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에 드리운 모랄레스의 그림자…귀환 여부 관심

모랄레스, 귀국 가능성 시사…임시 대통령 "기소 각오해야"
14년 가까이 집권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대선 부정 논란 속에 도망치듯 볼리비아를 떠났지만, 볼리비아엔 모랄레스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우고 있다. 15일(현지시간)에도 수도 라파스를 비롯한 볼리비아 곳곳에선 모랄레스 지지자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이들은 모랄레스가 우파 쿠데타로 축출된 것이라고 비난하며 옛 지도자를 향해 돌아와달라고 호소했다.

모랄레스의 지지층인 가난한 농촌 원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엘알토로 향하는 라파스 외곽 길에선 '2020∼2025년 대통령은 에보', '에보와 함께한다'는 등의 문구가 보였다. 성난 시위대에선 모랄레스가 대선 부정을 저질렀다는 데 대한 실망감이나 혼돈의 볼리비아를 두고 멕시코로 떠났다는 데 대한 배신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퇴임 하루 만에 서둘러 망명길에 오른 모랄레스도 "살아 있는 한 정치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며 언제든 복귀를 시도할 것임을 시사했다.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선 "내가 아직 볼리비아 대통령"이라며 볼리비아 평화를 위해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모랄레스가 의회에 제출한 사퇴서는 의회 3분의 2를 차지하는 좌파 여당 사회주의운동(MAS)의 보이콧 속에 아직 공식적으로 의회를 통과하진 않은 상태다.

그는 또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의회에서 자신의 사임안이 통과되는 대로 이른 시일 내에 귀국을 시도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인터뷰에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볼리비아 외교장관에게 전화해 내가 볼리비아에서 나갈 수 있도록 비행편을 제공하겠다고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 정부는 모랄레스가 볼리비아를 떠나는 편이 미국 입장에서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임시 정부를 구성한 옛 우파 야권 세력에는 모랄레스의 그림자가 달가울 리 없다.

베네수엘라처럼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는 아니지만 멕시코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랄레스, 그리고 볼리비아에 남은 그의 그림자가 임시 대통령 자니네 아녜스와 권력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외신 기자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아무도 그(모랄레스)를 내쫓지 않았다.

돌아올 자유가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돌아오면 선거 사기와 많은 부패 의혹에 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귀국하면 사법 처리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시 정부는 '모랄레스 신화 깨기'에도 노력하는 모양새다.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임시 경제장관은 "외신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며 모랄레스 정권에서 재정 지출과 부채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빈곤율 감소 등 모랄레스 정권의 경제 성과가 과장되고 왜곡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날엔 언론에 모랄레스가 머물던 관저 내부를 공개했다.

임시 공보장관은 빈곤층의 신임이 두터운 모랄레스의 침실과 자쿠지 등이 호화롭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모랄레스 지지층을 흔드는 데는 아직 효과가 없는 듯하다. 이날 볼리비아 곳곳에서 거리로 나온 지지자들은 "모랄레스가 돌아올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