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주석·고무로 살펴본 '페낭 華人' 굴곡史

아편과 깡통의 궁전

강희정 지음 / 푸른역사
496쪽 / 2만8000원
1910년 말레이반도 페라크주 이포의 물이 차 있는 주석 채광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푸른역사 제공
철판 안팎에 주석을 입힌 양철통에 식품을 담은 통조림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였다.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던져도 깨지지 않는 통조림은 군대 전투식량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 병사들은 총검으로 깡통을 따느라 낑낑대야 했다. 이런 불편은 1850년대 깡통따개가 발명되면서 해소됐고, 통조림은 군용에서 일반 식품으로 대중화됐다.

통조림의 대중화와 함께 가치가 달라진 게 주석이다. 주석 수요가 늘면서 태국 푸껫에서 말레이반도 서안의 페라크와 슬랑오르, 수마트라의 방카섬으로 띠처럼 이어진 말라카해협 일대의 ‘주석벨트’는 깡통 생산기지로 급부상했다. 그 격랑의 중심지는 말레이반도 서북부의 작은 섬 페낭이었다. 184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호주에서 골드러시가 벌어진 것처럼 페낭의 중국인 자본이 주석벨트로 몰려들었다. ‘백색 황금’으로 불린 주석을 좇는 ‘백색 골드러시’였다.이 흰색 황금 열풍은 ‘검은 황금’ 아편과 짝을 이뤄 화인(華人), 즉 중국인 거상들을 말라카해협의 패자로 만들었다. 백색 골드러시가 중국인 저임금 노동자 쿨리를 대거 끌어들였고, 쿨리들은 노동의 고단함을 아편으로 달래면서 그나마 적은 임금을 화인 거상들에게 되돌려줬던 것이다.

<아편과 깡통의 궁전>은 영국이 페낭에 처음 깃발을 꽂은 1786년부터 1930년대 말까지 페낭섬이라는 독특한 시공간에서 생겨난 화인 사회의 역사를 아편, 고무, 주석 세 가지 키워드로 살핀 책이다.18세기 후반부터 150여 년간 페낭은 상업자본주의 세계화와 산업혁명 세계화가 맞물린 현장이었다. 동인도회사 소속 무역상 프랜리스 라이트가 1786년 선박 세 척을 이끌고 와 페낭에 상륙한 것은 인도~중국 해상교역을 방해하는 네덜란드의 제해권을 깨기 위해서였다.

영국은 말레이반도 북부의 술탄국 커다와 협상 끝에 페낭을 할양받았고, 자유항과 자유 이민을 뼈대로 한 자유무역 체제로 덩치를 키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행정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영국 식민정부는 징세 권한을 민간에 하청하는 징세청부제를 시행했고, 5대 징세청부 품목 중 아편, 아락(술), 돼지고기의 전매권을 화인들이 장악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8세기 중반부터 인도산 아편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한 영국은 1842년 제1차 아편전쟁까지 아편무역의 전성기를 누렸다. 영국 자본가뿐만 아니라 징세청부제로 아편 전매권을 차지한 화인 상인들에게 아편은 돈이 열리는 나무였다. 아편은 술과 도박, 전당포와 매음굴의 징세청부와도 연결돼 엄청난 이익을 안겨줬다. 배삯이 없어 외상으로 배를 타고 페낭으로 온 쿨리들은 아편의 포로였다. 페낭 건설 초기 후추농장 노동자로 온 쿨리들에게 아편은 빚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하는 ‘악마의 연기’였다. 월급을 타봐야 열흘치 아편값에 불과했다.아편 전매로 자본을 축적한 페낭의 화상들은 1850년대 주석광산 개발붐과 함께 한층 영향력을 키웠고, ‘페낭 화인권’으로 부를 만한 거상(巨商)의 시대를 열었다. 주석 개발이 중국인의 자본과 노동으로 이뤄진 만큼 쿨리와 아편 소비는 비례해서 증가했다.

주석과 함께 성장한 페낭의 화상 거부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자동차산업 발흥과 함께 세계적인 고무 수요가 급증하면서 쇠퇴했다. 말레이반도 전역이 고무농원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유럽 자본과 식민당국은 중국인 노동자 대신 인도인을 끌어들였다. 영국인이 자본과 노동을 장악한 탓에 화인 거상들은 주도권을 빼앗겼고, 주석광업도 영국 자본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고무의 전성기와 함께 기존 거상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제국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저자는 이런 역사의 흐름을 치밀한 자료조사와 촘촘한 재구성으로 실감나게 보여준다. 권력과 부를 갖추고 행정·사법권까지 행사하며 화인사회의 합법적인 수장 역할을 맡았던 ‘카피탄 치나(Kapitan Cina)’의 등장도 흥미롭다. 카피탄은 영어로 캡틴(captain), 치나는 중국이란 뜻이다. 푸젠성 출신 거상 코라이환, 오늘날 페낭의 명물인 ‘페라나칸 맨션 뮤지엄’이 된 궁전을 지은 주석왕 청켕퀴, 1907년 화인 최초로 말레이연방 입법위원이 된 룡피까지 신화적 거상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또한 아편세를 둘러싼 비밀결사 건덕당과 의흥회의 혈투,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수탈당하고 아편으로 임금마저 빼앗긴 쿨리와 매음굴 여성들의 참상, 노예에 가까웠던 중국인 하녀 무이차이들의 한숨 등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화인 거부들이 궁전처럼 으리으리하게 세웠던 저택들이 실은 쿨리들의 피와 땀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