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제 지정에도…강남 당첨가점 '사상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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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규제의 '역설'서울 아파트 당첨 ‘커트라인’이 역대 최고인 69점대로 올라섰다. 3인 가족이거나 만 45세 미만이면 아예 채울 수도 없는 점수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후 청약시장이 과열되면서 내집 마련 문턱이 높아지는 ‘규제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가점 커트라인 ‘역대 최고’19일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이날 당첨자를 발표한 ‘르엘신반포센트럴’의 당첨자 최저 가점은 69점을 기록했다. 일반분양을 받은 4개 주택형에서 모두 같은 점수가 나왔다. 서울 청약시장에서 역대 가장 높은 커트라인이다. 종전 최고이던 64점을 2개월여 만에 뛰어넘었다.
'르엘신반포' 커트라인 69점 기록
3인 가족·45세 미만 당첨 불가능
평균 가점도 71.04점 역대 최고
69점은 4인 가족 청약자가 채울 수 있는 최고 가점이다. 배우자 자녀 등 부양가족이 3명(20점)이면서 무주택기간을 15년(32점)까지 꽉 채워야 한다. 청약통장 가입기간도 15년이 넘어 최고점(17점)을 받아야 가능한 점수다. 3인 가족이라면 ‘그림의 떡’이란 의미다.
나이 기준으로 보면 40대 중후반이 아니고선 달성할 수도 없는 점수다. 무주택기간은 만 30세부터 가점을 계산하기 때문이다(만 30세 이전 혼인인 경우 예외). 이 나이부터 무주택기간 만점(32점)을 채우려면 만 45세가 지나야 한다. 30대는 물론 40대 초반 무주택자까지 강남 새 아파트에 입성하긴 어려워진 셈이다.이 아파트는 이달 6일 분양가 상한제 대상지역 지정 직전 입주자모집공고를 내 상한제 적용을 피했다. 그러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관리 규정에 따라 주변 시세보다 낮은 3.3㎡당 평균 4891만원에 분양가를 책정했다. 전용면적 84㎡의 분양가가 14억5000만~16억9000만원대다. 입주 10년을 넘긴 인근 ‘래미안퍼스티지’의 같은 주택형과 10억원 이상 차이난다.
이 때문에 청약 광풍이 불었다. 135가구 모집에 1만1804명이 청약통장을 던져 82.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13가구를 모집한 전용 59㎡A형의 경쟁률은 229.4 대 1을 기록했다. 커트라인뿐 아니라 당첨자의 평균 가점 수준도 높았다. 당첨자들의 평균 가점은 71.04점으로 역대 최고다. 지난해 10억원 로또로 불리며 3만 명 이상의 청약이 몰렸던 ‘디에이치자이개포’(68.20점)보다 높은 점수다.규제의 역설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발(發) 규제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4월 말 유예기간이 끝난 뒤 상한제 적용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판단한 무주택자가 미리 통장을 쓰고 있다는 진단이다. 김병기 리얼하우스 분양평가팀장은 “상한제가 적용되면 최대 10년의 전매제한이 생긴다”며 “이에 부담을 느끼는 실수요자가 청약시장에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수요자 사이에서도 차라리 지금 청약하는 게 유리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르엘신반포센트럴 모델하우스를 찾았던 이미숙 씨(42)는 “상한제가 시행되면 아파트값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매제한을 피한 단지를 분양받아 신축 효과가 떨어지기 전에 파는 게 낫다”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 전부터 서울 아파트 당첨 문턱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월 상한제 요건 개정을 골자로 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 발표 이후 이날까지 서울에서 청약을 받은 9개 단지의 당첨 가점 커트라인은 평균 54.88점이다. 직전 31개 단지의 평균(37점)보다 18점가량 높다. 아이 세 명을 더 낳아도 충족하지 못하는 점수다. 지난해 평균(42.64점·28개 단지)과 비교해도 차이가 두드러진다.강남 새 아파트는 60점대를 넘긴 지 오래다. 9월 ‘래미안라클래시’와 ‘역삼센트럴아이파크’의 커트라인이 64점을 기록했다. 3인 가족이 채울 수 있는 최고 가점이다. 강북 나홀로 아파트도 웬만한 점수로는 당첨되기 힘들다. 이달 초 청약을 받은 ‘힐스테이트창경궁’의 최저 가점은 50점을 기록했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상한제가 본격 작동하면 지금의 고가점 현상조차 예고편에 불과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수요자들은 더 저렴한 아파트를 기다리고 있지만 사업성에 타격을 입은 정비사업 단지들이 제때 분양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