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패싱'한 주총 내실화 방안에 '주총 대란' 우려[임도원의 여의도 백브리핑]

지난 3월29일 서울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김수천 대표이사가 주주들에게 내부회계관리 운영실태를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지난달 24일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다음달 4일까지 입법예고되는 이 개정안에는 상장사들이 주주총회 소집 통지 때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반드시 제출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 4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에 따른 개정 절차입니다.

금융위는 당시 3월 말에 집중된 상장회사 정기 주총을 5~6월로 분산시킨다는 목적으로 내실화 방안에 이같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상장사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가 나오기를 기다려 주총 소집을 통지해야 하기 때문에 주총 시즌이 3월 말에서 뒤로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상장사들은 그러나 이같은 방안이 큰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배당을 주총에서 결정하는 회사들은 현실적으로 주총을 4월 이후로 미룰 수가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 12월 결산사인데, 배당기준일은 배당받을 주주를 연도말 주주로 보는 상법 규정을 고려할 때 12월 31일 이후로 옮길 수 없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의결권 행사 기준일만 옮길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배당기준일을 못 옮기면 배당 결정은 기준일로부터 3개월 내 해야하기 때문에 결국 주총을 3월 내에 해야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전체 상장사 중에 배당을 하는 회사는 절반 정도, 그 중에 배당을 주총에서 결정하는 회사도 절반 정도로 추산됩니다. 전체 상장사 중의 25%가량은 주총 내실화 방안으로 인해 주총 일자는 옮기지 못하면서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급조해야할 처지인 셈입니다.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는 최종적으로 여러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검토하여 확인해야 할 자료입니다. 주총 소집 통지시 첨부하도록 할 경우 사업보고서는 확정되지 않은 불명확한 자료가 제공될 수 있고, 감사보고서는 감사기간의 단축으로 인해 품질의 저하로 연결될 것으로 상장사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감사기간 단축도 한계가 있습니다. 자산 200억원 미만 중소기업을 제외한 모든 외부감사 대상 기업은 올해부터 2021년까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정해 놓은 표준감사시간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물리적으로 상법 상 소집통지기한(주총 2주전 통지) 등을 위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현재 입법예고된 주총 내실화 방안대로라면 내년에 요건을 맞춰 주총을 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며 “다른 상장사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곳들이 많다”고 전했습니다.경제계는 이같은 제도 개편은 시행령이 아닌 법 개정으로 추진해 제대로 된 규제영향평가를 받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회를 패싱하고 기업 규제를 강화하려다보니 이런 의도치 못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법 보다는 시행령 등 하위법령 개편으로 각종 정책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하반기 경제활력 보강 추가 대책’에서 하위법령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 담당자들이 당장 현장에서 상장사들의 호소부터 들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