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로 금강산관광 막힌 北, 대남 기대 접고 독자개발로 선회

평양서 남북 합의한 관광재개 1년 넘게 답보…南 태도에 실망한 듯
北 단독 경제개발 의지 피력…남북 대화 서두르지 않을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측 금강산관광시설 철거 지시는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남한과 실질적인 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 없이는 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독자개발로 정책 방향을 선회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남측이 설치한 시설들을 철거할 것을 지시했다고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절 남측의 현대그룹 등과 함께 추진한 금강산관광에 대해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 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이어 "우리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관광지구를 '우리식으로' 새로 건설할 것을 지시했다.

2008년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중단된 금강산관광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우선 정상화"에 합의한 사업이다.

이후 지난해 11월 18일 금강산관광 시작 20주년을 기념하는 남북공동행사가 북측 금강산에서 열리는 등 남북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조만간 금강산관광이 다시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그러나 대북 제재라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있고, 확실한 비핵화에 대한 담보 없이 관광 재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일각의 우려도 제기되면서 남측이 섣불리 재개에 나서지 못했다.

유엔 제재는 대북 관광 자체를 막지 않지만, 현금의 대량 이전을 금지하고 관광사업에 필요한 각종 물자 반출이 제재 대상일 수 있어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조차 미국과 협의가 필요하고, 평양에서 경기를 치른 한국 축구선수들에게 미국 브랜드인 나이키 유니폼을 북한에 두고 오지 말라고 당부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이 될 수 있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남측 단독으로 결정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남측이 대북제재 등을 이유로 남북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북한은 연일 선전매체들을 통해 남측이 '미국 눈치'를 보는 '외세의존정책'을 중단하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라고 요구했다.

김 위원장의 국내 현지지도에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동행한 것을 두고 사실상 관광 재개를 막는 미국을 염두에 둔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철거 지시는 남측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강조한 부분에서 대남 협력 대신 자체적으로 관광사업 등 각종 경제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김 위원장은 시설 철거를 지시하면서도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고도 말해 남측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을 계속할 생각이 있음을 드러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관광 같은 유엔 안보리 제재에 걸리지 않는 사업으로 외화를 벌면서 자력갱생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당분간은 북미협상을 우선하면서 남북 간에는, 특히 당국자 회담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자세"라고 말했다.

상황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김 위원장이 철거를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진행하라고 지시한 만큼 일방적인 철거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다만 북한이 실제 철거를 단행할 경우 평양공동선언 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관광과 마찬가지로 현재 답보 상태인 개성공단 재개도 요원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정부 당국자는 "(평양공동선언) 번복이라고 하긴 좀 이르다"며 "금강산 관광은 남북협력 사업이므로 정부로선 9·19 공동선언을 이행한다는 입장에서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