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 '전국체전 6연패' 이춘삼 태백 황지정산고 핸드볼 감독
입력
수정
폐광촌 작은 학교 2014부터 2019년까지 연속 여고부 우승…"7연패 도전" 10월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핸드볼 여자 고등부 결승전이 열렸다. 황지정보산업고(황지정산고)와 일신여고의 격돌이었다.
이들 학교는 올해 전국대회 결승에서만 4번이나 만난 국내 여고 핸드볼의 절대 강자다.
승자는 황지정산고였다. 이날 황지정산고는 전국체전 여고 핸드볼 6회 연속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황지정산고는 강원 태백시에 있다.
학생 수는 100명이 조금 넘는다. 폐광촌의 작은 학교가 전국체전 6회 연속 우승이라는 신화를 만든 뒤에는 이춘삼 감독(59)이 있다.
이 감독도 핸드볼 선수 출신이다.
춘천 신동초등학교 시절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체육 교사 권유로 핸드볼에 입문해 강원도 소년체전에서 준우승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핸드볼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나 추첨으로 배정된 중학교에 핸드볼팀이 있었고, 결국 선수 생활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는 대학생 시절이다.
그는 대학교 4년간을 강원지역 초·중학교 핸드볼팀 순회 코치로 보냈다.
태백과의 인연은 군 복무를 마치고 1983년 황지여중에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체육관이 없어 운동장에서 연습해야 했다"며 "체육관이라는 실내에 익숙하지 않아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긴장하고 주눅 들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황지정산고 핸드볼팀과의 첫 만남은 1988년이다.
당시 전국 대회에서 4강을 들락날락했던 황지정산고 핸드볼팀은 그가 지휘봉을 맡은 지 2년만인 1993년 전국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 인사발령으로 태백을 떠난 그는 2014년 황지정산고로 돌아왔다.
다시 만난 황지정산고 핸드볼팀은 신장은 좋았지만, 스피드가 부족했다.
스피드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핸드볼은 체력소모가 많은 운동으로 교체 선수 등 선수층을 갖춰야 하지만, 당시 황지정산고 핸드볼팀 선수는 8명이 전부였다.
핸드볼은 7명이 한팀이다.
결국 당면과제는 8명 전원이 전·후반을 모두 뛸 수 있는 체력이었다.
체력·스피드 훈련에 집중했다.
체력과 스피드가 갖춰지자, 상대 수비진의 작은 틈을 순식간에 파고드는 미들 속공이 가능해졌다.
선수들 눈빛에 그 어떤 팀과 붙여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황지정산고 핸드볼팀은 같은 해 제주도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전을 제패하면서 전국 여고부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이어 올해 제100회 전국체전까지 6연패 금자탑을 쌓았다.
이 감독은 1일 "물론 전국체전 7연패 달성이 목표다"며 "그러나 우승보다 더 큰 소망은 핸드볼이 좋아 땀 흘리는 선수들 모두 실업팀과 대학팀으로 진학해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대로 내년에 졸업하는 황지정산고 핸드볼 선수 4명은 2020 여자 실업 핸드볼 신인드래프트에서 모두 지명을 받았다.
/연합뉴스
이들 학교는 올해 전국대회 결승에서만 4번이나 만난 국내 여고 핸드볼의 절대 강자다.
승자는 황지정산고였다. 이날 황지정산고는 전국체전 여고 핸드볼 6회 연속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황지정산고는 강원 태백시에 있다.
학생 수는 100명이 조금 넘는다. 폐광촌의 작은 학교가 전국체전 6회 연속 우승이라는 신화를 만든 뒤에는 이춘삼 감독(59)이 있다.
이 감독도 핸드볼 선수 출신이다.
춘천 신동초등학교 시절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체육 교사 권유로 핸드볼에 입문해 강원도 소년체전에서 준우승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핸드볼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나 추첨으로 배정된 중학교에 핸드볼팀이 있었고, 결국 선수 생활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는 대학생 시절이다.
그는 대학교 4년간을 강원지역 초·중학교 핸드볼팀 순회 코치로 보냈다.
태백과의 인연은 군 복무를 마치고 1983년 황지여중에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체육관이 없어 운동장에서 연습해야 했다"며 "체육관이라는 실내에 익숙하지 않아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긴장하고 주눅 들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황지정산고 핸드볼팀과의 첫 만남은 1988년이다.
당시 전국 대회에서 4강을 들락날락했던 황지정산고 핸드볼팀은 그가 지휘봉을 맡은 지 2년만인 1993년 전국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 인사발령으로 태백을 떠난 그는 2014년 황지정산고로 돌아왔다.
다시 만난 황지정산고 핸드볼팀은 신장은 좋았지만, 스피드가 부족했다.
스피드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핸드볼은 체력소모가 많은 운동으로 교체 선수 등 선수층을 갖춰야 하지만, 당시 황지정산고 핸드볼팀 선수는 8명이 전부였다.
핸드볼은 7명이 한팀이다.
결국 당면과제는 8명 전원이 전·후반을 모두 뛸 수 있는 체력이었다.
체력·스피드 훈련에 집중했다.
체력과 스피드가 갖춰지자, 상대 수비진의 작은 틈을 순식간에 파고드는 미들 속공이 가능해졌다.
선수들 눈빛에 그 어떤 팀과 붙여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황지정산고 핸드볼팀은 같은 해 제주도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전을 제패하면서 전국 여고부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이어 올해 제100회 전국체전까지 6연패 금자탑을 쌓았다.
이 감독은 1일 "물론 전국체전 7연패 달성이 목표다"며 "그러나 우승보다 더 큰 소망은 핸드볼이 좋아 땀 흘리는 선수들 모두 실업팀과 대학팀으로 진학해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대로 내년에 졸업하는 황지정산고 핸드볼 선수 4명은 2020 여자 실업 핸드볼 신인드래프트에서 모두 지명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