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자유한국당이 정말로 반성해야 할 것

'시장경제 추구' 당헌에 못 박고도
시장 흔드는 법안 여당과 공조

겉포장 바꾸는 '가짜 쇄신' 말고
정치적 지향점과 정체성 뭔지
'사용설명서' 분명히 해야

이학영 논설실장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요즘 어수선하다. 내년 4월 총선거를 앞두고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취한 조치가 잇달아 역풍을 일으켜서다. 정부·여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공격이 ‘품격’ 논란을 부르고, 당 면모를 일신하겠다는 인재 영입은 ‘졸속’ 잡음에 휘말렸다.

‘조국 파동’을 겪으며 한국당에 몰렸던 유권자들의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한국갤럽이 엿새 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그 단면을 보여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40%로 높아진 반면, 한국당 지지율은 23%로 내려앉았다. 한때 오차범위 이내로까지 좁혀졌던 두 당의 지지율 격차는 ‘조국 파동’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이렇게 된 원인을 놓고 당내에서 온갖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구태정치, 계파 싸움, 인적 구성의 참신성 미흡, 지도부의 리더십 부족 논란 등을 놓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이 한창이다. 며칠 전부터는 ‘중진 물갈이론’까지 나오면서 더 소란해졌다.

한국당 지지 여부를 떠나 제1야당이 ‘바뀌어보자’며 겪는 내홍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야당이 건강하고 강력할수록 정부와 여당은 더 긴장하게 되고, 국정 운영이 진지해진다. 한국당이 ‘웰빙 정당’ 오명(汚名)을 벗고 제대로 바뀌려면 한바탕의 치열한 내부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다. 궁금한 점은 어떤 ‘변신’을 추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당 지도부와 선거대책본부에 ‘새 피’를 수혈하고, 국회의원 공천 후보를 ‘참신한 인물’로 확 바꾸면 ‘변화와 혁신’이 이뤄지는 걸까.

겉모습을 아무리 바꾸고 포장해봤자 내용물이 그대로라면 진정한 변신과 진전을 해냈다고 할 수 없다. 한국당의 변신 작업도 마찬가지다.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는지를 짚어보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한국당은 이 대목에서 돌아봐야 할 게 많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원칙으로 당헌(黨憲)에 못 박고, ‘자유우파의 본류’를 자임하는 정당답게 존재하고 기능해왔느냐 하는 것부터 자문(自問)이 필요하다.요즘 기업들이 의욕 저하에 내몰리게 된 억압적 법제(法制)의 대표 사례로 꼽는 게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주 52시간 근로제도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몰입 근무가 필수적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비롯해 많은 기업이 이 제도로 인한 폐해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권 보호’를 중시하느라 다른 측면을 살피지 않은 채 덜컥 이 법을 통과시키고는, 뒤늦게 탄력근로기간 확대 등 제도를 보완하는 일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런 법이 작년 2월 도입될 때 한국당은 여당과 손발을 맞췄다. 기업과 직원들이 합의하에 더 일하겠다는 것을 국가가 무조건 막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사적(私的) 자치’ 원칙에 명백하게 어긋난다. 한국당이 강령에 충실해서 일률적인 주 52시간 제도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다면, 온 나라가 불필요한 진통을 겪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의 책임을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돌리는 산업안전법 강행으로 인해 시장경제가 겪는 혼란도 심각한데, 작년 12월 이 법안에서도 한국당은 여당을 거들어줬다. 애초에 반대하다가 입장을 바꾼 사유가 더 기가 막힌다. 청와대의 민간사찰 논란이 불거지자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국회에 나와 경위를 해명하는 조건으로 법안 통과를 ‘거래’한 것이다. 대통령 최측근으로 위세를 떨치던 조 당시 수석을 국회에 불러 세워 망신을 줘보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정치 공세가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는지 한국당은 지금이라도 해명해야 한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성찰 없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것은 공허할 뿐만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고한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국가 미래에 대해 어떤 비전과 대안(代案)을 갖고 있는지를 유권자들에게 분명하고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시장에서 파는 전자제품에도 사용설명서가 따라붙는다. 국정을 위임받겠다는 정당으로서 사용설명서를 분명하게 하고, 설명서대로 작동하는 건 유권자에 대한 예의이자 대의정치의 기본이다. 한국당의 진정한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