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부담 1兆↑…허리 휘는 지자체

'현금살포식 복지'에 재정 골병
정부에 대책 마련 요구하기로
고령화와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현금살포식’ 복지 지출이 급증하면서 중앙정부가 정한 분담 비율에 따라 재원을 분담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압박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국민연금공단 서울 종로중구지사 모습. /한경DB
중앙정부의 ‘현금살포식’ 복지 정책에 지방자치단체의 허리가 휘고 있다. 노인의 생활안정을 위해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대표적이다. 2년간 추가로 떠안을 돈이 1조원 가까이 늘어난다. 지자체들은 중앙정부를 상대로 집단행동에 나설 태세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7일 추산한 ‘기초연금 재정 부담 전망’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의 기초연금 부담액은 올해 3조2457억원에서 내년 3조6315억원, 2021년에는 4조2174억원으로 늘어난다. 2년 만에 부담액이 30%(9717억원) 급증한다.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정부가 지급액의 40~90%를 국고로 보조하고, 나머지는 지자체가 부담한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지자체 부담액은 일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초연금 기준액이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오르고, 올해부터 소득 구간에 따라 최고 30만원까지 인상되면서 지자체 부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난 7월 중앙정부의 현금복지 떠넘기기에 맞서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를 결성했다. 위원회는 28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어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로 했다.

예산 7250억 달서구, 복지지출 빼면 가용재원 100억뿐…"월급도 못줄 판"

대구 달서구의회는 지난 7월 “국가가 부담하는 기초연금 비율을 높여달라”는 내용의 대정부 건의문을 의원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달서구청 관계자는 “올해 구 예산이 7257억원인데 사회복지예산 등을 충당하고 나면 주민 민원 해결에 쓸 수 있는 가용재원은 100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작은 도로 하나 건설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달서구는 사회복지예산 비중이 67.0%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반면 재정자주도는 34.8%로 최하위권이다. 이 와중에 올해 사회복지예산은 지난해보다 490억원 늘었다. 이 중 3분의 1가량이 노인층을 위한 기초연금 부담 증가분(181억원)이었다.
기초연금 지자체 부담, 4년 후 5조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기초연금 부담액 급증으로 아우성을 치고 있다. 정부가 ‘보편적 복지’ 명목으로 기초연금 지급액을 지난해부터 대폭 늘리면서 이와 연동된 지자체 부담도 덩달아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27일 국회예산정책처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기초연금 사업은 2020년도 예산안에서 전년 대비 1조6813억원(14.6%) 증액된 13조1765억원이 편성됐다. 여기에 지자체가 매칭하는 금액은 3조6315억원이다. 2023년에는 중앙정부의 기초연금 재정 부담이 17조594억원으로 늘어나고, 지자체 부담도 5조원에 육박하는 4조805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가장 큰 원인은 급격한 지급액 인상이다. 정부는 내년엔 소득 하위 20~40% 노인(65세 이상)이 받는 기초연금을 현행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이에 해당하는 노인 325만 명이 내년부터 혜택을 받는다. 앞서 소득 하위 20% 이내에 해당하는 기초연금 수급자는 당초 계획(2021년)보다 2년 앞당겨 올해 4월부터 기초연금의 기준연금액을 30만원으로 인상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 분배가 오히려 악화되자 기초연금 조기 인상으로 대응한 결과다.

재정자립도 낮은 지자체 ‘재정 파탄’기초연금은 재정자주도 및 노인인구 비율에 따라 40~90%를 국고로 보조한다. 나머지는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가 조례로 비율을 정해 나눠 부담한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기초연금 등 사회 복지로 100원이 지출될 때 중앙정부 54원, 시·도 20원, 시·군·구는 26원 정도를 분담한다. 이 때문에 재정자주도가 떨어지는 지자체는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재정자주도는 지자체가 재량권을 갖고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전체 세입 중 얼마나 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윤영진 계명대 명예교수는 “지자체가 정부 복지정책에 대해 의사 결정권은 갖지 못하면서 부담만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 기초단체는 지난해 전체 예산 중 평균 35%를 사회복지 분야에 지출했다. 이 중 6대 광역시 소재 기초단체 44곳의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평균 56.7%였다. 광주 북구(69.9%), 부산 북구(69.6%), 대구 달서구(65.1%), 부산 해운대구(64.4%) 등이 특히 높았다. 이런 지자체는 기초연금 등 사회복지에 돈을 쓰느라 자체 사업에는 예산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광주 동구의 자체사업 비중은 8.2%, 대전 중구와 부산 북구는 각각 8.5%, 9.1%에 그쳤다. 광주 북구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는 복지재원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 위기에 있다고 봐도 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은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청원편지에서 “기초연금이 오르면서 재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부산 북구 관계자는 “늘어나는 기초연금 부담 때문에 올해 공무원 인건비를 지급하지 못할 뻔했다”며 “정부만 생색을 내는 복지정책은 전혀 달갑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