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주요 정당, 시위대 요구에 내년 4월 '개헌 국민투표' 합의

투표로 개헌안 작성 주체도 결정키로
반정부 시위가 29일째 이어지고 있는 칠레에서 주요 정당들이 개헌을 위한 국민 투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AP·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칠레 주요 정당들은 15일(현지시간)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를 내년 4월에 시행하는 데 합의했다.

투표에선 개헌안을 현 의회가 작성할지 아니면 의원들과 별도로 선정된 시민들로 이뤄진 새로운 단체가 작성할지도 결정하게 된다.

하이메 낀따나 칠레 상원의장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공개하면서 "개헌은 칠레가 평화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제정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사회 불평등 전반에 항의하는 시위를 한 달 가까이 벌이고 있는 시위대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다.
1980년에 도입된 현행 헌법은 국민에게 의료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하지는 않고 있다.

시위대는 군부독재 시절 이뤄진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칠레의 양극화를 부추겼다며, 이것의 토대가 된 헌법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클라우디아 에이스 칠레대 정치학과 교수는 헌법 제정 당시 정식 국민 투표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칠레 국민이 헌법을 민주적으로 승인한 적이 없기 때문에 국민의 반감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칠레 여론조사기관 카뎀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7%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행 헌법은 주요 조항을 수정하기 위해 '압도적 다수' 의원이 찬성해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해, 지금까지 정부가 개헌을 시도할 때마다 보수 정당들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칠레 정부는 이날 의회 결정을 환영했다.

카를라 루빌라르 정부 대변인은 이번 결정에 대해 "다양한 정치 세력이 대화로 차이점을 극복하고 화합의 신호를 보낸 엄청난 합의"라고 평가했다.

곤살로 블루멜 내무장관 역시 "이번 합의는 첫걸음일 뿐이지만, 새로운 사회적 협약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핵심적인 역사적 첫걸음이며, 시민들이 이를 주도할 것"이라고 환영을 표시했다.

일각에서는 개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신중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라울 오파소(39)는 "헌법(개정)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데, 연금과 교육 등 더 긴급한 사항들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