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도용 명백한데 무죄?…"이 답답함을 어찌하오리까"

일선 경찰들 한 목소리로 "현행법상 한계 있다"
법 개정해야 하는 국회는 발의 후 수년째 제자리
전문가들 "온라인 규제 위한 사회적 합의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사진 도용과 관련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지만 현행법으로 처벌을 할 수 없어 답답함을 느끼는 피해자들과 일선 경찰들이 늘어가고 있다.
#27살 여성 A씨는 지난 8월 서울 송파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유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있던 사진이 도용당한 것. A씨는 추측 상 자신의 SNS 친구 추가에 갑자기 추가된 B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일면식도 없는 B씨가 자신의 사진의 계정을 알아내고 도용한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사건 접수 당시 경찰의 반응은 냉랭했다. 도용당한 사진에 A씨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아 '피해자 특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 성적 희롱까지 당했던 A씨였지만 첫 경찰 조사에서 좌절을 맞봤다.이후 지난달 23일 A씨에게 우편 한 통이 왔다. 사진을 도용했던 사람이 검찰로 송치됐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의심을 했던 B씨가 범인이 맞는지, 그리고 자신의 사진을 도용해 여자친구라고 허위 사실을 온라인상에 유포하고 성적 수치심을 준 부분들에 대해 혐의가 적용됐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검찰에게서 들은 답은 불기소처분. A씨의 억울함은 누가 해소해줄 수 있을까?

#28살 남성 C씨는 최근 SNS 맛집을 검색하던 중 자신이 찍었던 사진이 다른 사람 명의의 SNS에 올라 있는 것을 확인했다. C씨는 당시 자신이 갔던 식당과 먹었던 메뉴들이 그대로 해시태그가 돼 있어 더 두려움을 느꼈다.

심지어 C씨가 올린 사진은 친구들만이 볼 수 있는 개인 SNS 계정에 올린 만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사진 도용에 민형사상 대응을 결심했다. 이후 많은 변호사를 찾아다녔다.하지만 그 어떤 변호사도 C씨의 억울함을 해소해주려 나서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소송에 나서려는지는 알겠지만 피의자를 찾을 가능성부터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모두 0%에 달한다는 답변만 들었다.

◆늘어만 가는 사진 도용…의욕적으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결론은 한결같다?

2일 경찰청 사이버범죄 통계자료에 따르면 11만109건으로 집계된 2014년부터 14만9604건이 발생한 지난해까지 전체 사이버범죄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현재 경찰 내부에서 사진 도용만을 갖고 수치를 집계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일선 경찰들은 해가 갈수록 사이버범죄가 늘어가는 만큼 악의적인 사진 도용 역시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반응이다. 이와 함께 이들은 피해자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현행법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서울 관할 한 경찰서 수사과에 근무 중인 경찰은 "사진 도용만 갖고 수치를 내지는 않지만 체감하는 사진 도용 관련 신고는 분명히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면서 "억울한 것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행법에서는 수사를 위해 영장 하나 받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관할 내 다른 지역 경찰서 사이버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일선 경찰 역시 "현실적으로 수사기관이 나서는데 한계가 있다"며 "피해자들이 힘들게 증거 수집해오고 몇 시간씩 조사를 받고 가지만 현행법상으로는 피의자 특정이 어려워 불기소처분으로 늘 결정 나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수사과장을 거쳐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인사는 "기소 의견으로 넘어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늘 경찰이 옷매를 맞는다"며 "우리도 처리를 해주고 싶지만 피해 사실 규명조차도 어려운 것이 현행법"이라고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한계는 명확한데 관련법은 국회에서 제자리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대 국회가 시작된 2016년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온라인 사진 도용과 사칭만으로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 의원은 19대 국회였던 2015년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민 의원이 발의한 'SNS상에서의 타인 사칭 방지법'은 다른 사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그 사람의 성명·이용자 식별부호·사진·영상 또는 신분 등을 자신의 것으로 사칭하는 내용의 정보를 불법 정보로 규정하고, 이러한 정보를 동의 없이 자신의 것으로 사칭해 유통한 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해당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선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제도 개선만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피해자는 늘어만 가는 상황에서 현행법상 수사기관도 어쩔 수 없이 손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국회가 방치하고 있다 진단이다.

정웅 경찰대학 교수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진 도용 같은 사이버범죄들은 인터넷에 흔적(개인정보)을 남기지 않는다"며 "흔적을 남기게끔 하려면 결국 온라인상 규제가 필요한데 우리 사회가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단계까지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이버범죄들의 경우 영장 하나 없으면 제대로 수사하기도 힘든 현실"이라며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범죄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승희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온라인상에서는 '피의자 특정성'과 '피해자 특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며 "온라인상의 규제 강화라는 것을 다소 구시대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양해지는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규제도 필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아울러 "현행법들은 과거 오프라인에서 해당하는 내용들은 온라인에도 적용하려는 성향이 있다"며 "이러한 현행법들과 규제들에 대한 시대적 변화가 함께 있어줘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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