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콩 경찰 '고사작전'에 시위대 '최후 보루' 사실상 함락

경찰 '36시간 전면 봉쇄' 못 버티고 이공대서 600여명 빠져나와
'전쟁터' 방불했던 이공대 주변 적막만 흘러…"교내 50여명 남아"
경찰 "저격수·특공대 있다" 으름장…시위대, 진로 놓고 '갑론을박'
19일 낮 홍콩 훙함 지역의 홍콩이공대 주변에는 적막만이 흘렀다.경찰이 홍콩이공대 교정을 따라 길게 쳐놓은 수 백미터 길이의 주황색 폴리스 라인 주변에는 허리에 방독면과 헬멧을 차고 어깨에는 소총을 멘 폭동 진압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전날 경찰과 이공대 내 시위대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최루탄과 고무탄을 마구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에 맞서 시위대는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폴리스 라인으로 다가간 기자를 폭동 진압 경찰이 저지하고 나섰다.

절대 교내로 들어갈 수 없다고 밝힌 그는 이공대 내에 학생이 몇 명이나 남았느냐는 질문에 "자세히는 나도 모른다.

다만 대부분 학생들이 떠나고 소수의 학생만 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이공대 주변에는 전날 '전투'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길거리에는 최루탄 껍데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길거리에는 시위대가 깬 보도블록이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홍콩 시위대는 경찰 차량의 진입을 막기 위해 보도블록을 깨서 도로 위에 흩뜨려 놓는다.이공대 바로 옆 침사추이 지역의 한 점포 셔터 위에는 '나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我反抗. 故我在)'라고 적힌 낙서도 적혀 있었다.

길가에는 친중 재벌로 알려져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된 맥심 그룹이 운영하는 스타벅스 매장 유리창이 심하게 깨진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구호' caption=''/>

이공대는 홍콩 시위대 '최후의 보루'로 불린다.

지난주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던 홍콩 중문대를 비롯해 시립대, 침례대 등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위대가 철수한 만큼, 이공대는 홍콩 시위대 입장에서 마지막 근거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기자가 둘러본 이공대 모습은 시위대 '최후의 보루'가 사실상 무너졌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이날 오전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전날 밤 600여 명의 시위대가 이공대 캠퍼스를 떠났다"며 "남아 있는 시위대가 가능한 빨리 캠퍼스를 떠날 수 있도록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이공대 내 시위대의 패배는 예고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홍콩 경찰은 지난 17일 저녁부터 이날 오전까지 36시간 동안 '이공대 전면 봉쇄 작전'을 펼쳤다.

음향 대포와 물대포까지 쏘며 압박하면서 음식, 옷, 모포 등 생필품의 반입을 전면 차단했다.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많은 부상자가 생겼지만, 응급 구조요원이 부족해 이들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물대포에 흠뻑 맞은 시위대는 저체온증에 시달려야 했고, 추위와 배고픔, 피로에 지친 시위대 내에서 분열이 생겼다.

일부는 '결사 항전'을 외쳤지만, '일보 후퇴'를 주장하는 시위대도 적지 않았다.
전날 밤 입법회 의원인 입킨웬 등이 10대 학생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돕기 위해 이공대 내에 들어가자 상당수 학생이 그를 따랐다.

홍콩 경찰은 18만 미만 학생의 경우 당장은 체포하지 않겠지만, 이후 기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무렵 50여 명의 학생이 다시 경찰에 투항하면서 이제 이공대 내에는 50명에서 200명 사이의 시위대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경찰은 10대들의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적고 사진만 찍은 채 보내줬지만, 성인 시위자는 곧바로 체포했다.
시위대가 활, 투석기 등까지 동원했지만 경찰의 막강한 화력을 당해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 지휘관인 줘샤오예(卓孝業)는 "시위대의 폭력 행위에 맞서 적절한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며 "우리에게는 전문훈련을 받은 저격수와 특수부대인 비호대(飛虎隊)"가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공대 시위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은 'MP5' 돌격용 자동소총, 'AR-15' 자동소총, 'SIG 526' 돌격용 반자동소총 등 막강한 화력을 갖춘 모습이 목격됐다.

전날 침사추이 지역 시위에서 경찰 기동부대 속룡대(速龍隊)가 'SIG 526' 반자동소총으로 시위대를 겨냥하는 모습도 포착됐으나, 실제로 쏘지는 않았다.
홍콩 시위대 내에서는 향후 진로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이공대 내에 소수 시위대만 남아있더라도 결코 항복해서는 안 되며, '결사 항전'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콩 시위대가 즐겨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LIHKG에는 '최후통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염소가스탄'이라는 이름으로 밀봉한 유리병 사진을 찍어 올린 시위자는 "맹독성인 '염소가스 폭탄' 개발에 성공했으며, 경찰이 이공대 캠퍼스 봉쇄를 풀고 철수하지 않으면 경찰 숙소 등에 이 폭탄을 던져 '학살'하겠다"고 위협했다.

다른 시위자는 "이공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실종된 사람이 수십 명에 달한다"며 경찰의 과잉 진압에 희생된 사람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과격한 투쟁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시민의 호응을 얻는 투쟁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한 시위자는 "우리의 '여명(黎明·아침) 행동'조차 길이 막혀 불편을 겪은 시민들로 인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며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투쟁 방식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시위자는 "우리의 마지막 보루였던 이공대마저 무너질 위기에 놓였지만, 우리가 지금껏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절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지난 6월 초 시작돼 이제 6개월째 접어든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 채 희생만 컸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향후 시위대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