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4년' 마침표 찍은 신동빈…'글로벌 롯데' 속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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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희생양 된 1225일' 롯데에 무슨 일 있었나꼬박 1225일이 걸렸다. 검찰이 갑자기 들이닥친 날부터 17일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창업 50년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버텨낸’ 롯데는 비로소 경영 정상화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이 기간 롯데는 많은 것을 잃었다. 화학산업을 키울 해외기업 인수도 포기했고, 중국사업도 접어야 했다. 호텔롯데 상장도 포기했다. 하지만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뼈저린 교훈도 얻었다. 롯데는 대법원 판결 직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지적한 염려와 걱정을 겸허히 새기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년여간 수난의 연속‘롯데 사태’의 시작인 검찰 수사는 느닷없었다. 2016년 6월 10일 검사와 수사관 200여 명이 들이닥쳤다. 기업 수사로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였다. 검찰은 자신했다. “거액의 비자금 조성, 오너 일가의 회삿돈 빼돌리기가 확인됐다”고 흘렸다. 사실과 달랐다. 넉 달 넘게 털었지만 나온 것은 별로 없었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물론 빌미를 줄 만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신동빈 회장은 형인 신동주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또 롯데는 검찰 수사 석 달 전인 2016년 3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줬다가 돌려받기도 했다. K스포츠재단은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세운 곳이다. ‘롯데가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도 돌았다. 이명박 정부 때 롯데가 급성장했던 터라 더 그랬다.그해 4월 있었던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국정 운영 동력을 잃어 갔다.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롯데는 약한 고리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롯데의 수난은 이어졌다.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정부로부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부지를 제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롯데는 거부할 힘도 없었다. 성주골프장이 대상지였다. 정부에 협조한 결과는 중국의 보복이었다. 버틸 수 없었다. 롯데는 짐을 싸서 나왔다. 수조원의 손실을 감수했다.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등 유통 매장을 대부분 철수했다.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식품 계열사도 생산 공장을 닫았다. ‘캐시카우’ 롯데면세점조차 중국인의 발길이 끊기며 적자를 내기도 했다.
K스포츠재단에 줬다 돌려받은 70억원은 신 회장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뇌물로 간주돼 신 회장은 기소됐다. 8개월간 구속됐다 작년 10월에서야 풀려났다.호텔롯데 상장 등 ‘골든타임’ 놓쳐
롯데는 이 기간 많은 것을 잃었다. 신 회장이 3년 넘게 법정 공방을 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친 사업이 많다.
먼저 ‘지배구조 투명화 작업’이 늦춰졌다. 롯데는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를 겪으면서도 강도 높은 지배구조 개선을 진행했다. 계열사 간 지분을 보유하는 순환출자, 상호출자를 전부 끊었다. 지주사인 롯데지주도 세웠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인 호텔롯데 상장을 미뤄야 했다. 호텔롯데의 주력 사업인 면세점이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탓이다.호텔롯데 상장은 일본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일본 롯데가 보유 중인 호텔롯데 지분 99%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다시 상장을 추진 중이지만 시장 상황은 과거보다 좋지 않다.
사업 기회도 많이 놓쳤다. 유통 부문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는 ‘옴니채널’ 전략이 늦춰진 것이 뼈아프다. 롯데는 오프라인에 비해 뒤처진 온라인을 대대적으로 키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신 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결정할 수 없었다. 이 시기 쿠팡 등이 급성장했다. 시장 선점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다. 또 다른 성장축인 화학사업에서도 기회를 상실했다. 미국 엑시올 인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폭 물갈이 인사 할지 관심
대법원 판결 후 오는 12월 그룹 정기인사에 관심이 쏠린다. ‘구속 리스크’가 사라진 신 회장이 더 공격적으로 인사를 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에선 신 회장이 부회장과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다수를 교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신 회장이 글로벌 사업 확대, 새로운 기업문화 구축, 롯데의 디지털화 등을 위해 ‘대폭 물갈이’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힘들게 과거와 결별한 ‘신동빈의 뉴롯데’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을지 관심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