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도심에서 다이너마이트가 '쾅'…전쟁터 같은 혼돈의 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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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레스 지지자 시위 이어져…분노한 원주민들, 임시대통령 아녜스 퇴진요구
도로 봉쇄돼 라파스엔 연료·물자난…언제 일상 되찾을지 막막 멀리서 총성과도 같은 폭죽 소리가 들렸다.
거리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 도심 마리스칼 산타크루스 대로에 늘어선 식당과 상점들에선 폭죽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된 듯 일제히 사람들이 건물 유리에 나무판자와 철판 등을 덧댔다.
아예 셔터를 내린 곳도 있었다.
약탈과 기물파손, 방화 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리를 걷던 행인들은 주변 큰 건물로 들어갔다.
살얼음처럼 불안한 라파스의 평화가 빠지직하고 깨지는 순간이었다.
14일(현지시간)에도 라파스 거리에선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10일 사퇴를 선언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과 좌파 여당 사회주의운동(MAS)의 지지자들이었다.
지난달 20일 대통령 선거 이후 부정 시비 속에 야권 지지자들이 3주 가까이 거리로 나와 거센 시위를 벌였고, 모랄레스가 물러난 후에는 모랄레스 지지자들이 대신 거리를 차지했다.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라파스 외곽 엘알토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며칠째 도보로 라파스로 들어와 대통령궁과 의회가 있는 무리요 광장까지 행진하며 시위하고 있다. 시위대는 대부분 원주민이었다.
원주민 전통의상을 입은 이들도 많았다.
원주민들의 상징과도 같은 격자무늬 무지개색 깃발 '위팔라'를 손에 든 시위대의 요구는 여러 가지였다.
이들은 모랄레스가 대통령궁으로 돌아오길 바랐고,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야당 상원 부의장 자니네 아녜스는 '인종주의자'라며 떠나야 한다고 했다.
대선 불복 시위를 주도했던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 목소리를 높여 외친 것은 '위팔라'와 '포예라'(원주민 여성 전통의상)를 존중하라는 요구였다.
볼리비아 인구의 60%를 차지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이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볼리비아 첫 원주민 대통령이었던 모랄레스가 쫓겨난 데 감정이 격해졌다.
야권 지지자들이 원주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위팔라 깃발을 태웠다는 보도도 시위대를 자극했다.
전통의상을 입고 위팔라를 흔들며 행진하던 로스메리 카노는 "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왔다.
누구도 내게 돈을 주거나 시위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위자 아파스 곤살레스 산티아고는 "아녜스는 인종주의자이고 거짓말쟁이다.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진은 비교적 평화적이었지만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폭죽 소리 외에 간헐적으로 지축을 흔드는 듯한 진동과 소음이 들렸다.
광업에 종사하는 시위대가 가져온 다이너마이트였다. 이날 시위대가 던진 다이너마이트로 도심 가옥 10채가 충격으로 유리창이 깨지는 등 부서졌다고 현지 방송은 전했다.
전날도 누군가가 던진 화염병으로 도심 약국에 불이 났다.
이날 시위대가 지나간 후 조심스럽게 다시 셔터를 올린 한 식당 직원은 "이번 시위대는 규모도 작고 상당히 평화적이었다"며 "저녁이 되면 더 많은 시위대가 몰려오고 그 틈에 약탈과 파손을 일삼는 이들이 섞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모랄레스 지지세가 강한 엘알토 지역은 라파스국제공항이 있는 곳인데, 이날 새벽 기자가 볼리비아에 입국하면서 본 엘알토 일대는 그야말로 전쟁터같았다.
공항을 오가는 대로가 바위와 건축자재 등으로 막혀 있어 뚫린 길을 찾아 빙빙 돌아야 했다.
톨게이트는 처참하게 부서졌고 곳곳에는 야권 인사들은 향한 살벌한 위협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나마 군이 통제를 시작한 이후 모랄레스 퇴진 직후보다는 치안이 비교적 안정된 것이었다.
과격 시위에 따른 위험은 상존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속된 시위에 라파스 시민들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듯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셔터를 올렸나 내렸다 하면서도 생업과 일상을 이어가려고 애썼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파스로 통하는 주요 도로가 시위가 봉쇄되면서 물자가 부족해졌다. 시내 주유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식당엔 재료가 없어서 만들 수 없는 메뉴 투성이었다.
택시 기사 아르만도는 "길이 다 막혀서 일을 못한 지 한참 됐다.
기름도 구할 수 없다"면서도 "초반에 시위를 벌였던 우파들은 좌파들이 시위하자 불편을 호소하며 피해자 행세를 한다"고 비난했다.
대선 이후 라파스는 그 어느 때보다 여야, 좌우, 도농 등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좌든 우든, 모랄레스든 아녜스든 볼리비아에 어서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기를 염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무리요 광장 인근에 좌판을 벌이고 화장지 등을 파는 원주민 여성은 "볼리비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돼 너무 슬플 뿐"이라고 했다.
이날 낮 도심엔 50여 명의 학생이 소규모 시위를 벌였다.
모랄레스 지지자도, 야권 지지자도 아닌 이들의 요구는 "교실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전 대통령은 망명하고, 임시 대통령은 다수 여당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시계 제로의 혼란에 빠진 볼리비아에서 학생들이 언제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연합뉴스
도로 봉쇄돼 라파스엔 연료·물자난…언제 일상 되찾을지 막막 멀리서 총성과도 같은 폭죽 소리가 들렸다.
거리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 도심 마리스칼 산타크루스 대로에 늘어선 식당과 상점들에선 폭죽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된 듯 일제히 사람들이 건물 유리에 나무판자와 철판 등을 덧댔다.
아예 셔터를 내린 곳도 있었다.
약탈과 기물파손, 방화 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리를 걷던 행인들은 주변 큰 건물로 들어갔다.
살얼음처럼 불안한 라파스의 평화가 빠지직하고 깨지는 순간이었다.
14일(현지시간)에도 라파스 거리에선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10일 사퇴를 선언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과 좌파 여당 사회주의운동(MAS)의 지지자들이었다.
지난달 20일 대통령 선거 이후 부정 시비 속에 야권 지지자들이 3주 가까이 거리로 나와 거센 시위를 벌였고, 모랄레스가 물러난 후에는 모랄레스 지지자들이 대신 거리를 차지했다.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라파스 외곽 엘알토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며칠째 도보로 라파스로 들어와 대통령궁과 의회가 있는 무리요 광장까지 행진하며 시위하고 있다. 시위대는 대부분 원주민이었다.
원주민 전통의상을 입은 이들도 많았다.
원주민들의 상징과도 같은 격자무늬 무지개색 깃발 '위팔라'를 손에 든 시위대의 요구는 여러 가지였다.
이들은 모랄레스가 대통령궁으로 돌아오길 바랐고,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야당 상원 부의장 자니네 아녜스는 '인종주의자'라며 떠나야 한다고 했다.
대선 불복 시위를 주도했던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 목소리를 높여 외친 것은 '위팔라'와 '포예라'(원주민 여성 전통의상)를 존중하라는 요구였다.
볼리비아 인구의 60%를 차지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이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볼리비아 첫 원주민 대통령이었던 모랄레스가 쫓겨난 데 감정이 격해졌다.
야권 지지자들이 원주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위팔라 깃발을 태웠다는 보도도 시위대를 자극했다.
전통의상을 입고 위팔라를 흔들며 행진하던 로스메리 카노는 "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왔다.
누구도 내게 돈을 주거나 시위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위자 아파스 곤살레스 산티아고는 "아녜스는 인종주의자이고 거짓말쟁이다.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진은 비교적 평화적이었지만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폭죽 소리 외에 간헐적으로 지축을 흔드는 듯한 진동과 소음이 들렸다.
광업에 종사하는 시위대가 가져온 다이너마이트였다. 이날 시위대가 던진 다이너마이트로 도심 가옥 10채가 충격으로 유리창이 깨지는 등 부서졌다고 현지 방송은 전했다.
전날도 누군가가 던진 화염병으로 도심 약국에 불이 났다.
이날 시위대가 지나간 후 조심스럽게 다시 셔터를 올린 한 식당 직원은 "이번 시위대는 규모도 작고 상당히 평화적이었다"며 "저녁이 되면 더 많은 시위대가 몰려오고 그 틈에 약탈과 파손을 일삼는 이들이 섞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모랄레스 지지세가 강한 엘알토 지역은 라파스국제공항이 있는 곳인데, 이날 새벽 기자가 볼리비아에 입국하면서 본 엘알토 일대는 그야말로 전쟁터같았다.
공항을 오가는 대로가 바위와 건축자재 등으로 막혀 있어 뚫린 길을 찾아 빙빙 돌아야 했다.
톨게이트는 처참하게 부서졌고 곳곳에는 야권 인사들은 향한 살벌한 위협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나마 군이 통제를 시작한 이후 모랄레스 퇴진 직후보다는 치안이 비교적 안정된 것이었다.
과격 시위에 따른 위험은 상존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속된 시위에 라파스 시민들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듯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셔터를 올렸나 내렸다 하면서도 생업과 일상을 이어가려고 애썼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파스로 통하는 주요 도로가 시위가 봉쇄되면서 물자가 부족해졌다. 시내 주유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식당엔 재료가 없어서 만들 수 없는 메뉴 투성이었다.
택시 기사 아르만도는 "길이 다 막혀서 일을 못한 지 한참 됐다.
기름도 구할 수 없다"면서도 "초반에 시위를 벌였던 우파들은 좌파들이 시위하자 불편을 호소하며 피해자 행세를 한다"고 비난했다.
대선 이후 라파스는 그 어느 때보다 여야, 좌우, 도농 등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좌든 우든, 모랄레스든 아녜스든 볼리비아에 어서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기를 염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무리요 광장 인근에 좌판을 벌이고 화장지 등을 파는 원주민 여성은 "볼리비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돼 너무 슬플 뿐"이라고 했다.
이날 낮 도심엔 50여 명의 학생이 소규모 시위를 벌였다.
모랄레스 지지자도, 야권 지지자도 아닌 이들의 요구는 "교실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전 대통령은 망명하고, 임시 대통령은 다수 여당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시계 제로의 혼란에 빠진 볼리비아에서 학생들이 언제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