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리스크' 털어낸 신동빈, '뉴 롯데' 전환 속도 낸다

롯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호텔롯데 상장·해외사업 확대 전망
연말 임원인사서 세대교체 폭 커질 듯…대대적 쇄신인사 가능성도

국정농단과 경영비리 사건에 연루돼 장기간 재판을 받아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7일 대법원에서 집행유예형을 최종 선고받자 롯데는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대법원의 상고 기각 판결로 신 회장은 항소심에서 받았던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형이 확정돼 인신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비록 무죄 선고는 아니었지만 신 회장이나 롯데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받아든 셈이다.

또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2016년 6월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된 뒤 3년 4개월 동안 신 회장과 롯데를 옥죄어온 '사법 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되면서 신 회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뉴 롯데' 전환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롯데지주는 이날 입장문에서 "그동안 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많은 분들의 염려와 걱정을 겸허히 새기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해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롯데 내부에서는 이번 대법 판결로 장기간 지속된 '사법 리스크'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앞으로는 신 회장을 구심점으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매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롯데는 항소심 재판부가 대부분 무죄로 판단했던 신 회장의 경영비리 사건 중 일부를 대법원이 유죄로 인정해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높아질 가능성을 우려해왔다.그렇게 된다면 집행유예가 어려워져 다시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롯데는 지난해 신 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던 8개월 동안 대규모 투자와 해외사업이 사실상 중단되고 중요한 인수·합병(M&A) 건이 무산되는 등 그룹 경영이 위기에 처했던 경험이 있다.

또 그룹의 총수이자 '원톱'인 신 회장이 부재할 경우 겨우 잠잠해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재발하거나 일본 롯데와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창업주 아들이라는 상징성과 개인적 인맥으로 한일 롯데를 하나로 묶는 구심적 역할을 해온 만큼 그의 부재시 롯데가 겪을 혼란은 클 수밖에 없다"며 "이번 대법 판결로 롯데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3년 넘게 롯데에 암운을 드리워온 사안이 해소된 만큼 신 회장이 창업주인 부친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뒤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뉴 롯데' 전환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롯데는 신 회장이 경영권을 장악한 뒤부터 신격호 명예회장 시절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던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고 지배구조를 단순하고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7년 10월 롯데지주가 공식 출범했지만 지주회사 체제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호텔롯데 상장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일본롯데홀딩스가 99%의 지분을 갖고 있는 호텔롯데의 국내 증시 상장은 독립적인 지주사 체제의 완성은 물론 '롯데=일본회사'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작업으로도 평가받는다.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을 99% 이상 보유한 일본롯데홀딩스는 일본인 종업원·임원·관계사 등 일본인 지분율이 50%를 넘는다.

롯데는 신 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계기로 호텔롯데 상장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 시기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최근 호텔롯데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라 할 수 있는 면세점 사업부문의 업황이 부진해 상장을 하기에 유리한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롯데 관계자는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한다는 방침은 확고하지만 투자자와 주주들의 입장을 고려해 가장 유리한 여건에서 상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적합한 여건이 조성되는 대로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가 지금까지 10조원 넘게 투자한 해외사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그동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고, 최근에는 미국과 영국, 호주 등 선진국 시장에도 적극 진출했다.

해외시장 진출을 진두지휘해온 신 회장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된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해외투자를 진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롯데는 신 회장의 재판이 진행된 3년여 동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과 최근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약 4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봐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12월로 예정된 연말 정기 임원인사의 향방도 관심거리다.

신 회장이 부친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은 3∼4년 전이지만 그동안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재판 등으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던 만큼 이번 정기인사는 온전히 그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사실상 첫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롯데 안팎에서는 장기간 신 회장을 괴롭혔던 '사법 리스크'가 마무리된 만큼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통한 세대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재계 관계자는 "재판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고,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도 부진한 만큼 신 회장이 대대적인 쇄신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본격적인 세대 교체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