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푸틴·오르반이 트럼프에 우크라 조사 분위기 조성"

"두 사람이 우크라를 '부패국' 폄하…바이든 전 부통령 공격 조장은 안해"
"백악관 내 러시아 등 영향력 확대 견제할 인사 사라졌다"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조사를 압박하기 직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복수의 전·현직 소식통을 인용해 두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부패한 나라로 깎아내려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헝가리는 크림반도 병합, 국경 분쟁 등으로 우크라이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다.

관련 사정에 밝은 한 전직 당국자는 푸틴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 5월 초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부패의 소굴"이라고 일컬었다고 전했다. 이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푸틴 대통령은 아직 그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러시아 정부가 멸시하는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연계된 코미디언일 뿐이라고 비난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명 코미디언 출신으로 한 인기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대통령 역을 맡아 우크라이나 '국민배우'로 떠올랐다.

또 비슷한 시기인 지난 5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오르반 총리와 백악관에서 회담하며 '브로맨스'를 과시한 바 있다. 당시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련 내용을 잘 아는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르반 총리와 회담 이후 우크라이나 및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된 게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간의 역사 깊은 국경 분쟁 등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적대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신과 노선을 달리해 '친서방 개혁가'의 행보를 걷고 있는 점도 언짢게 여기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들은 푸틴 대통령이나 오르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를 폄하하기는 했지만, 그가 우크라이나 상황을 들어 바이든 전 부통령 측을 공격할 수단으로 삼도록 조장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를 고리로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공세를 편 것은 철저히 트럼프 대통령 본인과 그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의 의향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15일 하원에서 비공개 증언한 조지 켄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가 '우크라이나 의혹'과 관계된 푸틴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켄트 부차관보는 지난 4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할 잠재적 동반자로 대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미 당국자 사이에 팽배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내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우크라이나를 업신여기는 태도를 드러냈다고 켄트 부차관보는 증언했다.
켄트 부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가 남아 있던 마리 요바노비치 전(前)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를 조기 해임한 데 이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것을 막고, 급기야 탄핵을 촉발한 3억9천100만달러 규모의 미국 군사원조도 보류한 점을 지적했다.

소식통들은 이처럼 올해 들어 미국에 대한 푸틴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의 입김이 세진 것은 이들을 견제할 만한 미 행정부 인사들이 경질되거나 영향력이 약해진 탓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강조하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백악관의 어른들'이 모두 물러난 것이다.

이어 러시아를 견제하려면 우크라이나를 후원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온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마저 백악관을 떠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련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할 만한 측근이 사라졌다고 WP는 전했다. 한 전직 백악관 당국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국방력이 약해져만 가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