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In] 태풍 못지않은 사회적 재앙 '해운대 메릴린 먼로풍(風)'

빌딩풍 갈등 점증…강남보다 초고층 즐비한 해운대 해안 더 심각
급기야 101층 엘시티 인근 상인 "못 살겠다" 실력행사 예고
고층건물 빌딩풍 환경영향평가 규정 없어…일본·미국은 의무화
빌딩풍은 일명 '먼로풍'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메릴린 먼로의 치마를 날린 그 바람인 탓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빌딩풍은 고층 건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바람이 좁은 빌딩 사이를 통과하며 소용돌이치고, 위로 솟구치거나 속력이 3∼4배 더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치마를 들어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곳은 초속 20∼30m까지 태풍급 바람이 불어 공사장 크레인을 쓰러뜨리거나 차량을 전도시키기도 한다는 기록도 있다.권순철 부산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한국방재학회 조사 결과 빌딩 높이가 150m 이상만 되면 빌딩풍이 생긴다는 결과가 있다"면서 "2008년 성균관대학교 연구팀이 서울 강남에서 빌딩풍을 측정했는데, 풍속이 북한산 중턱보다 더 강했다는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부산 해운대구에 이 '빌딩풍'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해운대구는 빌딩풍을 신종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올해 3월부터 대응책을 마련하는 용역에도 나선 상황이다.서울 지역에 빌딩 숲이 더 먼저 만들어졌지만 '빌딩풍'이 유독 부산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빌딩풍' 연구 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권 교수는 "서울과 달리 부산은 바람이 강한 해안가를 따라 초고층 빌딩이 생기다 보니 이런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강남의 경우는 일정한 바람이 지나가는 루트에 있는 건물만 영향을 받는다면 부산의 경우는 재난 수준에 가까운 센 바람이 불고 해일 가능성도 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해운대구는 5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이 28개 동이나 있어 전국에서 초고층 건물이 가장 밀집한 지역이기도 하다.'빌딩풍' 갈등이 가장 첨예한 곳은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앞에 지어지고 있는 101층짜리 건물인 '엘시티'다.

지난해 태풍 때 엘시티 유리 1천100장이 강풍에 흔들린 크레인 와이어에 맞아 깨지는 일이 있었는데, 유리 파편이 빌딩풍으로 빨라진 바람을 타고 200m 떨어진 오피스텔과 아파트를 덮쳐 유리 수백장을 깨는 피해를 줬다.

올해 태풍 때에도 엘시티 주변에서 회오리바람이 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는데, 이 또한 빌딩풍 탓인 것으로 추정된다.

엘시티 바로 옆 달맞이 62번 도로 150m 구간 점포 상인들은 빌딩풍으로 간판이 다 떨어졌다며 불만을 터트린다.
해당 지역 상인 한 관계자는 "엘시티가 들어서기 전에 있었던 돌출간판이 남아난 가게가 없다"면서 "새로 설치한 철제간판들도 안전상 문제로 떼어내야 할 처지"라고 주장했다.

이들 상인은 또 미포와 엘시티를 잇는 신설 중인 도로도 빌딩풍으로 인해 사람이 서 있기 힘들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조만간 집회를 열 예정이다.

권 교수는 해운대 재송동 센텀파크, 우동 마린시티, 중동 엘시티·달맞이 고개 등 5곳에 빌딩풍 측정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올해 12월 안에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는 고층 건물을 짓더라도 빌딩풍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규정한 법은 없다.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는 일정 높이 이상 건물을 지을 때 빌딩풍 영향 평가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다.

빌딩풍은 건축 모양만 바꾸면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권 교수는 말한다.

권 교수는 "빌딩의 형상 변화만 줘도 바람세기 악화시킬 수 있다.

빌딩 중간에 풍혈(바람구멍)을 뚫거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어도 된다"면서 "한국에는 아직 빌딩풍에 대비한 건축을 한 곳이 없는 곳으로 아는데, 정기적인 방풍 관리와 방풍 펜스, 차폐막을 설치해 빌딩풍을 약화하는 사후 대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해외에서는 빌딩풍을 풍력발전에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권 교수는 이에 대해 "바레인에서는 건물에 풍력발전기를 달아 상용화해 사용하는 경우 등이 있다"면서 "하지만 빌딩풍 바람이 일정치 않은 데다 소음 문제 등도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