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안된다" 韓日총리 '소통' 공감대…"관계개선 분기점"

아베 "한일관계 이대로 방치안돼"…이총리 "지혜 모아 난관 극복"
文대통령, 친서에서 현안 조기해결 당부…'중요한 파트너' 강조
징용배상 입장차 재확인…아베 "국가간 약속준수", 이총리 "협정 존중"
대화 모멘텀 유지가 관건…향후 정상회담 등 '톱다운' 해결 가능성도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24일 회담은 한일 양국 간 협력과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였다.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8월 정부의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어온 가운데 갈등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일종의 '분기점'을 마련했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평가다.

이날 개최된 한일 총리회담은 지난해 10월 갈등 국면이 본격화된 이후 처음 이뤄진 양국 최고위급 대화로,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공식 채널을 통한 대화가 본격화할지 주목된다.

다만 한일 갈등의 근본 배경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선 일본 정부가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아 당장의 관계 진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결국 한일 양국이 대화 동력을 유지하면서 한일 정상회담 등 '톱다운' 방식을 포함한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각 현안에 대한 이견을 좁혀 나가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총리와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 도쿄(東京)의 총리관저에서 21분간 회담하고 한일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이 총리는 회담에서 "한일관계의 경색을 조속히 타개하기 위해 양국 외교당국 간 대화를 포함한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촉진시켜 나가자"고 제안했다.일본 외무성 자료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현재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중요한 한일 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 당국 간 의사소통을 계속해 나가자"고 밝혔다.

현 한일 관계에 대한 동일한 인식을 기반으로 두 총리가 일제히 '소통'을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이 총리를 통해 아베 총리에게 전달한 친서에도 한일 양국이 가까운 이웃으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파트너임을 강조하고, 양국 간 현안이 조기에 해결될 수 있도록 서로 관심을 갖고 노력해나가자는 취지가 담겼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이날 회담에서 강제징용 배상, 수출규제 조치, 지소미아 종료 등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일 갈등이 표면화된 지 1년여만에 양국 총리가 만나 '소통'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에 정부는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도쿄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국 관계가 7월 이후 어려운 국면이 계속됐는데 3개월 반여 만에 총리회담이 이뤄졌다는 것은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존에는 길(소통채널)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그 길이 깔리면 그 위에서 이뤄지는 대화와 협의는 아무래도 속도가 좀 더 날 수 있지 않겠나"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핵심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입장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양국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이르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징용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이에 따른 경제협력자금 지원 등으로 종결된 사안이라고 본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으로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난 6월 일본에 이른바 '1+1'(한일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위자료 지급)안을 제안했지만, 일본이 거부했고 이후로도 협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일본은 지난 7월 결정한 수출규제 조치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무관하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사실상의 경제보복 조치라고 보고 있다.

양국 갈등이 심화하면서 지난 8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이날 "한국에는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준수함으로써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려 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고 일본 외무성이 전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한국도 한일청구권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양국이 지혜를 모아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양국 협력과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한 만큼 이후 대화 동력을 유지하며 한일 정상회담 등 '톱다운' 외교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오늘 특별히 언제 정상회담을 하자고 구체적으로 제안한 것은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정상회담에 부정적이거나 가능성을 배제하는 뜻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후 최고위급 대화 전망에 대해 "예를 들어 11월에 국제회의 2개가 있다"며 "외교당국은 우선 이 총리 방일에 집중했는데 이게 끝나면 (최고위급 대화에 대해) 검토해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연내에 예정된 다자회의는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태국, 10월 31일∼11월 4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칠레, 11월 16∼17일) 등이다.

물밑 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질 경우 이들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맞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지소미아가 다음 달 23일부터 효력을 상실하고, 강제징용 배상 관련 일본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 등이 연내 이뤄질 수 있어 적절한 시기에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갈등이 악화할 수 있는 만큼 최고위급 대화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