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누출사고 후 8년8개월 '후쿠시마 원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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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내 오염 줄어 '안정'…오염수 보관은 한계 다가와
오염수 해양방류 검토에 반발 여론…"결정 시한까지 많이 남지 않아" 일본 후쿠시마(福島)는 세계적으로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곳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8개월여 전인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지역을 강타한 규모 9.0의 지진 탓이다.
이 지진은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켜 후쿠시마현 태평양 연안의 후타바(雙葉), 오쿠마(大熊) 등 두 마을(町)에 부지가 절반씩 걸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
당시 제1원전 6기의 원자로 중 오쿠마 마을 쪽의 1~4호기가 침수되면서 냉각장치 작동 중단으로 노심용융과 폭발이 일어나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해양으로 대량 누출된 것이 후쿠시마라는 지명을 세계인 뇌리에 각인시킨 사고의 개요다. 이 사고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기준으로 1986년의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최고 레벨(7)에 해당하는 '대재앙'이었다.
◇ 연간 2만명 '외부 방문객' 찾는 후쿠시마 제1원전
기자는 지난 13일 일본 후생노동성과 원자력안전연구협회(NSRA)가 외국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마련한 시찰 프로그램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현장을 밟았다. 발전소 구내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은 출입관리동.
이곳에서 청색 천 양말 두 켤레, 목장갑, 마스크 등 발전소 구내를 돌아다닐 때 착용할 용품이 든 비닐봉지 한 개를 받고 전신의 방사선량을 체크했다.
양말 두 켤레의 용도를 물으니 방사성 오염 물질이 묻는 경우 하나를 바로 벗으라는 답변이 나왔지만 다소 형식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좌석형 전신 선량 계측기에 앉아 버튼을 누르니 1분 만에 '정상'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전신 체크는 사고 원전 부지 안에 들어가는 방문객 중에서 지면을 밟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나올 때 다시 한번 측정해 방사성 물질에 어느 정도 노출됐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사고 수습 상황을 시찰할 목적으로 일본 국내외에서 연간 2만명 정도가 찾는데, 버스를 탄 채 내리지 않고 둘러보는 경우는 전신 체크를 거치지 않는다고 한다.
방사선, 방사능, 피폭 등에 관한 기초지식, 후쿠시마 원전 상황 등을 설명하는 브리핑이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기초지식 항목에선 원전 사고 관련 뉴스를 접할 때 자주 듣게 되지만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개념이 사실 알쏭달쏭한 베크렐(㏃, 방사능 물질의 붕괴횟수 단위)과 시버트(㏜, 인체피폭 방사선량 단위)에 관한 전문가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요약하면 베크렐은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방사능 강도를, 시버트는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것이었다.
특히 시버트(㏜)는 단위가 다르게 거론되는 사례가 많아 '1sv=1,000m㏜(밀리시버트)=1,000,000μ㏜(마이크로시버트)' 개념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 '국내외 지혜 모두 모아 폐로작업 안전 진행'
브리핑룸에서는 한 장의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내외의 영지(英智·뛰어난 지혜)를 결집해 장기간에 걸친 폐로 작업을 안전하고 착실하게 진행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다.
도쿄전력 폐로 담당 계열사인 '후쿠시마 제1폐로 추진 컴퍼니' 명의의 이 포스터가 던지는 메시지는 불가항력적인 대재앙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의 슬기를 모아 수습하겠다는 비장감을 보여주는 듯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의 피폭 상황과 제염 대책에 대해 국제사회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올바른 정보가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30~4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작업은 사고 후 9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초입 단계다.
본격적인 폐로 작업을 위한 준비 과정이지만 일평균 3천730명이 투입된다.
사고 수습이 한창이던 2014년 피크 때(7천여명)와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준 것으로, 60%가량은 후쿠시마 출신 도쿄전력 및 협력업체 직원이다.
아베 겐지(阿部賢治) 후쿠시마 제1폐로 추진컴퍼니 매니저는 "작년 5월부터 1~4호기 주변 도로가 G(그린)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방독면 등 전신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일반 작업복이나 구내 전용복 차림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이 발전소 전체의 96%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사고 원자로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의 누출은 막고 이미 오염된 곳은 포장하는 등 제염 작업을 마무리한 결과라고 했다.
도쿄전력 자료에 따르면 작업원의 월간 개인 피폭량은 올 8월 현재 0.25m㏜로, 최근 5년간 월 평균치(1.67m㏜)의 15%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가 국제 기준에 똑같이 맞춰 설정한 원전 작업자의 피폭량은 전신 기준으로 연간 20m㏜(5년 연속 근무 기준)라고 하니 후쿠시마 제1원전 내의 작업환경이 눈에 띄게 안정화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격적인 발전소 시찰은 자동발권기로 식권(390엔)을 개인별로 구입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인 낮 12시 30분께 시작됐다.
왠지 방사성 물질이 범벅된 곳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 때문에 방사선 피폭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휴대용 선량계에 자꾸 눈이 갔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출입동과 발전소 사이의 '벚꽃 거리'(사쿠라 거리).
원래 1천여 그루의 벚나무가 있던 널따란 숲이었는데, 사고 후 급증한 오염수를 둘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600여 그루를 베어내 숲 모습이 사라졌다.
벚나무가 사라진 공간에는 오염수가 담긴 거대한 탱크들이 시립하듯 줄지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탱크는 작은 것은 1천t에서 가장 큰 것은 3천t짜리도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 주변 지역의 어민은 물론이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이 주시하는 바로 그 탱크였다. ◇ 계속 생기는 오염수, 탱크 보관 한계 다가와
폐로 대상인 사고 원자로에서는 노심용융(멜트다운)으로 녹아내린 핵연료(데브리)를 식히기 위해 주입한 냉각수가 고농도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오염수로 바뀌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여기에 터빈 건물 주변을 흐르는 지하수와 지하로 스며든 빗물이 고농도 오염수와 섞이면서 오염수를 불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오염수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세슘-137, 스트론튬을 포함한 방사성물질이 63종이나 포함돼 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사고 후 원자로 주변의 지하수 등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지하 30m 깊이로 1천500m에 달하는 동토벽(凍土壁)을 두르는 등 오염수 발생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로 일평균 오염수 발생량을 2015년 4월~2016년 3월의 490t에서 2018년 4월~2018년 12월 기준으로 180t 수준까지 줄였다고 한다.
도쿄전력은 이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라는 장치로 일단 정화한 뒤 탱크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ALPS로 정화 처리된 오염수는 트리튬(삼중수소)이라는 방사성 물질은 걸러내지 못하고, 나머지 다른 핵종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도쿄전력 관계자도 "트리튬을 제외한 62 핵종의 '대부분'을 제거한다"고 표현했다.
현재 보관된 오염수 총량은 117만t 규모에 탱크 수로는 980개가 됐다.
도쿄전력은 향후 20만t의 저장용량을 증설할 계획이다.
그러나 향후 장기간의 폐로 과정에서 작업 공간 확보 등을 위해 전체적인 공간 재배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증설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배출 추이로 추산할 경우 2022년 말이 되면 더는 보관할 수 없게돼 오염수 처분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베 매니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데드라인에 대해 "만땅(증설 저장용량까지 찬다는 의미)이 되는 것은 2022년 말이지만 처리 방향은 그 전에 정해져야 한다"며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처분 방안을 놓고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경제산업성 산하의 오염수처리대책위원회 소위가 논의 중이다.
그간 검토돼 온 안은 오염수(일본 정부는 처리수라고 부름)를 희석 등의 방법으로 국제기준에 맞게 오염농도를 낮춘 뒤 해양으로 방류하는 것을 비롯해 지층주입, 수증기 방출, 전기분해 수소방출, 지하매설, 저장 계속 등 6가지다. 이 가운데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는 정상적인 원전의 오염수 처리수 처분 방법으로 쓰는 해양(태평양) 방류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 등은 정상적인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와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를 일으킨 현장에서 나온 오염수의 처리수는 똑같이 볼 수 없다며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우려를 나타내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어업을 영위하는 후쿠시마 주민들도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걱정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도쿄전력 관계자는 "사고 원전이나 정상 원전이나 과학적으로는 처리수의 차이가 없다고 본다"며 "그러나 정서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은 우리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리수 처분 방향에 대해선 "정부가 결정하는 대로 따른다는 것이 도쿄전력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 오염수 처리하는 ALPS…현재는 10% 수준만 가동 벚꽃 거리를 걸어가니 거대한 창고 모습의 건물이 보였다.
원전에서 배출되는 오염수를 파이프를 통해 받아들여 정화한다는 다핵종제거설비(APLS)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원래 가동 중이던 ALPS 1호기(250t×3대)와 사고 후 그 옆쪽으로 증설한 2(250t×3대)호기, 3호기(500t×1대) 등 모두 3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들 3기가 하루 처리할 수 있는 오염수 총량은 2천t 규모로, 현재 배출되는 오염수 양으로 따지면 10% 정도만 가동해도 괜찮은 상황이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원자로 1~4호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후쿠시마 원전 부지는 해발 35m인데, 원자로는 기존 터를 깎아 내 25m 아래인 해발 10m에 나란히 설치돼 있다.
건설 당시에는 냉각수로 쓰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사용하기 쉽게 한 '절묘한' 설계라는 평을 들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큰 화근이 됐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밀려온 쓰나미 높이가 원자로 바닥 높이를 5m가량 초과해 냉각장치 작동을 멈추게 한 침수 사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베 매니저는 그런 취지의 설명을 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소 폭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1호기를 기준으로 100m가량 떨어진 언덕에 설치된 선량계 수치는 0.11m㏜/h로 표시돼 있었다.
흉부 X-레이를 찍을 때(회당 0.1m㏜)나 도쿄~뉴욕 왕복 항공편을 한 차례 이용할 때(0.1m㏜) 노출되는 선량 수준이었다.
현재 1호기에서는 원격 조종되는 크레인으로 잔해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이고, 2호기는 핵연료 꺼내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로봇을 이용한 원자로 내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수소 폭발로 큰 피해가 발생한 3호기에서는 방사능 오염 물질 확산을 막기 위한 돔을 씌우고 핵연료 반출용 장비를 설치하는 등 폐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언덕 뒤편에는 잔해 제거와 철거 작업용 크레인을 원격으로 조종하는 컨트롤 센터가 있었다.
대형 버스를 개조해 만든 컨트롤 센터의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버스 앞면에 '할 수 있다'는 의미인 'Yes. It's possible'이란 영어 문구가 부착돼 눈길을 끌었다.
버스 측면에는 이 작업을 맡은 후쿠시마 현지업체인 '에이블' 직원의 자녀들이 그렸다는 그림 10장이 붙어 있는데,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힘내세요'와 '항상 감사해요'였다. 다음으로 안내받은 곳은 오염수 저장 탱크 증설 현장.
가이드를 맡은 아베 매니저는 "예전에는 철제 조립형 탱크를 사용했지만 누수 문제가 있어 지금은 용접형 탱크를 쓰고 있다"며 10m 높이의 1천200t 규모 탱크 1기를 세우는데 1주일가량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오염수 보관량을 늘리기 위해 탱크를 쌓아 올리거나 지하에 묻는 방법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안전 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1시간 50분가량 진행된 현장 투어 중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동일본대지진 발생 당시 정비 중이어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던 4호 원자로 건물이었다.
4호기 부속 건물 벽의 한참 위쪽에 '2011.3.11 Tsunami'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데, 그 지점이 바로 동일본대지진 당시 침수됐던 수위(해발 15m)였다. 4호기 앞에서는 지하수나 빗물이 원자로 쪽으로 흘러들어와 오염수가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장치라는 '동토벽'을 볼 수 있었다.
물이 흐르는 통로를 영하 30도의 얼음벽으로 차단하는 개념인 동토벽은 지하 30m 깊이에 1,500m 길이로 1~4호기를 둘러싸고 있다.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쿄전력 측은 오염수 발생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현장 투어를 마치고 출입동으로 돌아가 휴대용 선량계를 반납하면서 수치를 확인했다.
투어를 시작할 때 제로 상태이던 선량계 수치가 약 2시간 만에 0.02m㏜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치로는 흉부 X-레이를 한 차례 찍을 때 피폭량(0.1m㏜)보다 적게 나와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투어에 참가한 한 유럽인 기자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방사능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이슈라 다루기 어려운 과제다. "
/연합뉴스
오염수 해양방류 검토에 반발 여론…"결정 시한까지 많이 남지 않아" 일본 후쿠시마(福島)는 세계적으로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곳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8개월여 전인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지역을 강타한 규모 9.0의 지진 탓이다.
이 지진은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켜 후쿠시마현 태평양 연안의 후타바(雙葉), 오쿠마(大熊) 등 두 마을(町)에 부지가 절반씩 걸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
당시 제1원전 6기의 원자로 중 오쿠마 마을 쪽의 1~4호기가 침수되면서 냉각장치 작동 중단으로 노심용융과 폭발이 일어나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해양으로 대량 누출된 것이 후쿠시마라는 지명을 세계인 뇌리에 각인시킨 사고의 개요다. 이 사고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기준으로 1986년의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최고 레벨(7)에 해당하는 '대재앙'이었다.
◇ 연간 2만명 '외부 방문객' 찾는 후쿠시마 제1원전
기자는 지난 13일 일본 후생노동성과 원자력안전연구협회(NSRA)가 외국 언론 매체를 대상으로 마련한 시찰 프로그램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현장을 밟았다. 발전소 구내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은 출입관리동.
이곳에서 청색 천 양말 두 켤레, 목장갑, 마스크 등 발전소 구내를 돌아다닐 때 착용할 용품이 든 비닐봉지 한 개를 받고 전신의 방사선량을 체크했다.
양말 두 켤레의 용도를 물으니 방사성 오염 물질이 묻는 경우 하나를 바로 벗으라는 답변이 나왔지만 다소 형식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좌석형 전신 선량 계측기에 앉아 버튼을 누르니 1분 만에 '정상'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전신 체크는 사고 원전 부지 안에 들어가는 방문객 중에서 지면을 밟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나올 때 다시 한번 측정해 방사성 물질에 어느 정도 노출됐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사고 수습 상황을 시찰할 목적으로 일본 국내외에서 연간 2만명 정도가 찾는데, 버스를 탄 채 내리지 않고 둘러보는 경우는 전신 체크를 거치지 않는다고 한다.
방사선, 방사능, 피폭 등에 관한 기초지식, 후쿠시마 원전 상황 등을 설명하는 브리핑이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기초지식 항목에선 원전 사고 관련 뉴스를 접할 때 자주 듣게 되지만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개념이 사실 알쏭달쏭한 베크렐(㏃, 방사능 물질의 붕괴횟수 단위)과 시버트(㏜, 인체피폭 방사선량 단위)에 관한 전문가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요약하면 베크렐은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방사능 강도를, 시버트는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것이었다.
특히 시버트(㏜)는 단위가 다르게 거론되는 사례가 많아 '1sv=1,000m㏜(밀리시버트)=1,000,000μ㏜(마이크로시버트)' 개념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 '국내외 지혜 모두 모아 폐로작업 안전 진행'
브리핑룸에서는 한 장의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내외의 영지(英智·뛰어난 지혜)를 결집해 장기간에 걸친 폐로 작업을 안전하고 착실하게 진행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다.
도쿄전력 폐로 담당 계열사인 '후쿠시마 제1폐로 추진 컴퍼니' 명의의 이 포스터가 던지는 메시지는 불가항력적인 대재앙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의 슬기를 모아 수습하겠다는 비장감을 보여주는 듯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의 피폭 상황과 제염 대책에 대해 국제사회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올바른 정보가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30~4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작업은 사고 후 9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초입 단계다.
본격적인 폐로 작업을 위한 준비 과정이지만 일평균 3천730명이 투입된다.
사고 수습이 한창이던 2014년 피크 때(7천여명)와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준 것으로, 60%가량은 후쿠시마 출신 도쿄전력 및 협력업체 직원이다.
아베 겐지(阿部賢治) 후쿠시마 제1폐로 추진컴퍼니 매니저는 "작년 5월부터 1~4호기 주변 도로가 G(그린)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방독면 등 전신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일반 작업복이나 구내 전용복 차림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이 발전소 전체의 96%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사고 원자로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의 누출은 막고 이미 오염된 곳은 포장하는 등 제염 작업을 마무리한 결과라고 했다.
도쿄전력 자료에 따르면 작업원의 월간 개인 피폭량은 올 8월 현재 0.25m㏜로, 최근 5년간 월 평균치(1.67m㏜)의 15%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가 국제 기준에 똑같이 맞춰 설정한 원전 작업자의 피폭량은 전신 기준으로 연간 20m㏜(5년 연속 근무 기준)라고 하니 후쿠시마 제1원전 내의 작업환경이 눈에 띄게 안정화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격적인 발전소 시찰은 자동발권기로 식권(390엔)을 개인별로 구입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인 낮 12시 30분께 시작됐다.
왠지 방사성 물질이 범벅된 곳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 때문에 방사선 피폭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휴대용 선량계에 자꾸 눈이 갔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출입동과 발전소 사이의 '벚꽃 거리'(사쿠라 거리).
원래 1천여 그루의 벚나무가 있던 널따란 숲이었는데, 사고 후 급증한 오염수를 둘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600여 그루를 베어내 숲 모습이 사라졌다.
벚나무가 사라진 공간에는 오염수가 담긴 거대한 탱크들이 시립하듯 줄지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탱크는 작은 것은 1천t에서 가장 큰 것은 3천t짜리도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 주변 지역의 어민은 물론이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이 주시하는 바로 그 탱크였다. ◇ 계속 생기는 오염수, 탱크 보관 한계 다가와
폐로 대상인 사고 원자로에서는 노심용융(멜트다운)으로 녹아내린 핵연료(데브리)를 식히기 위해 주입한 냉각수가 고농도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오염수로 바뀌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여기에 터빈 건물 주변을 흐르는 지하수와 지하로 스며든 빗물이 고농도 오염수와 섞이면서 오염수를 불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오염수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세슘-137, 스트론튬을 포함한 방사성물질이 63종이나 포함돼 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사고 후 원자로 주변의 지하수 등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지하 30m 깊이로 1천500m에 달하는 동토벽(凍土壁)을 두르는 등 오염수 발생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로 일평균 오염수 발생량을 2015년 4월~2016년 3월의 490t에서 2018년 4월~2018년 12월 기준으로 180t 수준까지 줄였다고 한다.
도쿄전력은 이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라는 장치로 일단 정화한 뒤 탱크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ALPS로 정화 처리된 오염수는 트리튬(삼중수소)이라는 방사성 물질은 걸러내지 못하고, 나머지 다른 핵종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도쿄전력 관계자도 "트리튬을 제외한 62 핵종의 '대부분'을 제거한다"고 표현했다.
현재 보관된 오염수 총량은 117만t 규모에 탱크 수로는 980개가 됐다.
도쿄전력은 향후 20만t의 저장용량을 증설할 계획이다.
그러나 향후 장기간의 폐로 과정에서 작업 공간 확보 등을 위해 전체적인 공간 재배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증설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배출 추이로 추산할 경우 2022년 말이 되면 더는 보관할 수 없게돼 오염수 처분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베 매니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데드라인에 대해 "만땅(증설 저장용량까지 찬다는 의미)이 되는 것은 2022년 말이지만 처리 방향은 그 전에 정해져야 한다"며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처분 방안을 놓고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경제산업성 산하의 오염수처리대책위원회 소위가 논의 중이다.
그간 검토돼 온 안은 오염수(일본 정부는 처리수라고 부름)를 희석 등의 방법으로 국제기준에 맞게 오염농도를 낮춘 뒤 해양으로 방류하는 것을 비롯해 지층주입, 수증기 방출, 전기분해 수소방출, 지하매설, 저장 계속 등 6가지다. 이 가운데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는 정상적인 원전의 오염수 처리수 처분 방법으로 쓰는 해양(태평양) 방류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 등은 정상적인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와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를 일으킨 현장에서 나온 오염수의 처리수는 똑같이 볼 수 없다며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우려를 나타내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어업을 영위하는 후쿠시마 주민들도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걱정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도쿄전력 관계자는 "사고 원전이나 정상 원전이나 과학적으로는 처리수의 차이가 없다고 본다"며 "그러나 정서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은 우리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리수 처분 방향에 대해선 "정부가 결정하는 대로 따른다는 것이 도쿄전력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 오염수 처리하는 ALPS…현재는 10% 수준만 가동 벚꽃 거리를 걸어가니 거대한 창고 모습의 건물이 보였다.
원전에서 배출되는 오염수를 파이프를 통해 받아들여 정화한다는 다핵종제거설비(APLS)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원래 가동 중이던 ALPS 1호기(250t×3대)와 사고 후 그 옆쪽으로 증설한 2(250t×3대)호기, 3호기(500t×1대) 등 모두 3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들 3기가 하루 처리할 수 있는 오염수 총량은 2천t 규모로, 현재 배출되는 오염수 양으로 따지면 10% 정도만 가동해도 괜찮은 상황이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원자로 1~4호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후쿠시마 원전 부지는 해발 35m인데, 원자로는 기존 터를 깎아 내 25m 아래인 해발 10m에 나란히 설치돼 있다.
건설 당시에는 냉각수로 쓰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사용하기 쉽게 한 '절묘한' 설계라는 평을 들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큰 화근이 됐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밀려온 쓰나미 높이가 원자로 바닥 높이를 5m가량 초과해 냉각장치 작동을 멈추게 한 침수 사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베 매니저는 그런 취지의 설명을 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소 폭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1호기를 기준으로 100m가량 떨어진 언덕에 설치된 선량계 수치는 0.11m㏜/h로 표시돼 있었다.
흉부 X-레이를 찍을 때(회당 0.1m㏜)나 도쿄~뉴욕 왕복 항공편을 한 차례 이용할 때(0.1m㏜) 노출되는 선량 수준이었다.
현재 1호기에서는 원격 조종되는 크레인으로 잔해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이고, 2호기는 핵연료 꺼내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로봇을 이용한 원자로 내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수소 폭발로 큰 피해가 발생한 3호기에서는 방사능 오염 물질 확산을 막기 위한 돔을 씌우고 핵연료 반출용 장비를 설치하는 등 폐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언덕 뒤편에는 잔해 제거와 철거 작업용 크레인을 원격으로 조종하는 컨트롤 센터가 있었다.
대형 버스를 개조해 만든 컨트롤 센터의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버스 앞면에 '할 수 있다'는 의미인 'Yes. It's possible'이란 영어 문구가 부착돼 눈길을 끌었다.
버스 측면에는 이 작업을 맡은 후쿠시마 현지업체인 '에이블' 직원의 자녀들이 그렸다는 그림 10장이 붙어 있는데,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힘내세요'와 '항상 감사해요'였다. 다음으로 안내받은 곳은 오염수 저장 탱크 증설 현장.
가이드를 맡은 아베 매니저는 "예전에는 철제 조립형 탱크를 사용했지만 누수 문제가 있어 지금은 용접형 탱크를 쓰고 있다"며 10m 높이의 1천200t 규모 탱크 1기를 세우는데 1주일가량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오염수 보관량을 늘리기 위해 탱크를 쌓아 올리거나 지하에 묻는 방법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안전 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1시간 50분가량 진행된 현장 투어 중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동일본대지진 발생 당시 정비 중이어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던 4호 원자로 건물이었다.
4호기 부속 건물 벽의 한참 위쪽에 '2011.3.11 Tsunami'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데, 그 지점이 바로 동일본대지진 당시 침수됐던 수위(해발 15m)였다. 4호기 앞에서는 지하수나 빗물이 원자로 쪽으로 흘러들어와 오염수가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장치라는 '동토벽'을 볼 수 있었다.
물이 흐르는 통로를 영하 30도의 얼음벽으로 차단하는 개념인 동토벽은 지하 30m 깊이에 1,500m 길이로 1~4호기를 둘러싸고 있다.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쿄전력 측은 오염수 발생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현장 투어를 마치고 출입동으로 돌아가 휴대용 선량계를 반납하면서 수치를 확인했다.
투어를 시작할 때 제로 상태이던 선량계 수치가 약 2시간 만에 0.02m㏜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치로는 흉부 X-레이를 한 차례 찍을 때 피폭량(0.1m㏜)보다 적게 나와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투어에 참가한 한 유럽인 기자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방사능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이슈라 다루기 어려운 과제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