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헌책 팔러다닌 이탈리아 도붓장수들이 남긴 것

몬테레조 작은 마을의 유랑책방
‘프레미오 반카렐라(Premio Bancarella)’는 이탈리아의 가장 권위 있는 출판상이다. 이탈리아 전국 서점들이 한 해 동안 가장 잘 팔린 책을 한 권씩 추천해 후보작 여섯 권을 선정하고 그중 한 권을 뽑아 상을 준다. 제1회 수상작(1953년)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2017년에는 이정명의 장편소설 <별이 스치는 바람>이 최종 후보에 올라 관심을 모았다.

출판사 글항아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거주하는 일본 작가 우치다 요코가 쓴 <몬테레조 작은 마을의 유랑책방>을 펴내며 프레미오 반카렐라를 ‘유랑책방 상’으로 번역했다. 노점 또는 헌책방이란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어 반카렐라를 ‘유랑책방’으로 옮겼다. ‘유랑책방 상’ 시상식은 매년 3월 토스카나주 소도시 폰트레몰리 광장에서 열린다. 폰트레몰리 인근에 산간벽지 마을 몬테레조가 있다. 이탈리아 유랑책방을 탄생시킨 곳이다.이 책은 베네치아의 한 고서점에서 비롯됐다. 우치다는 즐겨 찾는 고서점의 주인이 헌책을 짊어지고 이탈리아 전역을 유랑한 몬테레조 도붓장수의 후손임을 알게 된다. ‘읽고 쓰는 것도 몰랐던 가난한 산골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팔러 다녔을까’란 의문을 품은 그는 몬테레조를 찾아 도붓장수들의 흔적을 따라간다.

몬테레조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19세기 초부터 출판사의 재고나 파본을 팔러 다니기 시작했다. 때마침 이탈리아 반도에 민족 독립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책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전한 몬테레조 도붓장수들은 이탈리아 문화와 정신이 흐르는 길을 확장했고,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들이 책을 담은 광주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손수레로 바뀌고, 말이 끄는 수레가 되고, 서점이 됐다.

저자는 수십 명밖에 남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고 각지에 퍼진 도붓장수들의 후예들을 찾아다니는 취재의 여정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생생하게 재구성한 몬테레조 유랑책방의 역사에 중세 활판인쇄부터 단테, 나폴레옹, 베르디, 이탈리아 독립운동, 헤밍웨이까지 거대한 문화의 흐름을 담아냈다. (류순미 옮김, 글항아리, 300쪽, 1만4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