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에 옻칠과 금빛 채색…"고려 도공의 혼 새겼죠"

'도예한류' 개척하는 이영희 씨

도쿄 분카무라박스갤러리서
해외 첫 개인전 29일 개막
생활도예 작품 150점 출품
청자 옻칠 흘림무늬 주전자
늦깎이 도예가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이영희 씨(65)는 고려시대 도공의 장인정신으로 도자그릇을 재현해낸다. 800도 정도의 저화도(低火度)로 구워낸 도자 표면에 옻칠과 금칠의 장식을 가미한 뒤, 다시 1250도의 고화도(高火度)로 굽는 방식을 도입해 도자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도자그릇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그의 작품은 현대 주거생활에 어울리는 ‘리빙아트’로 불릴 정도로 호평받고 있다. 생활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된 전통적 그릇의 의미를 유지하되 미학적 측면을 고려해 대중과의 소통을 꾀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생활도자 문화를 전파해온 이씨가 한국 도예의 우수성을 알리는 동시에 외연을 세계로 확장하는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일본 도쿄백화점에 있는 메이저 화랑 분카무라 박스갤러리에서 29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이씨의 첫 해외 전시회다. ‘금(金), 칠(漆), 도기(陶器)’를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전시회에서 흙과 불, 옻칠과 금칠이 만나 도자그릇 특유의 스밈과 번짐이 오롯이 살아 있는 근작 150여 점을 내보인다. 전통 도자와 현대적인 실용 그릇의 역할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겠다는 일념으로 10여 년간 매진해온 이씨의 ‘도자예술 종합보고서’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도예가 이영희 씨가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일본 도쿄 분카무라박스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출품할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씨는 분카무라 박스갤러리 초청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 대해 “400년 전 조선 도예로 일본 한류를 열었던 심수관 가문은 이제 한·일 문화교류의 상징”이라며 “고려시대 도공의 혼과 열정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픈 마음을 작품에 담아낸 게 눈에 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회장의 부인이다. 젊은 시절엔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그는 1990년 미국으로 유학한 자식들을 돌보며 샌프란시스코 인근 새너제이 디안자칼리지에서 도예를 처음 접했다. 2000년 초 귀국한 뒤 ‘전통 그릇을 재현하는 예술가’를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박종훈 단국대 도예과 교수를 만나 본격적으로 도자 공부를 시작했다. 단국대에서 도자연구과정을 수료한 뒤 2014년 대학원 졸업까지 도예 분야에 8년을 투자했다. 도자그릇에 필요한 붓글씨를 비롯해 민화, 옻칠과 금칠, 자개 기법도 연구했다. 흙을 빚으며 도자예술의 운치에 반했고 그 위에 옻칠과 금칠, 자개를 수놓으며 전통미술 기법에 빠졌다. 그릇을 구우면서는 불의 오묘함에 전율했다.

‘흙과 불에 대한 짝사랑’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그는 “경기 양평 양수리 작업실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작업하고 있다”며 “불을 지펴 그릇을 제작하고, 금칠과 옻칠로 전통을 살리면서 삶의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속에는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모색한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그의 작품은 고려청자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푸른색과 금색, 은색이 오묘하게 표면을 맴도는 ‘청자 자개 파도무늬 삼단 접시’ ‘청자 옻칠 금박나비문양 접시’ ‘청자 금박잔’ ‘청자 옻칠 흘림무늬 잔과 받침’ ‘청자 금박 잔’ ‘청자 옻칠 흘림무늬 주전자세트’ 등은 아늑하면서도 고요한 멋이 매력적이다. 작가는 “비취빛 색감을 중심으로 은색 자개톤, 금색을 살려내 현대적인 동시에 고풍스러움을 아울렀다”며 “고려시대 도자 장인에 대한 존경심을 그릇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실용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이루는 비결도 궁금했다. 그는 “최근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며 공부한 디자인을 활용했다”며 “그릇을 디자인할 때마다 거기에 올릴 음식을 먼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릇은 음식이 담겨야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그릇 정신’을 작품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전하겠습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