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 허술한 시공 가차없이 깨부수는 '망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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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알짜 중견 건설업체란 평가를 받는 아이에스동서의 권혁운 회장(70)이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건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40여 년 전 유학비를 벌기 위해 건설회사에 취직했다가 부사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회사가 부도나면서 전 재산을 날렸다. 연대보증을 선 결과였다. 돈을 벌기 위해 건설회사를 차렸다.
'원칙을 지키는 집 짓기'
뚝심으로 승승장구
그는 30여 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약 3만5000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했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기본을 철저히 지킨 게 장수 비결”이라고 자평했다. 최근에는 사업 다각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황에 크게 휘둘리는 주택건설업만으로는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고 봐서다.부실시공 용납 않는 ‘망치 회장’
권 회장은 배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주변에서 받는다. 부산 해운대에 고급 빌라를 지을 때 일화다. 그는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서울 양재동의 고급빌라촌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고 연구했다. 낯선 사람을 수상하게 여긴 동네 주민이 신고해 파출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잘 지은 빌라를 찾아 바다 건너 일본에도 다녀왔다. 그는 “어떤 점이 좋은지,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관찰하다 보니 오해를 받았다”며 “겉만 멋있는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편한 집을 지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가 지은 고급 빌라는 부산지역 부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승승장구했다. 일신건설산업(아이에스동서 전신)의 명성도 부산뿐 아니라 경남 창원, 울산까지 퍼져나갔다. 2000년대 들어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하며 급성장했다. 부산, 경남에서는 ‘그 사람이 지었다면 좋은 집’이란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권 회장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기본을 철저히 지켰다. 부실시공과 부실설계를 용납하지 않았다. 아파트 건설현장과 모델하우스를 불시에 찾아가 표준시방서대로 짓지 않으면 망치로 부수곤 했다. 그래서 ‘망치 회장’이란 별명도 얻었다. 임직원은 언제 권 회장이 망치를 들고 방문할지 몰라 항상 꼼꼼하게 공사를 챙겼다. 설계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분양 예정이었던 주상복합 ‘대구역 오페라 더블유’는 설계를 바꾸면서 분양 일정이 한 달가량 미뤄졌다. 그는 “주방의 창 구조가 통풍이 원활히 이뤄지게 돼 있지 않았다”며 “그대로 두면 ‘주방에서 연기가 안 빠진다’는 원망을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본을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성공의 길을 열어줬다. 권 회장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대구 수성범어지역주택조합의 감사패가 놓여 있다. 이 조합은 아이에스동서와 손잡고 지난 5월 성공적으로 ‘수성범어W’ 아파트를 일반분양했다. 이 사업은 지역주택조합이라는 리스크 때문에 국내 여러 대형 건설사가 포기했다. 아이에스동서는 이 사업장을 맡아 단순도급제가 아니라 2600억원의 채무보증 부담을 지면서 조합과 리스크를 나눴다. 권 회장은 “지역주택조합원도 우리가 짓는 아파트에 살 소비자”라며 “좋은 입지에 좋은 아파트를 짓는 사업인데, 기업도 리스크를 같이 부담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에스동서가 그동안 공급한 아파트는 전국 3만5000여 가구에 이른다. 지난해 준공한 부산 남구 용호동 ‘더블유’는 부산의 초고층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사업 다각화로 리스크 분산
최근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권 회장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지난해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사업환경 변화, 대내외 경기변수,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안 등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해서다. 그는 “1987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열심히 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 희망이 컸다”며 “요즘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사업의 정답을 찾기도 어려워 시도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주택사업은 경기변동에 민감한 ‘천수답 업종’인 만큼 살아남기 위해선 다양한 업종으로 분산 투자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2008년 국내 건축자재회사 동서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회사 이름을 아이에스동서로 바꿨다. 이어 비데 제조기업인 삼홍테크(2010년), 렌털회사인 한국렌탈(2011년), 영풍파일(2014년), 중앙레미콘(2014년)에 이어 환경종합 서비스기업 인선이엔티까지 인수했다.권 회장은 ‘공간을 만드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땅을 사고 건물을 잘 지어 팔아 수익을 남기는 하드웨어사업을 했지만 앞으로는 그 건물 안을 채우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7년 독서실 운영업체 아토스터디에 투자하고, 지난해엔 트램펄린 놀이시설 운영업체 바운스와 맛집 플랫폼 기업 OTD코퍼레이션에 투자했다. 권 회장은 “시대가 많이 변하면서 단순히 공간을 짓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즐길거리와 맛집을 넣고,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인수한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바운스는 고객을 끌어오는 ‘앵커테넌트’(우량 임차인)로 인정받으며 롯데, 신세계 등 대형 유통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미래의 인재를 키워라”
권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경북 의성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제때 대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사업으로 성공한 뒤 학업을 이어가 대학원 석사까지 마쳤다.
배우고 싶은데 배우지 못하는 간절함을 알고 있어 사회공헌 활동도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16년 권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문암(門巖)장학문화재단은 주로 공부에 뜻이 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꿈을 이루기 힘든 학생을 체계적으로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는 “기업이 성장하면서 얻는 수익금 일부는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나라의 인재를 키우고 있다는 즐거움으로 재단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암장학문화재단은 지금까지 약 1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다문화가정, 홀몸노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도움을 주는 사회공헌 사업에도 약 355억원을 지원했다.
■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 프로필△1950년 경북 의성 출생
△중앙대 대학원 졸업
△1980년 신동양건설 부사장
△1987년 일신 창립·일신 회장
△1989년 일신건설산업 회장
△2008년 아이에스동서 회장
△2016년 문암장학문화재단 이사장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