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검사 시선에서 본 고유정의 거짓말

검찰 "범행 과정 마치 암호처럼 표현 사진에 기록"
"물감놀이 하고 왔어" 둘러댄 고유정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검찰은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의 6차 공판에서 고유정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다양한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조각된 증거들이 합쳐지면서 범행 과정과 동기들이 설득력 있게 전달됐다.

특히, 검찰은 경찰 수사과정에서부터 재판 진행 과정에 이르기까지 고유정이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면서 범행을 조작한 거짓말에 주목했다.

고씨는 지난 5월 25일 오후 8시 10분부터 9시 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혐의는 살인과 사체손괴·은닉이다.

◇ 졸피뎀 먹였을까
먼저 키 160㎝, 몸무게 50㎏가량인 고유정이 키 180㎝, 몸무게 80㎏인 전 남편을 제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의 사용여부다.

검찰에 따르면 고씨는 제주에 오기 전인 지난 5월 17일 청주에서 감기약을 처방받으면서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 7정을 함께 처방받았다. 나중에 경찰이 압수한 5일치 약봉지에는 다른 약은 그대로였지만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 7정이 모두 사라졌다.

고씨는 경찰조사에서 '7정 중 반알 정도만 자신이 복용했고 나머지는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며 사라진 졸피뎀의 행방에 대해 회피하는 진술로 일관했다.

또 졸피뎀을 현남편이 빼돌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고씨는 유치장에 구속된 상황에서 현 남편을 접견했을 때 자신의 분홍색 파우치(간단한 소지품을 넣는 작은 가방)가 압수됐는지 여부를 집요하게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 남편은 해당 질문의 의도를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우연히 고씨의 여행용 가방 안에서 약봉지가 들어있던 분홍색 파우치를 발견했고, 그 안에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만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 경찰에 제출했다.

고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졸피뎀을 음식에 넣은 적도 없고 당시 피해자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사건 현장에 있던 아들은 피해자와 함께 카레라이스를 먹었으며 고씨만 먹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또한 고씨의 차량에서 나온 붉은색 무릎담요에 묻은 혈흔에서 졸피뎀이 검출됐고, 해당 혈흔이 피해자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고씨 측 변호인은 여전히 "수면유도제로 성인 남성을 제압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며 "고유정의 머리카락에서도 졸피뎀 성분이 나온 적이 있는 만큼 졸피뎀 검출 혈흔이 고유정의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 우발적 범행인데 15차례 이상 공격
고유정은 재판 내내 전 남편이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범행이라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고씨는 지난 9월 30일 열린 4차 공판에서 수기로 직접 작성한 8페이지 분량의 의견진술서를 10여분가량 울먹이며 읽었다.

그는 "저녁을 먹은 뒤 아이가 수박을 달라고 했고, 칼로 자르려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제 가슴과 허리를 만지기 시작했다"며 다급하게 다이닝 룸으로 몸을 피했지만 전 남편이 칼을 들고 쫓아왔다고 진술했다.

고씨는 펜션의 가장 안쪽에 있는 다이닝 룸에서 몸싸움을 하다 우연하게 잡힌 칼로 피해자를 한 차례 찌른 뒤 현관으로 도망갔고, 피해자가 자신을 쫓아오는 과정에서 혈흔이 펜션 내부에 묻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범행 장소에 남겨진 혈흔 형태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통해 우발적 범행이라는 고유정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은 펜션 내부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칼로 찌른 뒤 혈흔이 묻은 칼을 수차례 계속해서 공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흔적(정지 이탈흔)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최초 공격이 일어난 다이닝 룸에서 피해자가 도망가려고 현관으로 이동하기까지 최소 15곳에서 앉은 자세와 서 있는 자세 등으로 공격행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최초 경찰조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했다"며 "이후 국과수의 혈흔 분석 결과를 보고 나중에 자신의 진술을 새로 번복하는 등 신빙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 범행 후 아들에게 "물감놀이하고 왔어"
고유정과 피해자의 이혼과정을 보면 법원에 제출된 공소장과 이혼 반소장 등에서 피해자에 대한 고씨의 증오심이 드러난다.

'야비하고 더럽다', '아들과의 인연을 끊게 만들겠다'는 등 과격한 표현이 다수 있었지만 정작 피해자의 변태적 성욕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살인 혐의로 구속된 고씨는 지난 8월 12일 첫 정식 공판에서 피해자의 변태적 성욕을 강조했다.

결혼 생활 중 피해자가 무리한 성관계를 요구해왔고, 사건이 발생한 당일에도 아들과의 면접교섭이 이뤄지는 동안 강씨가 스킨십을 유도했으며 급기야 펜션에서는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씨 측 주장은 피해자 유족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족은 "이혼을 하게 된 주된 이유는 고유정의 폭언과 폭행 때문이었으며, (피해자는) 고유정의 재혼 사실에도 전혀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검찰은 4일 6차 공판에서 사건 당일 고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오후 8시 10분부터 9시 50분까지)을 전후해 펜션 주인과 통화한 내용을 처음으로 법정에서 공개했다.

3차례에 걸쳐 이뤄진 통화녹음에서 고씨의 목소리는 매우 태연했다.

오후 8시 43분께 펜션에 잘 들어왔느냐는 주인의 말에 중간마다 웃으면서 고맙다고 대답하는 등 고씨는 시종일관 밝게 전화 통화를 했다.

오후 9시에 이뤄진 통화에서는 고씨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던 아들이 전화를 받았고, '엄마가 모기를 잡고 있어서 전화를 못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범행 직후로 보이는 오후 9시 50분께 전화통화를 하지 못한 펜션 주인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이번에도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던 아들이 전화를 받았고, 걸려온 전화를 바꿔주자 고씨는 "(아들에게) 먼저 자고 있어요.

엄마 청소하고 올게용∼"이라며 웃으면서 말했다.

게다가 아들에게 물감놀이를 하고 왔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이때는 고씨가 범행 후 피해자를 욕실로 옮긴 뒤 흔적을 지우고 있었을 시각이었다.

검찰은 "성폭행당할 뻔했던 피고인이, 평범한 여성이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이렇게 태연하게 펜션 주인과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씨의 변호인은 "아이가 곁에 있는 만큼 안심시키기 위해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취한 행동"이라고 변호했다.
◇ 계속된 거짓말…결국 들통난다
검찰은 고씨가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사전에 철저하게 인터넷을 검색하는 습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 남편은 고씨의 별명이 '사이버 대마왕'일 정도로 검색을 할 때 검색창 30개를 띄워놓고 검색을 한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고씨는 실제로 범행 전인 지난 5월 10∼16일 휴대전화와 청주시에 있는 자신의 주거지에 설치된 컴퓨터를 이용해 졸피뎀, 키즈펜션, 폐쇄회로(CC)TV, 혈흔, 니코틴 치사량, 뼈의 무게 등에 관한 내용을 검색했다.

고씨는 재판에서 현 남편의 보양식을 위해 감자탕, 뼈다귀 음식물에 대한 검색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시신을 훼손하기 직전에 관련 검색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성폭행 피해자에 관한 검색, 성폭행을 시도했던 가해자의 자살과 관련한 검색을 하기도 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성폭행 정황을 꾸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역도 공개했다.

고씨는 사건발생 이틀후인 5월 27일 오후 4시 48분께 제주시 이도일동 모처에서 자신과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허위문자를 보내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그는 '성폭행 미수 및 폭력으로 고소하겠다.

너가 인간이냐'는 문자를 피해자 휴대전화로 보냈고, 다시 '미안하게 됐다.

내 정신이 아니었다.

너 재혼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고소는 하지 말아달라. 내년에 취업해야 한다'는 문자를 허위로 꾸며 자신에게 보냈다.

고씨는 피해자가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피해자를 가장해 계속해서 그의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또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지 않았다가 '회의중입니다'라고 답했다.

고유정은 경찰에게 성폭행에 실패한 피해자가 펜션 밖으로 나가 그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사건 초기 피해자의 단순 실종사건으로 수사를 하던 경찰이 고씨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할 당시 그는 계속해서 울먹이며 "만약에 그 사람이 잠적해버리면 아무도 처벌 못하게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폐쇄회로(CC)TV에 피해자가 펜션에서 나가는 장면이 있었다면 고유정의 이러한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이 사건은 결국 실종사건으로 묻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살인자의 기억법
고유정은 또 자신의 범행을 사진으로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고씨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3장의 사진으로, 검찰은 "자신의 범행 수단을 암호처럼 숨겨둔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건 당일 오후 8시 10분에 촬영된 첫번째 사진에는 범행시간으로 보이는 벽걸이 시계와 오른쪽 현관 출입문에 피해자의 흰색 운동화가 찍혔다
그러나 정작 펜션에 함께 들어온 고씨와 아들의 신발은 치워져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상상을 하기 힘들겠지만, 고유정 자신은 범행 직전에 촬영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특히 고씨가 찍은 다음 사진에 주목했다.

해당 사진에는 싱크대 위에 카레라이스를 다 먹고 난 뒤 햇반과 빈 그릇, 분홍색 파우치가 놓여 있다.

검찰은 카레라이스가 담긴 빈 그릇 옆에 나란히 높인 파우치에 졸피뎀이 들어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고씨가 휴대전화로 찍은 펜션 내부에는 수박이 놓여있지도 않았다.

고씨는 수박을 칼로 자르려던 순간 피해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이어왔다.

마지막 사진에는 범행을 한 뒤 고씨가 제주를 빠져나간 5월 28일 오후 8시 54분께 완도행 여객선 5층 갑판에서 훼손된 피해자의 시신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여행용 가방이 홀로 덩그러니 찍혀 있었다.

여행용 가방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꺼내 바다에 버리기 직전의 모습이다.

검찰은 "피고인은 행복한 일상을 추억삼아 찍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과 아들, 피해자의 모습은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굉장히 끔찍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 사진들을 그대로 버젓이 휴대전화에 저장한 것만으로도 고유정의 심리상태, 이 모든 과정이 계획적 범행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