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2.5兆 승부수'…항공날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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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사업에 강한 의지
< HDC-미래에셋대우, 아시아나 인수 우선협상자로 >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2일 서울 한강대로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HDC가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국내 2위 국적항공사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든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지난 7일 본입찰 전 “건설업을 벗어나 모빌리티 그룹으로 가기 위해선 아시아나항공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입찰가를 높일 것을 지시했다. 당시 시장 안팎에선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자회사를 포함한 아시아나항공 매각가가 최대 2조원 안팎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2조5000억원을 적어냈다. 경쟁자 애경그룹과의 격차를 1조원 이상 벌리며 가격 면에서 압도했다. 정 회장의 강한 인수 의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금호산업은 12일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금호산업은 “HDC현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정상화를 달성하고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수 후보로 꼽혔다”고 설명했다. HDC현산은 전날 국토교통부의 인수후보 적격성심사도 통과했다. 올해 말까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하면 HDC의 재계 순위는 33위에서 18위로 뛰게 된다.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통 큰 베팅’을 한 것은 건설업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호기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와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사업 위험이 큰 건설업 외에 안정적인 신규 사업을 모색해왔다. 재계에선 정 회장의 부친인 ‘포니 정’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동차에서 항공으로 대상이 바뀌긴 했지만 건설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의지가 녹아 있다는 분석이다.

정 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서울 한강대로 HDC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HDC가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 항공을 비롯해 육상과 해상 쪽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포니정' DNA 물려받은 정몽규…"모빌리티그룹으로 도약할 것"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12일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평소 언론 노출이 적은 그였지만 이날만은 직접 나서야겠다고 결심한 듯 보였다. 간담회엔 실무진이 배석해 있었지만 모든 질문에 직접 답했다. 그의 발언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의지가 그대로 투영됐다.
“아시아나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 목표”

정 회장이 간담회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 강화다. 그는 “항공업이 어렵지만 2조원 이상 증자를 하게 되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300% 미만으로 내려가게 된다”며 “자금 악순환이 이어졌던 아시아나항공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가 좋지 않은데 왜 인수를 추진하냐고 하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가 오히려 기회”라며 “위기일 때 오히려 상당히 좋은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고 했다.HDC현산 컨소시엄이 입찰에서 적어낸 대로 2조원 이상의 유상증자를 하면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660%에서 300%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부채비율이 880%에 달하는 대한항공보다 재무상태가 좋아진다. 재무구조 개선 기대가 커지면서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이날 12.86% 급등해 6580원에 마감했다.

2조5000억원 베팅 배경은

HDC현산을 비롯한 HDC그룹은 대규모 투자로 인한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현재 HDC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A+다. 이에 비해 아시아나항공은 BBB-에 그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HDC에 비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구조가 열악하고 자산과 부채 덩치가 크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정 회장은 그러나 ‘승자의 저주’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HDC현산 컨소시엄은 입찰 과정에서 5조원 이상의 자금 증빙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금융(인수합병용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기존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충분히 댈 수 있다고 과시한 것이란 풀이다.

범(汎)현대가의 지원사격도 예정돼 있다.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회장은 인수전 초기부터 오너가 모임에서 조언을 구하고, 인수전 막판에는 범현대가 여러 그룹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여객 및 물류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향서(LOI)를 받아 매각 측에 제출했다.

아시아나항공 산하의 저비용항공사(LCC)나 사업부를 떼어내 매각해서 곧바로 현금을 회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 회장은 간담회에서 “에어부산과 아시아나IDT 등 인수 계획은 구체화된 게 없다”며 “전략적 파트너와 회사를 세우는 것까지 열어놓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모빌리티그룹 지향

정 회장은 원래 현대자동차에서 핵심 경력을 쌓았다. 1988년 현대차에 입사한 뒤 199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34세였던 1996년엔 현대차 회장직을 맡았다. 아버지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차의 운전대를 잡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현대차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갔고, 정몽규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을 받게 됐다. 정 회장은 2005년 부친이 타계한 이듬해 부친의 별칭을 딴 ‘포니정 재단’을 세워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재계에선 정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부친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한다.

정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HDC가 모빌리티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HDC현산은 경전철 등 육상 사업과 항만 등 해상 관련 사업을 이미 하고 있다.

자회사 지배구조는 ‘숙제’

남아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아시아나 자회사들의 지배구조 조정이다. 이번 인수는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들을 한꺼번에 사오는 방식이다. 문제는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점이다.아시아나 자회사 중 에어서울,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개발은 아시아나항공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 아시아나세이버의 지분율은 각각 76.2%, 44.2%, 80%에 그친다. 지분을 더 사서 100%를 맞추든지 재매각해야 한다.

이상은/구민기/김은정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