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아현화재 통신대란 1년…"5G시대 재난 대응책, 더 고민해야"

KT·정부, 투자·재난관리계획 발표…"통신 재난에 정부 역할 키워야"

작년 '최악의 통신대란'을 일으킨 KT 아현국사 화재가 24일로 1년을 맞는다. 당시 화재로 인근 지역에서 통신장애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은행, 카드, 증권 등 금융서비스가 곳곳에서 멈추는 등 일상이 마비되는 재난상황이 빚어졌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모든 분야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은 시대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재난 유형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특히 이 사고는 5세대 이동통신(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일주일 앞두고 일어나 '초연결시대' 정보기술(IT) 기반 시설의 방재 대책을 더욱 확고히 수립해야 한다는 반성으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5G 시대 재난 대응책에 대해 아직도 사회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민관이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 KT 화재로 휴대전화·인터넷· 카드도 먹통…'통신 대란' 이어져
작년 11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건물 지하 통신구(케이블 부설을 위해 설치한 지하도)에서 발생한 화재는 그야말로 '통신 대란'을 일으켰다.

서울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와 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에서 KT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초고속 인터넷, IPTV 서비스 등에 통신장애가 일어났다. 서울 서대문·마포·용산경찰서는 화재 이후 장시간 경비전화(내부 전화망)와 일반전화, 지방경찰청과 연결된 112 신고시스템이 마비됐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병원 전산망이 멈춰서는 피해도 있었다.

응급 환자가 119 신고를 일찍 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건도 일어났다.

KT 통신망을 사용하는 카드 단말기와 포스(POS·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가 '먹통'이 돼 소상공인의 피해도 컸다. 24일 오전 11시 12분에 난 불은 10시간이 지난 오후 9시 26분 꺼졌지만, 이 사고로 통신구 약 79m가 소실되면서 장애 복구에는 수일이 더 걸렸다.

하지만 5개월간에 걸친 경찰 수사 끝에도 발화 지점이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KT 아현국사는 2015년 원효국사와 통합되면서 'C등급' 국가통신시설이 됐지만, 실제로는 화재 발생 시까지 D등급이 유지돼 KT가 자체 관리했다.

C등급 시설에 필요한 대체설비와 우회망이 확보되지 않았고, 아현국사 지하 통신구에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되지 않아 화재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통신사들은 불과 1주일 뒤인 12월 1일 '세계 최초' 5G 전파 송출을 홍보하기 위해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통신 3사는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같은 달 28∼29일 예정했던 5G 기자간담회를 일제히 취소하기도 했다.
◇ KT, 3년간 4천800억원 투자…정부도 통신재난관리 계획 발표
KT는 우선 사고가 난 직후 화재로 피해를 본 KT 유선 및 무선 가입 고객에게 1개월 요금을 감면했다.

회복이 늦게 된 동케이블 기반 인터넷 고객과 일반전화 고객에게는 각 2개월, 5개월의 요금을 더 감면해줬다.

요금 감면 대상은 중복된 인원을 제외하고 약 80만명이다.

KT는 국회, 소상공인연합회가 함께 참여한 'KT 화재 상생보상협의체'에서 지역 상점의 서비스 장애복구 기간에 따라 40만∼12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11월 현재까지 접수된 피해 1만3천550건 중 1만3천442건(99.2%)에 대해 지급이 완료됐다.

조직 재정비에도 나섰다.

KT는 올해 3월 3년간 4천800억원을 투자해 통신구 소방시설 보강, 통신국사 전송로 이원화, 수전시설 이원화, 외부통신시설(OSP·OutSide Plant) 개선, 통신주 및 맨홀 개선 등을 추진한다는 통신재난대응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5월에는 네트워크 부문 직속으로 통신 인프라 안전 조직을 신설하고 네트워크와 관련한 기능을 일원화했다.

전국 통신주 464만개, 맨홀 79만개 등 외부 통신시설을 전수 조사하고 있다.

이어 9월에는 통신구와 통신주, 맨홀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 '아타카마(ATACAMA)'를 공개했다.

5G 로봇이 통신구 화재를 감지해 진화하고 AI로 맨홀을 관리하는 OSP 관리 혁신솔루션도 공개했다.

빅데이터·AI·로봇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예방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KT는 테스트를 거쳐 2021년부터 이 솔루션을 전국 현장에 적용할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작년 12월 통신재난 때 타사 무선 통신망을 이용해 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D급 시설에도 우회망 확보를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통신재난 방지·통신망 안정성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모든 통신구가 의무적으로 소방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연말까지 무선 통신망 이용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서 내년 초에 통신 3사와 함께 필드에서 테스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정부·기업, 재발 방지 힘써야…5G 재난에 대한 토론도 필요"
전문가들은 KT와 정부의 이 같은 대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들이 보강 투자를 지속하면서 재발 방지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KT 화재는 원인이 파악되지 않는 이례적인 사고"라며 "5G 로봇을 개발하는 것보다 화재가 났을 때 빨리 통신단절을 복구할 수 있는지, 백업·복구 시스템 장비를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하 통신구에 불이 났을 경우 일반 건물보다 진화가 훨씬 어렵고, 피해 규모도 커진다"며 "KT 자체적으로 소방시설을 설치하고 자동소화 시스템을 통신선 내에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범위한 통신 장애 등 재난이 벌어졌을 때 국가재난으로 분류하고 정부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일본은 총무성 산하기관인 정보통신연구기구(NICT)가 통신재난에 체계적으로 대응한다.

강휘진 서강대 ICT 융합연구소 교수는 "통신재난은 법적으로 국가재난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 정부의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도 사각지대가 많다"며 "사업자에 재난 시 책임을 떠넘길 게 아니라 정부가 모니터링하고 위험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본격화할 5G 시대의 재난 대응책에 대해서도 사회적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양선희 ETRI 통신미디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5G 기반 스마트시티 청사진이 그려지지만, 통신 재난이 발생할 경우 어떤 부분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5G 설계 시부터 사고나 통신 장애가 발생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지 관계자 간 토론과 논의를 하고 대안 마련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철 ICT폴리텍대 멀티미디어통신학과 교수 역시 "5G 시대에는 교통, 경제, 산업이 다 연결되는데, 재난의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 있다"며 "5G 시대에서 재난이 발생하거나 단절이 일어나면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통신재난 표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