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볼리비아 모랄레스, '첫' 원주민 대통령 성공신화서 퇴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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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부정 논란에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볼리비아 첫 원주민 지도자'였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60)은 중남미에서 현역 최장수 지도자로 불렸다. 때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회주의 지도자'(BBC)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대선 불복 시위가 3주째 이어진 10일(현지시간) 모랄레스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06년 1월 대통령궁에 입성한 지 13년10개월 만이다.모랄레스 대통령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아이마라족 원주민인 그는 1959년 볼리비아 산간 지역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목동, 벽돌공장 잡부, 빵 장수 등 허드렛일을 전전했다.
이후 코카인과 코카콜라의 원료인 코카 재배를 시작하면서 코카인 재배농 이익단체를 이끌게 됐고 볼리비아 원주민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좌파 사회주의운동(MAS) 소속으로 1997년 의회에 입성한 후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1차 투표 2위로 결선에 진출하며 선전했다. 당시 대선에서 승리한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전 대통령과 그의 잔여 임기를 물려받은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는데, 이들의 퇴진을 끌어낸 반(反)정부 시위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잇단 대통령 퇴진 이후 치러진 2005년 12월 대선에서 53.7%를 득표하며 이듬해 1월 볼리비아 첫 원주민 대통령 취임이라는 역사를 쓰게 된다.취임 후 그는 천연가스 등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을 통해 볼리비아에 안정적인 경제 성장과 빈곤 해소에 기여했다. 4년 후 대선에선 64.2%라는 더 압도적인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했다.
집권 중 보수 우파 야권의 저항과 거센 반정부 시위 등 위기도 없지 않았으나 2013년 대선에서 볼리비아 국민은 다시 한번 모랄레스를 택했다.
2014년 대선에서도 득표율은 61.36%로 60%를 넘었고, 세 번 연속 결선 없이 무난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2000년대 초반 중남미에 불었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가 점차 퇴조하는 와중에서도 모랄레스 대통령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중남미 좌파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됐다.
그러나 3선 연임 시도 때부터 그의 무리한 집권 연장 시도에 대한 논란은 제기됐다. 볼리비아에선 2007년 11월 개헌으로 대통령의 1회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안이 통과됐다.야권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이미 한 번 연임했다고 주장했으나, 헌법재판소는 개헌 이후의 임기만을 따져야 한다는 여당의 입장을 받아들여 모랄레스 대통령의 3선 시도를 허용한 것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연임 시도를 둘러싼 논란은 2018년 대선을 앞두고도 재연됐다. 그는 4선 연임에 나서기 위해 개헌을 시도했다. 지난 2016년 2월 개헌 국민투표에서 국민은 반대표를 던졌으나 모랄레스 대통령은 개헌 대신 헌법소원을 통해 4선 도전을 강행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연임을 제한한 규정이 위헌이라도 판단했다. 무리하게 4선 도전에 나섰지만 이미 여론은 악화했고, 4선 성공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승리를 선언했으나, 석연찮은 개표 과정을 둘러싼 부정 선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선 과정을 감사한 미주기구(OAS)는 10일 여러 부정 정황이 발견됐다고 발표했고, 군과 경찰까지 나서 모랄레스 대통령의 퇴진을 종용했다.
대선 직후만 해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탄탄한 모랄레스 대통령의 지지층을 고려할 때 그의 퇴진으로까지 사태가 확산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국민과 군경의 지지를 잃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끝까지 버티긴 힘들었다. 아름답게 퇴장할 기회를 여러 차례 놓친 모랄레스 대통령은 14년 가까이 지켜왔던 권력을 내놓은 채 결국 쫓기듯 대통령궁을 나서게 됐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대선 불복 시위가 3주째 이어진 10일(현지시간) 모랄레스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06년 1월 대통령궁에 입성한 지 13년10개월 만이다.모랄레스 대통령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아이마라족 원주민인 그는 1959년 볼리비아 산간 지역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목동, 벽돌공장 잡부, 빵 장수 등 허드렛일을 전전했다.
이후 코카인과 코카콜라의 원료인 코카 재배를 시작하면서 코카인 재배농 이익단체를 이끌게 됐고 볼리비아 원주민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좌파 사회주의운동(MAS) 소속으로 1997년 의회에 입성한 후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1차 투표 2위로 결선에 진출하며 선전했다. 당시 대선에서 승리한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전 대통령과 그의 잔여 임기를 물려받은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는데, 이들의 퇴진을 끌어낸 반(反)정부 시위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잇단 대통령 퇴진 이후 치러진 2005년 12월 대선에서 53.7%를 득표하며 이듬해 1월 볼리비아 첫 원주민 대통령 취임이라는 역사를 쓰게 된다.취임 후 그는 천연가스 등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을 통해 볼리비아에 안정적인 경제 성장과 빈곤 해소에 기여했다. 4년 후 대선에선 64.2%라는 더 압도적인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했다.
집권 중 보수 우파 야권의 저항과 거센 반정부 시위 등 위기도 없지 않았으나 2013년 대선에서 볼리비아 국민은 다시 한번 모랄레스를 택했다.
2014년 대선에서도 득표율은 61.36%로 60%를 넘었고, 세 번 연속 결선 없이 무난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2000년대 초반 중남미에 불었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가 점차 퇴조하는 와중에서도 모랄레스 대통령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중남미 좌파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됐다.
그러나 3선 연임 시도 때부터 그의 무리한 집권 연장 시도에 대한 논란은 제기됐다. 볼리비아에선 2007년 11월 개헌으로 대통령의 1회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안이 통과됐다.야권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이미 한 번 연임했다고 주장했으나, 헌법재판소는 개헌 이후의 임기만을 따져야 한다는 여당의 입장을 받아들여 모랄레스 대통령의 3선 시도를 허용한 것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연임 시도를 둘러싼 논란은 2018년 대선을 앞두고도 재연됐다. 그는 4선 연임에 나서기 위해 개헌을 시도했다. 지난 2016년 2월 개헌 국민투표에서 국민은 반대표를 던졌으나 모랄레스 대통령은 개헌 대신 헌법소원을 통해 4선 도전을 강행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연임을 제한한 규정이 위헌이라도 판단했다. 무리하게 4선 도전에 나섰지만 이미 여론은 악화했고, 4선 성공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승리를 선언했으나, 석연찮은 개표 과정을 둘러싼 부정 선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선 과정을 감사한 미주기구(OAS)는 10일 여러 부정 정황이 발견됐다고 발표했고, 군과 경찰까지 나서 모랄레스 대통령의 퇴진을 종용했다.
대선 직후만 해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탄탄한 모랄레스 대통령의 지지층을 고려할 때 그의 퇴진으로까지 사태가 확산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국민과 군경의 지지를 잃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끝까지 버티긴 힘들었다. 아름답게 퇴장할 기회를 여러 차례 놓친 모랄레스 대통령은 14년 가까이 지켜왔던 권력을 내놓은 채 결국 쫓기듯 대통령궁을 나서게 됐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