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신사모자 대신 야구모자…서른살 빈폴 '뉴트로 감성' 입다

돌아온 정구호 디자이너
1950~60년대 패션에서 영감
"한국적 복고 스타일 선보인다"
‘작업복(워크웨어) 스타일의 외투, 정사각형이 반복되는 깅엄체크로 만든 핸드백 및 치마와 점퍼.’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캐주얼 브랜드 ‘빈폴’이 앞으로의 30년을 위해 새로 디자인한 제품들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15일 인천에 있는 일진전기 빈 공장에서 이 제품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기자간담회 주제는 ‘다시 쓰다’였다. 콘셉트는 ‘뉴트로(새로운 복고)’이며, 겨냥한 주요 소비층은 밀레니얼 세대다. 1950~1960년대 한국의 패션 스타일, 건축물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폐공장에서 행사를 한 이유다. 1989년 첫선을 보인 당시 복고풍 디자인과 빈폴의 자전거 로고 등의 특징은 유지했다. 지난 3월 정구호 디자이너(사진)를 고문으로 영입해 약 7개월 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15일 일진전기 인천공장에서 빈폴 30주년 기념 ‘다시 쓰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제공
30년 역사와 복고풍 강조한 디자인

정 고문은 간담회에서 “새로운 빈폴을 구상하면서 두 가지 고민을 했다. ‘왜 우리 패션업계는 늘 외국 스타일을 벤치마킹하려 할까’ ‘우리만의 얘기를 할 순 없을까’ 등이었다”고 말했다. 그 고민의 결론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데 이르렀다고 했다. 그리고 눈을 과거로 돌렸다. 광복 후 한국의 생활상에서 얻은 영감을 디자인에 반영했다. 광복과 전쟁 이후인 1950~1960년대는 서양 문물이 한국에 들어와 우리만의 현대적 스타일로 재해석되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의 건축물, 패션 스타일 등을 반영하되 지금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현대적 감성을 가미했다고 정 고문을 설명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중시하는 ‘지속 가능성’을 위해 버려진 페트병, 어망 등을 재활용한 옷과 가방도 제작했다.

정 고문은 또 “매장 간판과 로고를 한글로 바꾸기 위해 ‘빈폴체’ 폰트를 개발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빈폴체는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빈폴의 상징인 자전거 로고는 심플하게 바꿨다. 자전거의 바큇살을 없애고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도 신사들이 썼던 모자(보울러 햇)에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야구모자로 바꿨다. 남성만을 로고에 반영했던 과거도 버렸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버전, 남녀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로고도 개발했다.“젊은 층 겨냥 상품으로 브랜드 젊게”

제품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890311’ 라인이다. 1989년 3월 11일은 빈폴 브랜드가 출범한 날이다. 이를 제품 라인명으로 정했다. 정 고문은 “빈폴만의 감성과 역사, 희소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로 890311 라인을 새로 개발했다”고 했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오버사이즈에 유니폼, 워크웨어 디자인을 적용했다. 가격은 기존 빈폴보다 10~20% 낮췄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890311 라인만으로 구성한 팝업스토어(임시매장)를 국내외에 낼 계획이다. 박남영 빈폴사업부장(상무)은 “서울패션위크 기간인 이번주 한국에 온 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열고 해외 진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가을·겨울 상품부터 해외 판매가 시작될 것으로 박 상무는 내다봤다. 이날 선보인 제품은 모두 내년 봄·여름 상품이다.여성복 ‘구호’의 디자이너인 정 고문은 2003년 삼성물산 패션부문(당시 제일모직)에 구호를 매각한 뒤 10년 동안 근무하며 여성복사업부를 총괄했다. 2013년 퇴사한 뒤 6년 만인 올해 초 빈폴 리뉴얼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돌아왔다. 그는 “재입사는 절대 아니고 빈폴 리뉴얼을 위한 2년 계약”이라며 “이 기간 동안 빈폴을 새롭게 완성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인천=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