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대 그리스인은 체육관, 로마인은 목욕탕서 책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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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7
도서관 지식문화사
윤희윤 지음 / 동아시아
476쪽 /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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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도서관은 다양했다. 기원전 6~5세기에 개인도서관이 등장했다. 플라톤이 세운 학당인 아카데메이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이 대표적이다. 체육관 안에 도서관을 둔 경우도 많았다.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인 그리스 코스섬에 건립된 코스 도서관, 아테네 도심의 프톨레마이온 도서관 등이 그랬다.
고대 로마의 통치자들도 도서관 건립에 열을 올렸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폴로 신전 오른쪽에 비블리오테가 아폴리니스라는 공공도서관을 지었다. 체육관에 도서관을 둔 그리스와 달리 로마에서는 목욕탕 부대시설로 공공도서관을 뒀던 점이 이채롭다. 서기 216년에 완공된 로마 남단의 카라칼라 목욕탕은 도서관, 수영장, 체육관, 정원, 상점 등을 두루 갖춘 현대판 종합레저시설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중세에 도서관을 발전시킨 것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과 부속 도서관은 고대 왕실 도서관과 근대 도서관을 연결하는 가교였다. 중세 수도원에서 지식은 신을 알현하는 통로였다. 이 때문에 수도원과 수도사에게는 책이 많이 필요했고, 도서관과 사서는 책의 수집과 보존을 책임졌다. 미소장 자료는 필사를 통해 보충했다. 책에는 베네딕도 성인이 수도했던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 수도원부터 영국 휘트비 수도원, 스위스의 장크트 갈렌 수도원, 프랑스 몽생미셸 수도원 등 수많은 수도원 도서관들이 소개돼 있다. 헝가리 판논할마 대수도원 도서관의 장서는 약 40만 권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오스트리아 아드몬트 수도원은 길이 70m, 폭 14m, 높이 11m에 달하는 세계 최대 수도원 도서관 덕분에 유명해졌을 정도다. 체코의 스트라호프 수도원도 수도원 자체보다 부속 도서관이 더 유명하다.
저자는 이슬람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한다. 그리스·로마의 유산이 사라질 뻔했던 위기의 시대에 서양 고대문명과 우수한 학문 지식을 수용해 발전시키고 고대 지식정보를 수집, 보존해 르네상스의 초석을 놓은 이들이 바로 무슬림이라고 강조한다. 그 바탕은 단지 예배당에 그치지 않고 학교, 병원, 도서관 등을 갖췄던 모스크였다는 설명이다.
중세에 종말을 고하고 근대의 태동과 발전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동양에서 전해진 인쇄술이었다. 특히 금속활자와 활판 인쇄술이 등장한 뒤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책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지식의 대중화와 지적혁명을 불러왔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도 그런 토대 위에 이뤄졌다.동아시아에선 어땠을까. 중국에서는 상(商) 왕조 때 갑골문이 등장한 이래 기록물을 수장하는 공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때가 되면 책을 보관하는 장서처(藏書處)를 뒀다. 장서처의 담당자를 사(史)라고 불렀는데 ‘사기(史記)’에는 노자를 서고 관리자로 기록하고 있으니 노자가 중국 최초의 도서관장인 셈이다. 중국 역사에서 최대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72년 설치한 사고전서관에서 중국 전역의 도서를 모아 편찬한 ‘사고전서총목’으로, 1만160종, 17만2000여 권에 달한다. 한국의 고려대장경과 해인사 판전, 조선의 규장각 등도 세계 도서관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저자는 근현대 공공도서관의 태동과 확산까지 두루 살피면서 디지털 시대에 처한 도서관의 위기와 미래도 전망한다. 저자는 세계 여러 도서관들의 진화와 변화를 소개하면서 “미래 공공도서관의 로고스는 책 중심의 사회적 복합문화공간”이라며 “책과 사람, 문화와 학습, 준비와 휴식이 공존하는 도서관을 기대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