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日규제, 정부 대응 평가하라"…우리銀 "인포데믹·유니콘 뜻은"

금융공기업·시중銀 입사 필기시험 살펴봤더니…

금융이슈에 대한 가치관·견해
금융공기업, 집중적으로 출제
금융공기업들이 최근 채용시험에서 국내 경제·금융 이슈에 대한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를 잇달아 내고 있다. 수험생들이 지난 19일 한국은행 필기시험 고사장인 용산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있다. 공태윤 기자
‘탈세계화의 원인, 한국이 맞이한 리스크와 대응방안에 대해 서술하라.’

‘최근 금융 분쟁이 빈발하는 이유를 금융소비자 측면과 금융기관 측면에서 설명하라.’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올 하반기 공채 필기시험 문제다. 금융공공기관들은 이번 시험에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시사성 있는 경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주로 물었다. 취업준비생들은 “예년에 비해 문제가 까다로워 힘들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전문가들은 “시사성 강한 문제가 자주 출제되는 만큼 평상시 경제신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문제 파악과 해법 제시 능력을 꾸준히 키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금융이슈에 대한 논리력 평가

지난 19일은 금융공공기관 열 곳이 같은 날 필기시험을 치른 ‘A매치데이’였다. 이날 한은을 비롯해 금감원, 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한국거래소, 신용보증기금 등은 수험생의 논리력과 사고력을 평가하는 논술시험도 시행했다.

한은은 공통 논술과목에서 미·중 무역 분쟁과 한·일 경제 전쟁 등으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에 대해 수험생들의 가치관과 견해를 물었다. 경제학 서술문제에선 ‘중립금리의 추세적 하락 요인’ ‘외환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활용하고 있는 통화정책’ 등의 문제를 출제했다. 특히 전공시험에선 해외 경제 학술논문의 예시문이 나오는가 하면, 학부 수준을 넘는 문제가 다수 출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오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부 문제는 대학원 수준이 돼야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난도가 높았다”며 “학부생으로선 풀기 어려운 문제가 다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금감원 필기시험에선 최근 이슈가 된 파생결합증권(DLS)과 일본 수출규제가 등장했다. 금감원은 ‘금융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역할을 서술하라’고 했다. 또한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대책을 3~4가지 제시하고, 이 대책이 적절했는지 논하도록 했다.산업은행은 ‘디지털 전환기 도래에 따라 요구되는 금융기관의 플랫폼 대응전략’을 논술 문제로 출제했다. 예금보험공사는 ‘은행들의 DLS사태와 관련한 건전성 규제 방안이 무엇일지’를 물었다. 예보 인사팀장은 “최신 금융이슈를 통해 지원자의 통합적 사고력을 평가하고자 이런 문제를 냈다”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은 디플레이션의 개념과 원인, 영향, 대응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논술하도록 했다.

시중은행, 경제·금융상식 다수 출제

이날 한국은행 필기시험을 끝낸 한 수험생이 다른 회사 고사장으로 가기 위해 오토바이에 오르고 있다. 공태윤 기자
금융공기업과 달리 시중은행들은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직업기초능력 평가와 경제·금융상식 등 두 과목을 주로 평가했다. 깊이 있는 지식보다는 경제·금융 전반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지 묻는 문제가 많았다.

국민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설립 배경이 된 브레턴우즈 체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수단인 공개시장조작,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를 뜻하는 리니언시 관련 문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윤창호법’이라 불리는 음주운전 처벌 강화 기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KEB하나은행은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불거진 메자닌, 약정 만기에만 권리행사를 할 수 있는 유러피언 옵션 등 경영 관련 질문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설립연도(1899년)를 묻는가 하면,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인 ‘인포데믹’, 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뜻하는 유니콘, 첨단 기술의 발달로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인 빅블러 등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기업은행은 페이스북에서 개발 중인 암호화폐 ‘리브라 코인’, 빅맥지수, 넛지 등의 개념을 물었다. 오는 27일 시험이 예정된 농협은행(5급)은 논술문제를 출제한다. 최근 경제·금융이슈와 함께 ‘탈농촌시대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준비할 것을 전문가들은 권했다.

대기업, 반의어·유의어 정리해야

이번 주말에는 롯데, 금호아시아나그룹, 한국전력공사, 농협은행 등의 입사시험이 예정돼 있다. 올해부터 주요 대기업들은 입사시험에서 상식 영역을 없애고 △언어 △수리 △추리 △시각적 사고 등의 유형을 출제하고 있다. 지난주 치러진 삼성직무적성검사(GSAT) 언어영역에선 ‘세다’ ‘가다’ 등의 어휘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정확한 단어의 의미와 자주 쓰이는 반의어, 유의어, 사자성어 등에 대한 기본 지식을 물었다. GSAT 수리영역에선 피보나치 수열이 나왔다. 인·적성 전문가들은 “수리영역은 중학교 수학 수준에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자주 나온다”며 “기초 수학을 공부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금호아시아나는 한자시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롯데는 27일 오후 서울과 부산에 고사장을 마련해 시험을 치른다. 또 한 차례 ‘퀵수송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