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인문학적 글쓰기…재미·중량감 함께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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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신춘문예 장편 마감 D-29“소설은 재미있어야 해요. 그래서 대중적 감각이 더 필요한 거죠. 가볍고 경쾌하게 쓰면서도 무게가 있는 글을 쓰는 게 중요하지만 소설의 ‘해피엔드’를 만드는 것은 재미입니다.”지난 9월 여덟 번째 장편소설 <빛의 과거>를 펴낸 은희경 작가(60)는 ‘2020 한경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예비 작가들에게 “소설은 항상 그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신문사가 주관하는 신춘문예 중 유일하게 장편소설을 공모한다. 한경 신춘문예 응모 부문 중 장편소설·시나리오 원고 마감일(11월 20일)을 한 달가량 앞두고 예비 작가들을 위한 기성 작가들의 조언을 들어봤다. 시·수필 부문 마감일은 12월 4일이다.은 작가는 “지금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건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는 작업 같지만 그래서 더욱 소설이 필요하다”며 “기존 시스템에 영합하는 목소리, 명예를 얻고 돈을 버는 일들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존중받는지를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배 작가의 조언
장편 '빛의 과거' 쓴 은희경
수림문학상 받은 김의경
작년 소설 3권 출간 은모든
은 작가는 2012·2013년 장편소설 심사위원을 맡으며 한경 신춘문예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문학이) 쓸모없다는 게 지금 기준으로 쓸모없는 것일 뿐”이라며 “인류 문명의 많은 변화는 항상 세상과 인간을 향해 질문했던 사람들이며 문학은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비 작가들을 향해서는 “인간을 정보에 의해 판단하려 할수록 인간은 그리 간단치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며 “소설을 인문학적 글쓰기와 읽기라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스웨덴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만난 김언수 작가(47)는 장편소설이 지닌 힘을 강조했다. 그는 “콘텐츠의 미래는 장편소설에 있다”며 “소설은 이야기의 완전체로, 넷플릭스 등의 영향으로 앞으로 영상과 소설은 함께 이야기를 만들며 진화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2010년 내놓은 장편 <설계자들>은 유럽 24개국에 번역·출간됐고, 허진호 영화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김 작가는 “외국에선 책을 내야 작가고 한 편의 장편소설 쓰기를 꿈꾸는데 한국은 단편 중심의 문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편소설은 이야기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며 “70장짜리 상상력의 근육과 1500장짜리 상상력의 근육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에 교훈이나 잠언을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소설은 체험하는 것이며 소설가는 스스로 깡패가 돼 싸움도 하고 암살자가 되는 등 소설 속 새로운 체험을 통해 다른 삶들을 확장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 후배들을 기다리는 한경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 선배들은 보다 구체적인 조언을 했다. 2014년 <청춘파산>으로 당선돼 지난해 9월 두 번째 장편 <콜센터>(광화문글방)로 제6회 수림문학상을 받은 김의경 작가는 “마감 기한이 30일가량 남았다고 초조한 마음에 급하게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며 “비약이 갑자기 나오면 후보작 선정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0편이 있다면 그중 80편은 비슷한 생각을 하기에 눈에 띄는 소재를 잡아서 독특하게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재미도 중요하지만 재미만 있고 주제 의식이 희미한 소설보다는 그 안에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 한경 신춘문예’로 등단해 당선작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을 비롯해 지난해 장·단편 세 권을 출간한 은모든 작가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만큼 단점을 대대적으로 손보려고 하기보다는 소설이 가진 장점을 통해 본인이 얘기하고 싶은 것에 더욱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무엇보다 장편은 인물도 많이 등장하고 시작할 때부터 설계와 방향성을 갖고 써야 하기에 단편을 쓸 때와 다른 근육이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남은 시간 동안 충분히 숙고하며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고 덧붙였다.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