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트마켓 너무 춥다"…美·유럽·아시아로 눈돌린 미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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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침체·과세 강화 추진 겹쳐세계적인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은 1970년대 ‘비디오 아트’를 앞세워 미국과 유럽 등 서구 미술의 주류 세계에 당당히 입성했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국제 미술계에서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얻었다. 서구에 진출한 ‘미술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미술계, 해외 전시·판매 총력
국내 미술시장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K아티스트’와 한국 미술계가 활동 반경을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쪽으로 발빠르게 옮기고 있다. 미니멀 회화를 비롯해 첨단 영상아트, 설치미술, 사진예술 등 다양한 장르를 국제무대에 내보이며 한국미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작품 판로 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정부의 미술품 양도세 강화 추진에 따른 미술계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작가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다.영국 테이트모던, 백남준 초대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하는 특별전이 지난 17일 영국 최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에서 개막했다. 백남준의 초기 비디오아트와 텔레비전 설치 작품부터 음악 작곡, 공연 예술까지 200여 점을 펼쳐 보인다. 작곡가 존 케이지, 안무가 머스 커닝햄과 협업 무대는 물론 위성 영상물 네 점을 상영하는 전용 룸도 마련됐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야심작들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담아내며 이 시대의 ‘멀티 플랫폼’을 되새기게 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은 테이트 모던의 별도 전시장 스타시네마에 초대됐다.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대표작 13점을 엮은 60분짜리 영상 작품 ‘뿌리들의 일어섬’을 내보일 예정이다.
지난달 30일 파리 퐁피두센터 메츠에서 회고전을 끝낸 이우환은 미국 워싱턴DC로 건너갔다. 허시혼박물관에서 여는 개인전을 위해서다. 내년 9월 1일까지 펼치는 개인전에는 설치 작품 ‘관계항’ 시리즈 신작 10점과 회화 ‘대화’ 네 점을 배치했다. 허시혼박물관이 야외 공간 전체를 작가 한 사람의 작품으로 채우는 것은 개관 이후 처음이다.세계적인 설치 작가 양혜규는 뉴욕 화단을 ‘노크’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재개관 기념으로 내년 3월까지 펼치는 개인전에는 ‘소리 나는 이동식 조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 여섯 점과 대형 벽 디자인 작업을 내보인다. 자연물과 인공물, 동양과 서양의 차이와 간극을 넘나드는 작가의 예술적 본령을 드러내며 뉴요커들의 감성을 자극할 예정이다. ‘비누 조각가’로 잘 알려진 신미경은 다음달 22일까지 런던 바라캇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가마 안에서 돌처럼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일어난 폭발로 생성된 파편을 다시 도자기로 구워낸 신작들을 고대유물과 함께 보여주는 전시회여서 더 주목된다.
한국 미술계의 아시아 진출도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채화 거장 정우범은 내년을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의 원년으로 정했다. 자카르타 국립현대미술관 1월 전시를 시작으로 반둥 수나리오미술관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연다. 사진작가 구본창과 도예가 이영희는 일본 전시를 열거나 준비 중이다.
아트페어에서 승부 거는 화랑
화랑업계와 경매회사들은 국내 컬렉터들이 그림 구입을 꺼리는 분위기를 고려해 세계적인 아트페어를 찾아 매출도 올리는 동시에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갤러리 현대는 곽덕준, 김창열, 이우환, 정상화, 김기린, 신성희 등을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 소개하며 작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미국 시카고아트페어와 영국 ‘프리즈 런던’에 이어 20일 폐막한 세계 3대 아트페어 파리 ‘피악’에도 참가해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6월 세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에 참가해 한국 단색화를 홍보한 국제갤러리도 파리 피악에서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의 시대별 대표 작품을 걸어 프랑스 미술 애호가들의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박영덕화랑을 비롯한 표화랑, 샘터화랑, 금산갤러리, 아트파크갤러리는 미국 플로리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12월 5~8일), 청작화랑은 컨텍스트 마이애미아트페어(12월 3~8일)에 참가해 외국 화랑과 치열한 판매전을 벌일 예정이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은 다음달 24일 홍콩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 판매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크리스티 코리아도 같은 날 홍콩크리스티 경매에 김환기의 대작 등 국내 작가 30여 명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K아트의 글로벌화는 작가나 기업들의 개별적인 도전만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며 “국내에서 먼저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을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장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급하다”고 지적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