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정시 늘리겠다"에 교육부 정책 선회…現 고1부터 적용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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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교육부 '엇박자'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수학능력시험 위주 정시모집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달 1일 “대학 입시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도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이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강화’에 머무르자 대입제도 개편 방향을 구체적으로 직접 제시한 것이다. 이르면 올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치르는 2022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위주 정시 비중이 대폭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대입제도, 공정하고 단순해야”문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며 “최근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고, 고교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교육계도 반응 엇갈려
문 대통령은 줄곧 대입제도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공정’과 ‘단순’을 꼽아왔다.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앞둔 2017년 12월에는 “새로운 대입제도가 갖춰야 할 조건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 입장에서 볼 때 무엇보다 공정하고 누구나 쉽게 준비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일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대입 관련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오자 “그동안 입시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며 “대학 입시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교육계에선 문 대통령이 이때부터 공정하고 단순한 입시제도로 꼽히는 수능 위주 정시 비중 확대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하지만 문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든 교육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수능 위주 정시 비중 확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오지선다형 수능은 미래 교육에 맞지 않다”고도 했다. 대신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비교과 영역을 전형 요소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부는 지난해 공론화 과정까지 거쳐 손을 댄 대입제도를 다시 전면 개편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며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이 학생부종합전형을 손보는 데 그치자 문 대통령이 ‘정시 모집을 확대하라’고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2022학년도부터 정시 비중 늘어날 듯
교육부는 크게 당황한 모습이다. 그간 더불어민주당 및 청와대와 함께 대입제도 개편 논의를 위한 실무 협의회에서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 문제는 이번 대입제도 개편 논의에 포함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교육부와 청와대 사이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며 “교육부의 정책이 청와대에 지나치게 끌려 다니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11월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대입제도 개편 방안이 수능 위주 정시 모집 비중 확대 쪽으로 향하자 교육 단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정시가 확대되면 학교는 수능과 문제 풀이 위주 교육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공교육이 다시 붕괴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그간 수시·정시 비중이 너무 한쪽에 쏠려 있어 불균형했던 만큼 정시를 일정 부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르면 2022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큰 틀에서의 대입제도 개편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치르는 2024학년도 대입부터 가능하지만 수시·정시 비율은 각 대학이 발표하는 입학전형에서 최종 결정되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교육부가 재정 지원 등과 연계해 대학들의 정시 비중 확대를 더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다”며 “지난해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던 ‘정시 비중 45% 확대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