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시위 한달] 피노체트의 유산, '중남미의 오아시스'를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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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군부독재 시절 민영화한 연금·의료보험 등 개선 요구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속에 빈부격차 심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지난달 초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칠레를 중남미의 "진정한 오아시스"라고 표현했다. 중남미 내에 경기 침체에 빠졌거나 성장이 정체된 국가, 정치적 위기를 맞았거나 반군 세력의 폭력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국가를 하나하나 나열하며, 칠레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얼마나 안정돼 있는지를 강조했다.
그 인터뷰로부터 열흘 후 칠레는 중남미 어떤 국가들보다 더 큰 혼란과 불안에 빠졌고 그 혼란은 18일(현지시간)로 꼭 한 달째가 됐다.
◇ "공기 빼곤 다 비싸"…지하철 요금 인상이 '깨운' 칠레 모래성 같던 '오아시스'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18일이었다.
지난달 6일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이 최대 30페소(약 50원) 오른 것이 시발점이었다.
학생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항의의 뜻으로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고 타는 시위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18일을 기점으로 급격히 과격해졌다. 지하철 요금 인상은 직전에 인상된 전기요금과 맞물려 잦은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고, 이는 너무 높은 교육비와 의료비, 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과 연금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칠레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양극화에 대한 반감도 부추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칠레는 중남미 내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지만 중남미의 고질적인 빈부격차에선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칠레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2017년 기준 0.46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칠레에선 상위 1%의 부자들이 부의 26.5%를 소유하고 있다.
하위 50%가 2.1%의 부를 나눠 가졌다.
인상 전 칠레의 올해 최저임금은 월 30만1천 페소로, 50만원에 못 미치는데, 근로자의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높은 월급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런데도 물가는 절대 싸지 않다.
결국 인상이 철회된 지하철 요금은 피크 시간 기준 1천300원이 넘어 서울과 비슷하다.
외식비 역시 서울과 비슷하거나 비싼 수준이어서 가난한 이들은 빵으로 세 끼를 해결하기 일쑤다.
교육도 의료보험도 공공 서비스는 열악하고, 더 비중이 높은 민간 서비스는 서민에겐 너무 비싸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마우리시오는 "칠레에서는 마시는 공기 빼고는 어느 것도 공짜가 없고, 모두 비싸다"고 한탄했다.
한 식당 종업원은 "한 달에 30페소 버는 데 집세가 30페소"라며 "팁이나 야근 수당 등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칠레가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된 국가로 여겨졌던 것은 경제 모델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침묵'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을 인내했던 빈자들의 침묵으로 만들어진 허약한 오아시스가 결국 그 한계를 만난 것이다.
◇ '30페소가 아닌 30년'…30년 누적된 폐해에 대한 불만 폭발
이러한 부조리의 뿌리는 1973∼1990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칠레 시내 곳곳에 적힌 시위대의 구호 중엔 '30페소가 아닌 30년'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지난 30년간 쌓여온 폐해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1973년 군부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을 몰아내고 집권한 피노체트는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대 출신 경제학자들을 기용해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그 중심에 있었다.
피노체트의 경제 모델 목표는 크게 경제 자유화와 국영기업의 민영화, 인플레이션 안정이었다.
국가의 역할로 여겨지던 연금, 의료보험, 교육 등이 민영화됐다.
시장 자유화로 해외 투자가 늘고 대기업이 성장하며 경제가 커졌지만 이미 그때부터 빈곤은 심화하고 빈부격차는 커졌다.
나오미 클레인의 책 '쇼크 독트린'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칠레 경제는 안정된 성장을 이뤄냈지만 인구의 45%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반면 부유한 10%의 소득은 83% 늘었다고 한다.
1990년 민주화 회복 뒤 좌파, 우파 정권이 여러 차례 자리를 바꿨으나 피노체트 집권 17년간의 경제 모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피노체트가 낳은 '괴물'은 30년간 점점 커져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
가난한 이들은 질 낮은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열악한 의료시설에서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은퇴 후에는 존엄성을 지키기 힘든 '쥐꼬리' 연금으로 생활해야 했다.
그렇게 30년을 참아온 분노가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폭발했다.
피노체트의 유산이 이번 시위에 미친 영향은 이것만이 아니다.
시위 초반 혼란이 격화하자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해 시내에 군을 투입하고 통행금지령을 발령했다.
도심에 군이 배치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피노체트 시절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군부독재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는 그들대로 정부가 과거의 공포심을 자극하려 한다는 데 반감을 갖게 됐고 이는 시위를 키운 요인 중 하나였다. 시위대가 정부의 강경 진압과 인권 침해를 비난할 때마다 피노체트의 이름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연합뉴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속에 빈부격차 심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지난달 초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칠레를 중남미의 "진정한 오아시스"라고 표현했다. 중남미 내에 경기 침체에 빠졌거나 성장이 정체된 국가, 정치적 위기를 맞았거나 반군 세력의 폭력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국가를 하나하나 나열하며, 칠레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얼마나 안정돼 있는지를 강조했다.
그 인터뷰로부터 열흘 후 칠레는 중남미 어떤 국가들보다 더 큰 혼란과 불안에 빠졌고 그 혼란은 18일(현지시간)로 꼭 한 달째가 됐다.
◇ "공기 빼곤 다 비싸"…지하철 요금 인상이 '깨운' 칠레 모래성 같던 '오아시스'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18일이었다.
지난달 6일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이 최대 30페소(약 50원) 오른 것이 시발점이었다.
학생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항의의 뜻으로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고 타는 시위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18일을 기점으로 급격히 과격해졌다. 지하철 요금 인상은 직전에 인상된 전기요금과 맞물려 잦은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고, 이는 너무 높은 교육비와 의료비, 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과 연금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칠레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양극화에 대한 반감도 부추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칠레는 중남미 내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지만 중남미의 고질적인 빈부격차에선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칠레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2017년 기준 0.46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칠레에선 상위 1%의 부자들이 부의 26.5%를 소유하고 있다.
하위 50%가 2.1%의 부를 나눠 가졌다.
인상 전 칠레의 올해 최저임금은 월 30만1천 페소로, 50만원에 못 미치는데, 근로자의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높은 월급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런데도 물가는 절대 싸지 않다.
결국 인상이 철회된 지하철 요금은 피크 시간 기준 1천300원이 넘어 서울과 비슷하다.
외식비 역시 서울과 비슷하거나 비싼 수준이어서 가난한 이들은 빵으로 세 끼를 해결하기 일쑤다.
교육도 의료보험도 공공 서비스는 열악하고, 더 비중이 높은 민간 서비스는 서민에겐 너무 비싸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마우리시오는 "칠레에서는 마시는 공기 빼고는 어느 것도 공짜가 없고, 모두 비싸다"고 한탄했다.
한 식당 종업원은 "한 달에 30페소 버는 데 집세가 30페소"라며 "팁이나 야근 수당 등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칠레가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된 국가로 여겨졌던 것은 경제 모델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침묵'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을 인내했던 빈자들의 침묵으로 만들어진 허약한 오아시스가 결국 그 한계를 만난 것이다.
◇ '30페소가 아닌 30년'…30년 누적된 폐해에 대한 불만 폭발
이러한 부조리의 뿌리는 1973∼1990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칠레 시내 곳곳에 적힌 시위대의 구호 중엔 '30페소가 아닌 30년'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지난 30년간 쌓여온 폐해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1973년 군부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을 몰아내고 집권한 피노체트는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대 출신 경제학자들을 기용해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그 중심에 있었다.
피노체트의 경제 모델 목표는 크게 경제 자유화와 국영기업의 민영화, 인플레이션 안정이었다.
국가의 역할로 여겨지던 연금, 의료보험, 교육 등이 민영화됐다.
시장 자유화로 해외 투자가 늘고 대기업이 성장하며 경제가 커졌지만 이미 그때부터 빈곤은 심화하고 빈부격차는 커졌다.
나오미 클레인의 책 '쇼크 독트린'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칠레 경제는 안정된 성장을 이뤄냈지만 인구의 45%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반면 부유한 10%의 소득은 83% 늘었다고 한다.
1990년 민주화 회복 뒤 좌파, 우파 정권이 여러 차례 자리를 바꿨으나 피노체트 집권 17년간의 경제 모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피노체트가 낳은 '괴물'은 30년간 점점 커져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
가난한 이들은 질 낮은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열악한 의료시설에서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은퇴 후에는 존엄성을 지키기 힘든 '쥐꼬리' 연금으로 생활해야 했다.
그렇게 30년을 참아온 분노가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폭발했다.
피노체트의 유산이 이번 시위에 미친 영향은 이것만이 아니다.
시위 초반 혼란이 격화하자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해 시내에 군을 투입하고 통행금지령을 발령했다.
도심에 군이 배치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피노체트 시절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군부독재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는 그들대로 정부가 과거의 공포심을 자극하려 한다는 데 반감을 갖게 됐고 이는 시위를 키운 요인 중 하나였다. 시위대가 정부의 강경 진압과 인권 침해를 비난할 때마다 피노체트의 이름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