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자마자 목부터 축인 한일 국방, '지소미아 회담' 결국 평행선

5개월 만의 첫 대좌 '싸늘'…정경두 "日태도 바꿔라" vs 고노 "지소미아 유지해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방위상은 17일 태국 방콕에서 만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 등과 관련한 '담판'을 벌였으나 양국이 견지하는 입장차만 거듭 확인한 채 평행선으로 끝냈다.한일 국방장관회담은 지난 6월 1일 싱가포르에서 '초계기-레이더 사태' 해결을 위해 만난 이후 5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특히 정 장관과 고노 방위상 모두 취임 후 이날 첫 대좌였다.

처음 만남이어서 회담 모두발언 때는 애써 친근감을 표시하며 덕담을 주고받았으나, 정작 40분간의 회담 분위기는 그야말로 싸늘했다고 한다.정 장관은 회담 예정 시각인 오전 10시(현지시간) 회담장에 먼저 들어섰다.

그는 '양측에 변화 기류가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없어, 없어"라고 짧게 답했다.

회담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태도였다.이어 5분 늦게 고노 방위상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굳어진 표정으로 회담장에 나타났다.

그는 '새로운 제안을 할 것인가', '회담을 낙관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회담 테이블 앞에 일어서서 5초간 무표정으로 가볍게 악수를 했다.고노 방위상의 얼굴은 계속 굳었다.

양국 장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을 각자 들고 컵에 따랐다.

두 사람이 물병부터 집어 든 것은 최근 타들어 갈 듯 숨 막히게 답보 상태에 놓인 한일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행동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 장관은 회담 종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소미아 문제에 대해 "원론적인 수준에서 얘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회담에서 일본 측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철회 등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줄 것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노 방위상은 지소미아가 계속해서 유지되어 나가기를 바란다는 일본 정부의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정 장관은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회담이었지만, 그간 양국 정부가 보여온 기존 입장만을 확인하고 헤어진 것이다.
이번 회담은 오는 23일 0시에 시한이 만료되는 지소미아 문제에 대해 이견을 좁히는 사실상 '최후 담판' 성격이 강했다.

이번 회담을 끝으로 앞으로 닷새 내에 또 다른 당국 간 고위급회담이 열려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지소미아는 '효력 종료'라는 운명을 맞게 된다.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일 갈등 상황에 대해 "해군의 비유로 오랫동안 뱃머리가 내려가고 있었지만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해 한때 미국의 '중재'가 먹혀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한일 갈등 사안의 해법이 마련되는 등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는 뜻은 아닌 발언이었던 셈이다.

앞서 이번 회담에서도 지소미아에 대해 돌파구를 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한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 등을 면담한 자리에서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정 장관도 회담에서 이런 정부 입장을 고수하며 고노 방위상을 압박했으나, 일본 측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여기에다 회담 시작 2시간여를 앞두고 일본 정부가 한국의 수출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는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와 한미 간 회담 결과 등을 토대로 지난 15일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연장과 연계한 수출규제 철회 요구와 관련한 대응 방침을 재차 검토해 기존 입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미국에 통보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는 한국 요구와 관련한 대처 방침을 논의한 회의에서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입장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미국의 이해도 구했다고 보도했다.정부 관계자는 "일본 언론 보도의 사실 여부를 떠나 회담 시작 전에 일본 측이 찬물을 끼얹었다"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