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엔 내고 '성노예 아니다' 약속받았으면 위안부합의 무효"

"국제법 강행규범 위반…일본 정부가 가짜뉴스 뿌리고 있다"
'위안부=성노예' 유엔서 처음 주장한 도쓰카 日변호사 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해 온 도쓰카 에쓰로(戶塚悅朗·77) 변호사는 위안부를 성노예로 표현하는 것이 사실과 어긋난다는 주장을 한국이 수용한 것처럼 기재한 일본 외교청서가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다.도쓰카 변호사는 6∼1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외교청서와 관련해 "나는 일본 정부가 '페이크 뉴스'(fake news·가짜뉴스)를 뿌리는 것은 큰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는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것이 사실에 반하며 그것을 한국 정부가 확인한 것처럼 쓴 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2019년 외교청서에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이런 점은 2015년 12월 일한 합의 때 한국 측도 확인했으며 동 합의에서도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고 기재한 바 있다.

도쓰카 변호사는 만약 일본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무효가 된다고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10억엔을 지불하고 그런 약속을 하게 했다면 이는 유스 코겐스(jus cogens, 강행규범)에 위반된다.노예였다는 것을 한국 정부가 부정하는 합의를 했다는 셈인데 그런 외교장관 합의는 파기가 아니라 애초에 무효"라고 말했다.

유스 코겐스는 국제법상 어떤 일탈도 허용되지 않는 일반국제법의 규범(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을 의미하며 국가가 자유의사에 따라 체결한 조약이라도 이를 벗어나면 무효인 것으로 보는 원칙이다.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 53조는 '조약은 그 체결당시에 일반국제법의 절대규범과 충돌하는 경우에 무효'라고 규정했고 64조는 일반 국제법의 새 절대 규범이 출현하는 경우에, 그 규범과 충돌하는 현행 조약은 무효'라고 설명하고 있다.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 53조 또는 64조에 관한 분쟁은 국제연합헌장에 따라 조정 등으로 해결을 시도하되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결정을 의뢰하게 된다.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은 1969년 5월 23일 빈에서 채택됐고 1980년 1월 27일 발효했으며 현재 한일 양국이 모두 가입하고 있다.

통상 노예제, 해적행위, 침략, 대량학살 등을 강행 규범에 따른 금지행위로 본다.

도쓰카 변호사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은 노예제 금지를 직접 다룬 국제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이보다 폭넓게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강제노동폐지에 관한 ILO 조약을 1932년 비준했다.

만약 위안부 합의에서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것을 부정하려고 했다면 이는 유스 코겐스 위반이며, 결국에는 ICJ가 승인하지 않는 이상 한일 양국만의 합의로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도쓰카 변호사의 지적이다.

도쓰카 변호사는 일본이 주장한 대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니라고 양국이 합의 또는 동의했다면 "노예 금지에 대한 국제법을 깬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제법 지키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지키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노예제의 일종인 성노예가 합법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신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런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 "유엔이나 국제노동기구(ILO)의 전문가 위원회도 인정했다.

세계 각국 정부에 대한 책임을 지닌 국제기관이 인정한 것을 한 두 국가 정부가 뒤집는 것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도쓰카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 기본적으로 잘못된 일이지만 2015년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응도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노예를 노예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노예를 노예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자체가 유스 코겐스 위반"이라며 당시 한국 정부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표명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을 검증한 한국 측 태스크포스(TF)의 2017년 보고서를 보면 일본 측은 한국 정부가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고, 당시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공식 명칭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임을 재차 확인"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기재돼 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성노예(sexual slavery)'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나, 일본 쪽이 이러한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도쓰카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공개된 내용을 교묘하게 비틀어 자신들의 주장이 확인됐다는 취지라고 우길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주일 대사관은 외교청서의 성노예 주장에 대해 "합의 당시 우리 측이 동의한 것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우리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었다는 것이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고 11일 밝혔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규정한 것이 사실에 반한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는지나 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도쓰카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선명하게 밝히지 않는 것에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성노예라는 판단을 포기한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정부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동의했을 리가 없으니 잘못됐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만약 합의했으면 유스 코겐스 위반으로 무효"라고 덧붙였다.

도쓰카 변호사는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잘못된 해결방법이었다고 규정하고서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해결을 모색하라고 제언했다.

그는 "가령 아베 총리가 마지막까지 저항하면 저항하는 대로 둔 채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주장으로 일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쓰카 변호사는 1992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NGO 대표로 출석해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였다고 발언했다.이는 유엔에서 위안부를 성노예로 규정하려는 최초의 공개적 시도였으며 유엔은 이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1996년) 등으로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였다고 인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