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격 맞은 듯한 지하철역·굳게 닫힌 상점…'유령도시'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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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이어진 시위로 칠레의 모습과 일상 완전히 변화
어두워지면 인적 끊겨…시위대 파괴 행위 놓고 의견 분분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도심 지하철역 바케다노 역은 공습이라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엔 돌과 건물 파편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주위 벽엔 '살인자' '저항하라' 등 살벌한 낙서가 가득했다.
유동 인구가 많던 이 역은 17일(현지시간)로 한 달째 폐쇄 상태다.
시위 한 달을 맞은 산티아고의 모습은 그야말로 '유령 도시'와도 같았다.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는 지난달 18일을 기점으로 급격히 대규모 시위로 격화했고, 시위대의 요구도 사회 불평등 전반의 해소로 확대됐다.
그리고 그 18일을 기점으로 산티아고의 풍경과 시민들의 일상도 완전히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위 초기의 방화와 약탈, 건물 파괴 등은 점차 줄었지만,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남았다. 바케다노 역은 시위 중심지인 이탈리아 광장에 가까운 지하철역이다. 일요일 한낮이었지만 역 주변의 상점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침입자들이 유리를 깨고 들어와 약탈할 것을 우려해 건물마다 두꺼운 나무판이나 철판을 두른 채였고, 그 위에는 시위 구호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드물게 문을 연 가게들도 영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없게 온통 보호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실 물을 사기 위해 문 연 편의점을 찾아 한참을 걸어야 했다.
30℃가 넘는 초여름 무더위에도 일찍부터 모인 시위대는 이탈리아 광장의 바케다노 동상 주변에서 시위를 벌였다.
국기를 흔들며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는 시위대는 정말 축구 응원이라도 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노래 가사는 원래의 "칠레 화이팅"이 아니라 "(대통령) 피녜라는 피노체트와 같은 살인자"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노랫소리는 을씨년스러운 주변 분위기와 겹쳐 묘한 분위기를 냈다.
도심보다 치안이 더 좋고 상대적으로 부촌인 프로비덴시아 지역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백화점조차 철문이 내려져 있었고, 버스 정류장은 유리창이 다 깨져 뼈대만 남았다.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 시위 속에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들도 곳곳에 넘쳐났다.
거리엔 나무 벤치도 보기 힘들었다.
시위대가 이미 뜯어내 불에 태우거나 바리케이드로 쓰기도 했지만 이를 우려해 당국이 미리 철거한 것도 있다고 했다.
'남미의 스위스'라고도 불렸던 칠레에 9년 전 1년 거주한 적이 있는 기자 눈에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당시 칠레는 중남미에서 드물게 밤에 걸어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한낮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불과 한 달 안에 생긴 변화다.
밤이 되면 분위기는 더 삭막해졌다.
부분 운행되는 지하철도 저녁 8시면 끊기고 그나마 문을 연 상점들도 어두워지기 전에 문을 닫아 길에서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여전히 많은 학생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회사들도 단축 근무를 하고 있다.
회사원 라리사 쿨레악(40)은 "저녁에 밖에 나가지 않은 지 한참 됐다"며 "낮에도 외출하려면 문을 연 가게와 식당을 한참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식당 종업원은 "근무시간이 줄어 시급도 줄었다"며 "그나마 난 일자리는 지켰지만 일을 못 하게 된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시위대에 공감하는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망가진 산티아고의 모습과 변해버린 일상을 안타까워했다.
교사인 카롤리나 세우라(48)는 "칠레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시위대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다만 이 모든 것을 복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금과 시간이 들겠는가.
시위 사태 속에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를 접은 것도 다 가난한 이들"이라고 꼬집었다.
세우라는 지난주 시위로 오래된 성당이 불에 탄 것을 가리키며 "이런 피해는 복구할 수도 없다"고 한탄했다.
반면 셰프인 프란시스코(50)는 "시위대와 무관하게 혼란을 틈타 약탈을 하는 이들은 분명히 잘못됐다"면서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위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변화를 위해 과격한 행동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프로비덴시아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면 더 부촌이 나온다.
동쪽 라스콘데스의 거리는 시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리에 나무판을 덧댄 건물이 종종 있었지만 도심을 뒤덮은 낙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휴교가 가장 먼저 풀린 곳도, 일상을 가장 빠르게 되찾은 곳도 동쪽 부촌이었다. 이 극명한 대비가, 과격한 행동을 통해서라도 변화를 이뤄내고 싶은 시위대의 분노와 절박함을 만들었을 것이다. /연합뉴스
어두워지면 인적 끊겨…시위대 파괴 행위 놓고 의견 분분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도심 지하철역 바케다노 역은 공습이라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엔 돌과 건물 파편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주위 벽엔 '살인자' '저항하라' 등 살벌한 낙서가 가득했다.
유동 인구가 많던 이 역은 17일(현지시간)로 한 달째 폐쇄 상태다.
시위 한 달을 맞은 산티아고의 모습은 그야말로 '유령 도시'와도 같았다.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는 지난달 18일을 기점으로 급격히 대규모 시위로 격화했고, 시위대의 요구도 사회 불평등 전반의 해소로 확대됐다.
그리고 그 18일을 기점으로 산티아고의 풍경과 시민들의 일상도 완전히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위 초기의 방화와 약탈, 건물 파괴 등은 점차 줄었지만,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남았다. 바케다노 역은 시위 중심지인 이탈리아 광장에 가까운 지하철역이다. 일요일 한낮이었지만 역 주변의 상점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침입자들이 유리를 깨고 들어와 약탈할 것을 우려해 건물마다 두꺼운 나무판이나 철판을 두른 채였고, 그 위에는 시위 구호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드물게 문을 연 가게들도 영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없게 온통 보호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실 물을 사기 위해 문 연 편의점을 찾아 한참을 걸어야 했다.
30℃가 넘는 초여름 무더위에도 일찍부터 모인 시위대는 이탈리아 광장의 바케다노 동상 주변에서 시위를 벌였다.
국기를 흔들며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는 시위대는 정말 축구 응원이라도 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노래 가사는 원래의 "칠레 화이팅"이 아니라 "(대통령) 피녜라는 피노체트와 같은 살인자"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노랫소리는 을씨년스러운 주변 분위기와 겹쳐 묘한 분위기를 냈다.
도심보다 치안이 더 좋고 상대적으로 부촌인 프로비덴시아 지역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백화점조차 철문이 내려져 있었고, 버스 정류장은 유리창이 다 깨져 뼈대만 남았다.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 시위 속에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들도 곳곳에 넘쳐났다.
거리엔 나무 벤치도 보기 힘들었다.
시위대가 이미 뜯어내 불에 태우거나 바리케이드로 쓰기도 했지만 이를 우려해 당국이 미리 철거한 것도 있다고 했다.
'남미의 스위스'라고도 불렸던 칠레에 9년 전 1년 거주한 적이 있는 기자 눈에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당시 칠레는 중남미에서 드물게 밤에 걸어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한낮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불과 한 달 안에 생긴 변화다.
밤이 되면 분위기는 더 삭막해졌다.
부분 운행되는 지하철도 저녁 8시면 끊기고 그나마 문을 연 상점들도 어두워지기 전에 문을 닫아 길에서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여전히 많은 학생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회사들도 단축 근무를 하고 있다.
회사원 라리사 쿨레악(40)은 "저녁에 밖에 나가지 않은 지 한참 됐다"며 "낮에도 외출하려면 문을 연 가게와 식당을 한참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식당 종업원은 "근무시간이 줄어 시급도 줄었다"며 "그나마 난 일자리는 지켰지만 일을 못 하게 된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시위대에 공감하는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망가진 산티아고의 모습과 변해버린 일상을 안타까워했다.
교사인 카롤리나 세우라(48)는 "칠레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시위대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다만 이 모든 것을 복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금과 시간이 들겠는가.
시위 사태 속에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를 접은 것도 다 가난한 이들"이라고 꼬집었다.
세우라는 지난주 시위로 오래된 성당이 불에 탄 것을 가리키며 "이런 피해는 복구할 수도 없다"고 한탄했다.
반면 셰프인 프란시스코(50)는 "시위대와 무관하게 혼란을 틈타 약탈을 하는 이들은 분명히 잘못됐다"면서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위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변화를 위해 과격한 행동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프로비덴시아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면 더 부촌이 나온다.
동쪽 라스콘데스의 거리는 시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리에 나무판을 덧댄 건물이 종종 있었지만 도심을 뒤덮은 낙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휴교가 가장 먼저 풀린 곳도, 일상을 가장 빠르게 되찾은 곳도 동쪽 부촌이었다. 이 극명한 대비가, 과격한 행동을 통해서라도 변화를 이뤄내고 싶은 시위대의 분노와 절박함을 만들었을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