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51) 외로운 밤중수유의 원한(?)이 씻기는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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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기 전에는 몰랐더랬다.
내 남자가 육아에 소질이 있는 편인지 전혀 아니올시다인지.그냥 막연히 나한테 이렇게 자상하고 잘해주는데 아이도 예뻐하지 않을까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임신도 출산도 처음이니까 육아도 '다들 이런가보다' 하면서 그냥 그렇게 정신없이 옷에 밥풀 묻혀가며 머리도 못 감고 지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직한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는 아직 불어난 살이 빠지지 않아서 얼굴은 부어있고 옷이 매우 끼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회인이 된 듯 너무나 뿌듯했던 기억이다.아이를 낳고 보면 미혼 때는 대화가 뜸했던 직장 동료들하고도 아이 키우는 얘기로 대동단결하며 수다 꽃을 피우게 된다.
'아이가 밤에 잠은 잘 자는지', '기저귀는 어디 브랜드를 쓰는지', '아이와 외출할 땐 어땠는지' 남녀를 떠나 아이 엄마 아빠라는 공통점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또래 아이를 키우는 그 직원은 "아기는 딴 방에 따로 재우고 와이프와 자는데 밤에 애가 깨면 내가 달려가서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인다. 나 없을 때 와이프가 애 보느라 힘들었으니까 밤에는 내가 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와이프가 일해요?" "아뇨."
뭔가 나 혼자 세상 끝 막다른데 가 있는 기분이었다.
'엥? 그런 아빠도 있는 거였어?'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오던 바로 그날 남편은 "난 내일 아침에도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밤에 깨지 않게) 작은방 가서 잘게"라며 베개와 이불을 들고 가버렸다.
'2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이 울음소리에 설치면 다음날 일에 지장이 당연히 있겠지' 싶어 별다른 불만도 갖지 않았다.
나도 조리원에서 밤중 수유 특훈(?)을 받고 온 터라 좀 걱정 속에 무사히 아이와 집에서의 첫 밤을 무사히 보냈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아이가 자는 침대를 한 번씩 들여다봐야 했다. 숨은 잘 쉬는지 별게 다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 동료 얘기를 듣고 보니 왜 나만 밤새 아이 울음소리에 반응해야 했던 건가 싶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인데 어쩐 일인지 애가 조금만 '에앵'소리를 내도 귀신같이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모성애라는 게 참 신기한 거구나 싶었는데 그런 내 노력들이 뭔가 불공정한 남녀 차별의 산물로 느껴졌다.
지금은 자칭 타칭 딸바보라 할 정도로 아이들이라면 끔찍한 남편을 보면서 신생아 때 아이를 혼자 돌보며 독수공방(?) 해야 했던 기억은 내 마음 깊숙이 묻어두고 있었다. 지난 에세이에서 쓴 것처럼 [아이가 느끼는 아빠 존재감 8할은 '긍정의 말습관'] 항상 아이가 아빠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 원한(?)이 봉인 해제 되는 일이 최근 있었다.
외국에서 살다가 최근 아이 돌사진 촬영을 위해 한국에 온 친한 동생과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데 그 친구의 남편 얘기로 화제가 돌려졌다.
"애가 그래도 잠도 오래 자고 순한 편이라 그렇게 힘들진 않겠어."
"아니야 언니. 하루 종일 애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래도 남편이 출근 전 6시 30분에 첫 수유해주고 가고 퇴근해서 오면 아이 목욕도 맡고 마지막 분유 먹이면서 재워주니까 그때야 좀 쉴 수 있어. 거기선 남편이 빨래고 청소고 설거지며 다 해줬는데 요 며칠 친정 와있으니까 오히려 애 빨래랑 젖병 씻기까지 내가 다 해야 해서 힘들어."
토르의 망치가 내 머리를 치고 갔다.
"뭐? 난 수유고 목욕이고 재우는 것도 다 혼자 했는데? 애들 어릴 땐 우리 남편은 아예 딴 방 가서 자고 나 혼자 애 봤다고!"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고 '그냥 내가 하면 되지', '이 정도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해달라고 부탁하느니 내가 하고 말지'라며 목욕 한 번 시켜달라 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내 노력이 훗날 켜켜이 쌓여있는 억울함으로 표출될 줄은 나도 몰랐던 터라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그때 잠자코 옆에서 과자를 먹던 큰 딸이 득달같이 물었다.
"엄마 진짜야? 아빠가 나 어릴 때 하나도 안 돌봐줬어?"
"아..아니 그게 아니고..밤에 잘 때 우유만 엄마가 줬다고. 아빠가 너네 많이 봐줬어. 얼마나 예뻐했는데."
나도 모르게 본심을 털어놓았다가 아차 싶어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아이는 실망감에 가득 찬 표정이다.
이미 눈치가 빤한 아이는 집에 놀러 온 이모의 아이는 아빠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데 자기는 어려서 아빠가 그 정도 수고로움을 감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마음에 쌜죽해졌다.
아이는 며칠 후에도 "엄마 근데 아빠는 정말 날 그렇게 안 돌봤어?"라며 확인 사실을 했다.
"아니라고! 정말 너네 많이 돌보고 예뻐했어. 아빠는 딸바보잖아!"
밤중 수유. 그때는 세상이 암흑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힘들고도 긴 터널이었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육아라는 긴 마라톤에서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순간, 정말 찰나였을 뿐이다.남편은 딴 방에서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고 상쾌하게 아침을 맞을 수 있었겠지만 아이가 자려고 꼬물거리는 모습, 막 잠들었을 때 그 평온한 표정, 자면서 우유를 먹으며 오물거리는 입, 안 자려고 버둥거리면서 흘렸던 그 구슬 같은 눈물방울, 자다가 옆에 엄마가 있나 없나 확인하려고 눈 살짝 떠보고 보이면 안심하고 자던 그 눈빛, 내 손 위에 포갰던 그 작은 주먹, 만지면 보들보들 찹쌀떡 만지는 것 같은 귀여운 볼. 이런 소중한 추억은 모두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다시 삼아본다.
내 남자가 육아에 소질이 있는 편인지 전혀 아니올시다인지.그냥 막연히 나한테 이렇게 자상하고 잘해주는데 아이도 예뻐하지 않을까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임신도 출산도 처음이니까 육아도 '다들 이런가보다' 하면서 그냥 그렇게 정신없이 옷에 밥풀 묻혀가며 머리도 못 감고 지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직한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는 아직 불어난 살이 빠지지 않아서 얼굴은 부어있고 옷이 매우 끼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회인이 된 듯 너무나 뿌듯했던 기억이다.아이를 낳고 보면 미혼 때는 대화가 뜸했던 직장 동료들하고도 아이 키우는 얘기로 대동단결하며 수다 꽃을 피우게 된다.
'아이가 밤에 잠은 잘 자는지', '기저귀는 어디 브랜드를 쓰는지', '아이와 외출할 땐 어땠는지' 남녀를 떠나 아이 엄마 아빠라는 공통점 덕분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또래 아이를 키우는 그 직원은 "아기는 딴 방에 따로 재우고 와이프와 자는데 밤에 애가 깨면 내가 달려가서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인다. 나 없을 때 와이프가 애 보느라 힘들었으니까 밤에는 내가 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와이프가 일해요?" "아뇨."
뭔가 나 혼자 세상 끝 막다른데 가 있는 기분이었다.
'엥? 그런 아빠도 있는 거였어?'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오던 바로 그날 남편은 "난 내일 아침에도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밤에 깨지 않게) 작은방 가서 잘게"라며 베개와 이불을 들고 가버렸다.
'2시간 간격으로 깨는 아이 울음소리에 설치면 다음날 일에 지장이 당연히 있겠지' 싶어 별다른 불만도 갖지 않았다.
나도 조리원에서 밤중 수유 특훈(?)을 받고 온 터라 좀 걱정 속에 무사히 아이와 집에서의 첫 밤을 무사히 보냈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아이가 자는 침대를 한 번씩 들여다봐야 했다. 숨은 잘 쉬는지 별게 다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 동료 얘기를 듣고 보니 왜 나만 밤새 아이 울음소리에 반응해야 했던 건가 싶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인데 어쩐 일인지 애가 조금만 '에앵'소리를 내도 귀신같이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모성애라는 게 참 신기한 거구나 싶었는데 그런 내 노력들이 뭔가 불공정한 남녀 차별의 산물로 느껴졌다.
지금은 자칭 타칭 딸바보라 할 정도로 아이들이라면 끔찍한 남편을 보면서 신생아 때 아이를 혼자 돌보며 독수공방(?) 해야 했던 기억은 내 마음 깊숙이 묻어두고 있었다. 지난 에세이에서 쓴 것처럼 [아이가 느끼는 아빠 존재감 8할은 '긍정의 말습관'] 항상 아이가 아빠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 원한(?)이 봉인 해제 되는 일이 최근 있었다.
외국에서 살다가 최근 아이 돌사진 촬영을 위해 한국에 온 친한 동생과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데 그 친구의 남편 얘기로 화제가 돌려졌다.
"애가 그래도 잠도 오래 자고 순한 편이라 그렇게 힘들진 않겠어."
"아니야 언니. 하루 종일 애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래도 남편이 출근 전 6시 30분에 첫 수유해주고 가고 퇴근해서 오면 아이 목욕도 맡고 마지막 분유 먹이면서 재워주니까 그때야 좀 쉴 수 있어. 거기선 남편이 빨래고 청소고 설거지며 다 해줬는데 요 며칠 친정 와있으니까 오히려 애 빨래랑 젖병 씻기까지 내가 다 해야 해서 힘들어."
토르의 망치가 내 머리를 치고 갔다.
"뭐? 난 수유고 목욕이고 재우는 것도 다 혼자 했는데? 애들 어릴 땐 우리 남편은 아예 딴 방 가서 자고 나 혼자 애 봤다고!"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고 '그냥 내가 하면 되지', '이 정도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해달라고 부탁하느니 내가 하고 말지'라며 목욕 한 번 시켜달라 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내 노력이 훗날 켜켜이 쌓여있는 억울함으로 표출될 줄은 나도 몰랐던 터라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그때 잠자코 옆에서 과자를 먹던 큰 딸이 득달같이 물었다.
"엄마 진짜야? 아빠가 나 어릴 때 하나도 안 돌봐줬어?"
"아..아니 그게 아니고..밤에 잘 때 우유만 엄마가 줬다고. 아빠가 너네 많이 봐줬어. 얼마나 예뻐했는데."
나도 모르게 본심을 털어놓았다가 아차 싶어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아이는 실망감에 가득 찬 표정이다.
이미 눈치가 빤한 아이는 집에 놀러 온 이모의 아이는 아빠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데 자기는 어려서 아빠가 그 정도 수고로움을 감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마음에 쌜죽해졌다.
아이는 며칠 후에도 "엄마 근데 아빠는 정말 날 그렇게 안 돌봤어?"라며 확인 사실을 했다.
"아니라고! 정말 너네 많이 돌보고 예뻐했어. 아빠는 딸바보잖아!"
밤중 수유. 그때는 세상이 암흑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힘들고도 긴 터널이었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육아라는 긴 마라톤에서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순간, 정말 찰나였을 뿐이다.남편은 딴 방에서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고 상쾌하게 아침을 맞을 수 있었겠지만 아이가 자려고 꼬물거리는 모습, 막 잠들었을 때 그 평온한 표정, 자면서 우유를 먹으며 오물거리는 입, 안 자려고 버둥거리면서 흘렸던 그 구슬 같은 눈물방울, 자다가 옆에 엄마가 있나 없나 확인하려고 눈 살짝 떠보고 보이면 안심하고 자던 그 눈빛, 내 손 위에 포갰던 그 작은 주먹, 만지면 보들보들 찹쌀떡 만지는 것 같은 귀여운 볼. 이런 소중한 추억은 모두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다시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