 경제현장 행보를 한다. 과거 어떤 대통령보다 많다.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란 걸 알고 각별한 정책적 노력을 강조한다. 장기적으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혁신성장이라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제지표가 낙관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올해 경제전망치가 대폭 하향 조정된 것도 경제낙관론 지적의 근거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세계 경제전망치를 당초 3.7%에서 2.9%로 0.8%포인트 하향했다. 당초 2.8%로 예상했던 한국 경제 올해 전망치도 0.7%포인트 정도 낮아질 전망이다. 독일은 1.3%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우리와 독일처럼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비중이 높은 나라들이 큰 폭으로 하향 조정되고 있다. 미·중 무역마찰에 아무도 생각 못했던 홍콩사태, 여기에 우리에게는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겹쳤다. 하지만 ‘경제위기다’ 내지는 ‘폭망했다’는 표현은 상당한 과장이다.”

▷외부 변수 못지않게 소득주도성장 등 내부 정책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보지 않나.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탓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반드시 피해야 하는 확증편향이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 숫자로 얘기하는 정부의 설명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경제에 대한 오판을 하고 있다고 보지는 말아달라.”

▷일부 청와대 경제참모는 내년 1분기 경제 반등을 주장하고 있다.

“예단하기 어렵지만 대외경제 특히 미·중 관계가 지금보다 악화되지 않는다면 지금은 바닥을 다지는 국면이라고 본다. 세계 경제 자체가 회복세로 돌아서면 우리 수출구조상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게 회복세를 탈 것이다. 내년 1분기가 될지, 2분기가 될지는 예단할 수 없다.”

▷요즘 정부 안에서 ‘소주성’ 용어를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대체한 느낌이다.

“소주성은 그동안 정말로 열심히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는 분이 워낙 많아 이제 굳이 용어 자체를 두고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다. 진지한 토론이 어렵다면 국민이 편하게 느끼는 용어로 표현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소재·부품·장비 분야는 20년간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성과를 못 냈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각 경제주체와 정부가 소부장 경쟁력 제고에 나섰는데 거기에 혁신 공정 소득창출이란 현 정부의 핵심가치가 다 들어 있다.”

▷지난 8월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됐다.

“전 세계에서 물가 2%를 넘는 나라가 없다. 대부분 목표물가 미달이다. 우리는 지난 8월 -0.04%를 기록했다. 디플레이션은 공급과 수요 요인이 있는데 수요 부족에 의한 디플레이션은 최악이다. 한국은 지난해 더위 때문에 가격이 높았던 농산물가격 하락, 무상급식 등 공급 측 요인으로 떨어졌다. 수요 측 문제에 따른 악순환 디플레이션이 아니다. 이르면 11월, 늦으면 12월께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다.”

▷내년도 예산이 513조5000억원으로 ‘슈퍼예산’이다. 재정건전성 우려가 크다.

“예산은 정부의 1년 살림살이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철학을 담는 그릇이다. 규모가 아니라 한국 경제 장기생산성에 기여하는 예산으로 짜보자고 했다. 전체 예산을 9.7% 증가한 규모로 처음부터 짜놓고 한 달 반 동안 반영할 예산항목을 여러 부처에서 논의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소부장’대책 등이 그렇게 반영된 것이다. 내년 예산을 단순히 슈퍼예산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효수요 증대 측면에서 짠 게 아니고 혁신성장을 위한 장기동력 확보로 접근했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예산이 늘어나도 과거처럼 경기부양을 위해 고속도로 깔고 댐 짓고 하는 방식이 된다.”

▷국가부채비율이 40%에 근접한다.

“당연히 재정건전성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장기사업으로 경제와 사회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예산을 짜야 한다. 그래야 다시 정상궤도로 오를 수 있는 길을 확보한다. 확장재정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한국 독일 캐나다 3개국 정도다. 확장재정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용지표 악화에 대한 우려가 많다. 특히 재정 투입으로 노인 일자리만 늘린다는 지적도 있다.

“내년에 61세로 은퇴하는 인구가 90만 명, 66세가 되는 인구가 70만 명이다. 소위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분들 중에서 손주를 데리고 삶을 즐기는 어르신이 얼마나 되겠나. 반면 신생아는 30만 명대로 떨어졌다. 인구비중이 높은 어르신들의 은퇴 상황에서 정부가 정책적 노력으로 취업을 돕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문제는 30~40대 일자리다.”

▷30~40대 일자리 문제점은.

“경제의 주축인 30~40대를 들여다보니 특성이 달랐다. 30대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요인이 대부분 인구구조 변화 때문이다. 반면 40대는 인구구조와 산업구조 요인이 절반씩 차지한다. 40대 일자리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은 이유는 주로 취업했던 분야가 전통적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구조조정 등이 발생하면서 기존의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분야 등 성장 산업에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 30~40대가 이동하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정년연장정책 추진 가능성은 있나.“정년연장만 얘기하면 ‘청년들 일자리 뺏기’ 논란이 대두한다. 출생률을 높이는 정책과 별도로 고령화 사회에 대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연간 90만 명씩 은퇴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단순 정년연장 차원이 아니라 기존 4인 가족 중심의 주택정책, 복지시스템 등을 완전히 개편해야 한다. 정년연장 문제로만 접근하면 정책적으로 자살골이다.”

김형호/박재원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