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 탓이오' 없이는 갈등의 질곡 못 벗어난다

대립·갈등·반목 격화, 국가잠재력 뿌리째 흔들어
대통령부터 정치 탓 앞서 '통합의 길' 성찰 필요해
"다른 걸 틀리다 규정 말고 반대 목소리도 들어야"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통합과 공정을 화두로 내놨다. 문 대통령은 그제 종교지도자와의 간담회에서 “저부터 노력할 테니 국민통합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한 데 이어,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을 경청하고 성찰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공정이 바탕이 돼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평화도 있을 수 있다”며 “공정을 위한 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임기 후반기의 통치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광장의 외침이 정치를 압도하고, 온 나라가 대립과 반목, 갈등과 분열로 빠져드는 작금의 상황은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대내외적으로 엄혹한 시기에 국력을 허비하고, 미래를 위한 잠재력까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모두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하지만 문 대통령의 인식과 국민의 인식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가 커 보인다. 갈등과 대립을 촉발한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선행돼야 할 텐데, 대통령 연설에선 “합법적 불공정도 시정해야 한다”는 에두른 표현 이상을 들을 수 없었다. 선진국에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이 개혁의 상징인 것처럼 강조했을 뿐이다. 종교지도자 간담회에서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갈등이 국민 갈등으로 증폭되고 있다”는 대통령 발언은 현재 상황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비쳤다. 야권에서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현재 사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국정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있다. 문 대통령이 2년 반 전 취임사에서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던 것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모든 국민이 아니라 한쪽의 국민만 ‘국민’으로 여긴 것은 아닌지 깊이 돌아봐야 할 것이다. 반성에 인색해서는 불공정과 ‘내로남불’에 분노한 국민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정부가 제대로 된 반성은커녕 잘못을 시인한 적도 거의 없다. 정책 오판으로 인한 ‘정부 실패’를 가리는 데만 급급했을 뿐이다. 해외요인을 탓하고, 경제통계 중에 유리한 것만 골라 자화자찬하며, “경제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주문(呪文)을 외우는 식이다. 3년째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아직도 경제활력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강조하니, 그 성과는 언제 나타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여당은 여당대로 경제활성화 입법이 지지부진한 것을 야당 탓만 한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가 애초의 다짐대로 국민통합에 나서려면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을 새겨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 운동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타인을 경청하라는 것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이 문 대통령에게 “다른 것을 틀리다고 규정하지 말고, 반대 목소리도 듣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주문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탓하는 편협한 정치로는 국민통합도 공정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