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 3인, 전세계 판자촌 누비며 현장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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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정책으론 빈곤 해결 못해"“세계 각국의 빈민가를 누비며 빈곤 문제와 정면 대결한 경제학자들이었다.”(안상훈 KDI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
개발경제학 지평 넓힌 3人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58), 에스테르 뒤플로 MIT 교수(47), 마이클 크레이머 하버드대 교수(55) 등은 빈곤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 골몰한 학자들이다. 크레이머 교수의 제자로 MIT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안상훈 소장은 “세 명의 수상자는 저개발 국가를 찾아 각종 실험적 접근을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실증적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크레이머 교수는 1990년대 동료들과 함께 케냐 빈민가에서 거주하며 교육이 빈곤 해결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현장 실험을 했다.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도 다른 저개발국에서 빈곤 경감을 위한 비슷한 연구를 수행했다.세 사람은 빈곤 문제를 다루는 개발 경제학 분야에서 과학적 실험법을 도입한 공로를 높게 평가받았다. 이들은 1990년대 들어 개발경제학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른 무작위대조군연구(RCT)의 개척자로 손꼽힌다. RCT는 의학 분야에서 흔히 쓰는 실험법이다. 처치를 받은 실험군과 받지 않은 대조군을 비교해 유의미한 변화를 포착하는 방식이다. 세 교수는 개발도상국에 들어가 실험군으로 분류된 개인과 집단에 교육과 의료 정책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 자연상태의 대조군과 비교했다.
바네르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는 ‘부부 경제학자’로서 개발경제학을 공동으로 연구했다. 바네르지 교수는 1961년 인도에서 태어나 1988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뒤플로 교수는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99년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적의 바네르지 교수와 미국·프랑스 이중 국적을 보유한 뒤플로 교수는 MIT에서 교수와 학생으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MIT에 빈곤퇴치연구소를 함께 설립해 빈곤과 개발 정책 등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왔다. 뒤플로 교수는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가운데 최연소이자 두 번째 여성 수상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29세의 나이에 MIT 최연소 종신 교수가 된 인물이다.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 때 경제팀에 합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공동 저술한 책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 빈곤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책에는 선심성 정책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복지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담겼다. 빈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크레이머 교수는 이른바 ‘O링 이론’을 통해 빈곤 해결을 모색했다. O링 이론은 정책적 결정을 할 때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기보다 전체적 팀의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론이다. O링 이론은 1986년 발사 1분여 만에 폭발해 승무원 7명이 사망한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에서 따왔다. 당시 참사 원인은 지름 1㎝ 정도의 불량 고무링(O링)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특출난 개인의 독자적 판단에 의존한 정책으로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높은 역량을 갖춘 정책 집단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안 소장은 “크레이머 교수가 MIT에서 재직할 때 수준 높은 강의로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다”며 “당시 MIT 학생들은 그가 10분마다 계시를 준다며 감탄했다”고 말했다.크레이머 교수는 2016년 6월 한국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교육으로 빈곤을 탈출한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좋은 모델”이라고 말했다.
김익환/고경봉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