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관 블록딜 사전접촉 관행, 이대로 괜찮나

현장에서

공매도 세력, 부당이득 통로 악용
"블록딜 사전 공시제 도입해야"

오형주 증권부 기자
“상장사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정보를 주관사인 증권사가 전날 장 마감 전 해외 기관투자가에 미리 제공(월크로싱)하는 것은 업계의 오랜 관행이자 제도입니다.”

외국계 자산운용사에서 주식 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한 펀드매니저는 14일 블록딜 정보가 미리 유출될 수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원칙적으로는 장 마감 뒤 주관사의 블록딜 수요예측이 실시되는 것이 맞지만 실무상으로는 장중에 태핑(사전접촉)이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3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현대로템 블록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공매도로 부당이득을 취한 홍콩 소재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A씨에게 과징금 5억8270만원을 부과했다. 증선위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5월 2일 미국계 사모펀드 모건스탠리프라이빗에쿼티(PE)가 현대로템 지분 9.7%(823만 주)를 블록딜로 처분한다는 정보를 장 마감 전 미리 입수했다. 블록딜 주관사가 각 기관을 상대로 수요예측을 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새나갔다. 기관이 이 정보를 거래에 활용하는 건 금지돼 있지만 이를 어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블록딜이 이뤄지면 해당 종목 주가는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블록딜 물량에 시장가격 대비 3~15%가량 할인율이 적용되는 것을 감안한 투자자들이 단기 차익 매물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실제 블록딜 거래가 이뤄진 작년 5월 3일 현대로템 주가는 17.18% 급락했다. A씨가 운용하는 펀드는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주가가 하락할수록 이익을 낼 수 있는 공매도 주문을 전날 미리 제출해 부당이득을 얻었다.이날 현대로템의 공매도 물량과 거래대금이 상장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자 블록딜 정보가 사전에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결국 A씨의 행각은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덜미가 잡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블록딜 정보를 장 마감 전 기관에 미리 제공하는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런 불공정 행위가 계속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다른 펀드매니저는 “블록딜 주관을 맡은 증권사 입장에선 수수료 수입을 위해 최대한 미리 수요조사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서도 “블록딜로 주가 하락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보를 입수한 기관이 공매도 등 불공정 거래를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임원은 “블록딜도 기업공개(IPO)처럼 수요예측 등 일정과 절차를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블록딜 사전 공시제’를 도입해 누구나 블록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도록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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