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토지·문명 뺏긴 약자들의 비극…나이지리아의 냉혹한 역사 담다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강자들이 우리나라에, 연약한 것들에게, 또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봐. 우는 소리가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 같지 않아? 이건 잘 조율된 노래 같아. 합창단처럼. 슬픔의 노래야. 이건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야.”

올해 부커상 최종후보작에 오른 치고지에 오비오마(사진)의 장편소설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제목처럼 소수자와 약자들이 겪는 슬픔을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로 표현했다. 나이지리아 작가 오비오마는 소설 속 비통한 ‘울음’ 노래를 통해 이 시대 모든 약자들이 고난이란 공통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소설은 사랑에 빠진 한 젊은이가 연인과 미래를 함께하기 위해 출세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통속적 이야기를 주된 줄거리로 삼고 있다. 주인공 치논소는 사랑하는 여자 은달리보다 부족한 학력 때문에 은달리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자 집과 농장을 팔아 유학길에 나서지만 친구로부터 사기를 당해 그리스령 남키프로스가 아니라 터키령 북키프로스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전 재산을 잃고 누명을 쓴 채 4년간 옥살이를 한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치논소는 친구로부터 재산을 돌려받지만 은달리는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둔 상태였다.

소설 속 치논소의 맹목적 사랑과 어리석은 행위들은 개연성이 떨어진다. 상황에 이끌려 들어가 끝없이 비극에 휘말리면서도 치논소의 행동은 답답할 정도로 나아지지 않는다. 소설이 이야기하려는 ‘마이너리티(약자·소수자들)’라는 역할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통속적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연약한 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이자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살아야 하는 소수자들의 슬픔이다. 주인공 치논소의 비극은 개인적 성향이나 운명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작가가 나서 자란 나이지리아의 역사적 현실에서 비롯됐다.작가는 소설 속 나이지리아를 ‘지속적인 정전의 땅’으로 표현한다. 국가를 강탈하는 지도자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괴롭히고 뇌물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쏴버리는 경찰, 납치범과 살인자가 출몰하며 쓰레기 천지인 거리와 지저분한 동네가 지금의 나이지리아라는 것을 소설은 냉혹하게 말해준다.

소설이 가진 매력과 작가의 비범함은 치논소의 고난을 관찰하고 증언하는 화자 ‘치’에 있다. 치는 모든 인간에게 깃들어 있다는 수호령이다. 인간 내면의 신과 같은 존재로 절대자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한다. 나이지리아 전통 우주론인 ‘이보 우주론’에서 기인한 개념이다. 치는 치논소와 함께 다니며 그의 행동을 말 없이 지켜보지만 위급할 때는 그의 행동을 보이지 않는 ‘절대자 신’에게 변호한다. 이렇게 작가는 연약한 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으로 대변되는 현실 속 소수자들의 비극적 현실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비통함을 신적인 존재의 연민 어린 목소리로 들려준다. (강동혁 옮김, 은행나무, 각 2권 348쪽, 1만3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