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의 하루도 안 돼 사격…盧 대통령 서거 때는 핵실험도

南주요인사 별세 때마다 애도했지만 남북관계 경색시 침묵키도

남북관계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북한이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문을 보낸 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31일 오후 발사체를 쐈다.

사실 북한의 이러한 행보가 처음은 아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북한은 조의문을 발표한 지 4시간 만에 제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관계가 최악이었던 만큼 조문단을 따로 파견하지 않은 상태였다.

서거 이틀이 지난 5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로 "로무현 전 대통령이 불상사로 서거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여 권량숙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는 내용의 조의문만 냈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얼어붙지 않았을 때는 관계 기여한 주요 남측 인사의 장례에 예우를 갖춰왔다.앞서 지난 6월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두혈통'이자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판문점까지 내려보내 북측 통일각에서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조의문에서 "(이 여사가)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서거했을 때는 김정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문단을 파견하며 최고 예우로 애도를 표했다.김 전 대통령 서거 바로 다음 날인 8월 19일 공개된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의문은 조문단보다 먼저 도착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슬픈 소식에 접해 이희호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애석하게 서거했지만 그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흘 뒤인 8월 21일에는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6명으로 구성된 특사 조의방문단이 특별기로 서울에 도착했다.

조문단은 첫날 빈소 조문과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 면담,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 측과 환담을 하고 이튿날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만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8월 23일에는 청와대를 예방한 뒤 김포공항을 통해 떠나며 사흘간의 일정을 매듭 지었다.

북한은 남북관계 해빙의 물꼬를 튼 기업인들의 별세 때도 예의를 갖췄다.

2001년 3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때 송호경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전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총 4명의 조문단을 파견했다.

이는 북측이 남측에 조문단을 보낸 최초 사례였다.

조문단은 고려항공을 타고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서울을 방문, 정 전 회장의 자택을 직접 찾아 조의를 표했다.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사망했을 때는 빈소에 조문단을 보내지 않는 대신 송호경 부위원장 등이 금강산에 마련한 현대 측 분향소를 찾아 추모사를 낭독했다.

그러나 북측이 남측 모든 지도자급 인사의 별세에 애도를 표한 건 아니었다.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가 대표적 사례다.

북측 조문단 파견이 없었음은 물론 조의문도 발표하지 않으며 침묵을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인식과 함께 1993∼1994년에 1차 북핵 위기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부정적 인식을 쌓은 것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 언론이 고(故) 강한옥 여사 별세에 김 위원장이 조의문을 전달했다는 소식을 내부에 알릴지도 관심이다.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이 지속하는 가운데 북한이 남측 당국에 대한 비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희호 여사 별세 때 조선중앙통신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남측 관계자들을 만나 조의문을 전달하고 헤어진 지 불과 4시간여만에 이를 보도했다.

북한 매체들이 민감한 사안의 경우 최소 반나절 이상 시차를 두고 보도해온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빠른 것이었다.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틀 만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는 하루 만에 소식을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