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년 걸릴 계산, 200초면 끝"…'IT 공룡'이 사활 건 양자컴이 뭐길래

IT 판도 뒤흔들 양자컴퓨터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인류 첫 비행 맛보는 것 같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연구팀이 양자컴퓨터에 쓰일 수 있는 위상물질 나노소자를 실험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의 실용화가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구글이 현존하는 최고 성능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계산을 자사의 54 큐비트 양자컴퓨터 ‘시커모어’가 200초 만에 해냈다고 밝히면서다.

구글은 소문으로 떠돌던 이 내용을 지난 23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시커모어의 계산을 ‘인류 최초의 비행(라이트 형제)’에 비유했다. 양자컴퓨터는 디지털컴퓨터가 지배하는 전자산업의 판도를 바꿀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양자상태(quantum status)를 이용하는 양자컴퓨터를 이해하려면 1900년 이후 태동한 양자역학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확률의 미학’ 양자역학

IBM의 양자컴퓨터 IBM-Q
고전역학에선 물체의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정의되는 운동량(P=mv)을 알면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다르다. 운동량을 알아도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대략의 위치를 확률로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양자는 불연속값으로 표현되는 초미세 물리량을 말한다. 빛(광자), 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길이, 에너지, 운동량처럼 단위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뜻도 담고 있다.

이런 양자의 혼란스러운 상태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전자의 움직임이 이 원리를 따른다.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상태를 떠올리면 된다.

양자상태를 기술한 인류사 최초의 수학적 기법이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다. 독일 물리학자 막스 보른은 난해한 이 미분방정식을 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확률밀도함수’로 바꿔서 해석했다. 이 함수를 적분하면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 나온다. 슈뢰딩거는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보른은 1954년 같은 상을 받았다. 양자역학은 빛(광자)의 움직임에 천착한 아인슈타인에서 시작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보른 등을 거치며 발전했고 20세기 내내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화두였다.‘비트’가 불안해지면 ‘큐비트’

양자역학을 컴퓨터로 구현한 게 양자컴퓨터다. 이 컴퓨터의 기본연산 단위는 큐비트다. 디지털컴퓨터의 ‘비트(0 아니면 1)’를 불안정한 양자상태로 바꾼 것이다. 이렇게 되면 0일 수도, 1일 수도 있는 ‘중첩’ 상태를 구현할 수 있다. 큐비트 하나가 변하면 다른 큐비트에 영향을 미치는 ‘얽힘’도 양자컴퓨터를 설명하는 주요 원리 중 하나다.

연산량 증가에 따라 비트의 숫자는 2의 n제곱 형태로 폭증하지만, 큐비트는 이보다 작은 숫자로 연산이 가능하다. 기존 컴퓨터를 훌쩍 뛰어넘는 계산 속도를 낼 수 있는 이유다.문제는 큐비트 상태를 유지하는 게 만만찮다는 점이다. 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양자 결맞음’, 반대를 ‘결깨짐’이라고 한다. 이동헌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금방 깨지는 큐비트 상태에서 복잡한 계산을 빨리 처리할 수 있게 소자를 설계하는 것이 양자컴퓨터의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터가 디지털컴퓨터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결맞음 상태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서다. 디지털컴퓨터는 ‘2×2=4’란 결과를 항상 내놓을 수 있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90%의 확률로 4, 나머지 10%는 4가 아닌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는 예상치 못한 결깨짐이 일어나 연산로직이 불완전해질 때의 얘기다. 결맞음만 잘 유지된다면 구글의 ‘시커모어’처럼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성능을 자랑할 수 있다. 이 밖에 최적 경로 찾기, 암호 해독, 유체 시뮬레이션 등 정량적 답이 존재하지 않는 ‘비결정론적 문제(NP)’ 해결에서 양자컴퓨터는 디지털컴퓨터, 슈퍼컴퓨터와 비교되지 않는 고성능을 자랑한다. 아직 기술이 걸음마 단계지만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이유다.
IBM·구글 ‘초전도’ vs MS ‘위상수학’

양자 결맞음을 구현하는 양자소자 제작 방식은 여러 가지다. 현재 양자컴퓨터의 양대 선두주자인 IBM과 구글은 ‘초전도큐비트’를 사용하고 있다. 알루미늄 등 저온에서 초전도성질을 보이는 물질의 원자를 막대기(bar) 형태로 만든 뒤 교차시켜 큐비트를 구현한다.

삼성전자가 최근 650억원을 투자한 미국 양자컴퓨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아이온큐’는 이온 트랩(포획) 방식을 쓴다. 루비듐 원자 등을 진공 상태에서 이온으로 만들어 큐비트 상태를 만들어낸다. 이때 레이저로 원자 하나하나를 포획해 가두고 컨트롤하는 고난도 공법이 필요하다. 대신 상온에서도 동작이 가능하다. 초전도큐비트와 이온트랩은 게이트(흘려보내고 가둠)방식으로 회로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반도체와 비슷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IBM, 구글과는 다른 ‘위상수학적 양자컴퓨터’를 개발 중이다. 위상수학은 물질의 불변량(invariant)을 다양하게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형태를 설명한다. 위상수학에선 구멍이 없는 공과 한 개 있는 도넛은 마치 ‘고체와 기체’처럼 완전히 다른 상태라고 설명한다. 반대로 반지와 도넛은 같은 물질로 취급될 수 있다.

전자의 양자 상태를 기술하는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은 위상수학적 불변량과 연결된다. MS는 이 부분에 주목해 2005년부터 위상수학 양자컴퓨터 알고리즘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지동표 양자정보과학기술연구회장은 “위상(수학적)물질로 양자소자를 구현하면 결깨짐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MS는 위상수학 양자컴퓨터가 데스크톱 컴퓨터를 석권한 자사의 운영체제(OS) 윈도와 같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위상물질이 ‘제2의 실리콘’ 될까

최근 MS의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서준호 책임연구원과 독일 쾰른대 이론물리센터 공동연구팀은 머리카락 1000분의 1 굵기인 나노 소자의 공진 주파수를 분석해 위상물질의 특성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위상절연체(위상수학적 특성을 부여한 부도체)인 비스무스셀레나이드 화합물로 나노선을 만든 다음, 기타 줄을 튕기듯 기계적 공진을 발생시켰다. 이때 양자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이 연구 성과는 세계 3대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의 자매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이달호에 실렸다. 서 연구원은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를 구성하는 기본소재인 실리콘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다”며 “이제 위상물질이 양자소자의 기본 소재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초기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