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한 단지들 앞다퉈 리모델링 추진 '경쟁'

대치동 은마 20년째 재건축 제자리걸음인데…

잠원롯데·서강GS·밤섬현대
건영한가람 등 속속 가시화
아파트나 주택 재건축을 한 지 20년도 안 돼 다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재건축 후 리모델링’ 아파트가 늘고 있다. 대부분 한강변이나 강남권에 자리잡아 입지 가치가 높은 단지들이다. 공급 부족으로 신축 시세가 크게 오르고 있어 비슷한 단지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차례 재건축한 단지들이 앞다퉈 리모델링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리모델링 건설사 선정에 나선 서울 잠원동 ‘롯데캐슬갤럭시1차’. /한경DB
아직 쓸 만해도…“새집 짓겠다”4일 주택업계에 따르면 마포구 신정동 ‘서강GS아파트’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는 내년 초까지 조합 설립과 시공사 선정에 나서기로 했다. 538가구 규모인 이 아파트는 리모델링을 통해 3개 층을 높이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검토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밤섬현대 힐스테이트’ 역시 조만간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를 설립할 예정이다. 현재 219가구 규모 단지로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30여 가구 미만으로 가구 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두 아파트는 1999년 각각 노후 주택들과 경남빌라를 부수고 새로 지은 재건축아파트다. 한강변에 있는 데다 광화문 여의도 등 주요 업무지구를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입지적 장점이 있다. 밤섬현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입주민은 “다시 재건축하기엔 연한이 짧고 배관이 낡은 데다 입지는 좋아 리모델링하면 재산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성이나 속도 면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 기대되는 곳은 서초구 잠원동 ‘롯데캐슬갤럭시1차’다. 지난 9월 현장설명회에 대림산업, GS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쌍용건설, 효성중공업 등 주요 건설사 여섯 곳이 참여했을 정도로 사업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지난달 25일 입찰설명회는 유찰됐지만 조만간 대형 건설사 한 곳과 수의계약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옛 설악아파트를 재건축(2002년 입주)한 단지로, 계획대로 일정이 추진되면 국내 1호 재건축 후 리모델링 아파트가 될 전망이다.
건영 한가람(2036가구)을 중심으로 입주 20년차 아파트가 모여 있는 동부이촌동 아파트들 역시 재건축 후 리모델링에 나선 곳들이다. 공무원아파트 등을 헐고 1998년 전후로 입주를 시작했다.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일대에 5000여 가구 이상의 새 아파트촌이 형성될 것이란 기대를 받는다.

‘신축’ 상승세 ‘구축’의 두 배노후도가 높지 않은 이들 단지가 또다시 리모델링하려는 것은 인근 새 아파트 영향이 크다. 노후도가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시세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롯데캐슬갤럭시1차의 최근 실거래가는 3.3㎡당(전용 106㎡ 기준) 4700만원으로, ‘3.3㎡당 1억원 시대’를 연 아크로리버파크(2016년 입주)의 절반 수준이다. 인근에 아크로리버뷰(2018년), 래미안신반포리오센트(2019년) 등을 비롯 원베일리 등 예정된 신축 단지도 많다.

한가람아파트는 전용 114㎡ 기준 17억8000만원(3.3㎡당 4139만원)으로, 인근 신축 래미안첼리투스를 크게 밑돈다. 전용 124㎡ 단일 면적인 첼리투스는 로열층의 경우 31억~32억원(3.3㎡당 6400만원)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최근 5년간 서울 시내 5년차 이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43.2%로, 10년 초과 아파트(59.7%)의 두 배를 웃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등 재건축 재개발 규제가 강화되면서 신축 희소성이 부각되는 것도 영향을 줬다. 입주 40년차를 넘긴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가뜩이나 굼떴던 재건축 추진 속도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31년차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역시 지난달 안전진단에서 재건축이 불가한 C진단을 받는 등 일정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반면 리모델링은 기준연한이 재건축의 절반인 15년이고 주민 동의율(66.7%), 안전진단 기준(B등급) 등 장벽이 낮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재건축이 위축될수록 리모델링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다”며 “강남뿐 아니라 서울 주요 지역에서 리모델링을 통한 가격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