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규제 묶인 케이뱅크…"사업 기회라도 달라"

1호 인터넷銀 행장의 호소

KT 통한 자본금 확충 막혀
"포기한 혁신 사업만 수십개"
“영업을 본격적으로 해보기도 전에 손발이 묶여버렸습니다.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려 했는데….”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심성훈 행장(사진)은 1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업을 해볼 기회라도 달라”고 호소했다. 케이뱅크는 인터넷은행의 대명사가 된 카카오뱅크보다 석 달 이른 2017년 4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출범 3년이 채 되지 않아 자금난으로 고사(枯死) 위기에 몰렸다.케이뱅크는 자금 여유가 없어 지난 4월부터 7개월 넘게 대출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 은행을 통틀어 신규 대출을 취급하지 못하는 곳은 케이뱅크뿐이다. 올 1~3분기엔 742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심 행장은 “자본만 확충했어도 이 정도까지 주저앉지 않았을 것”이라며 “포기한 사업만 수십 개가 넘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케이뱅크는 올해 1조원 이상의 자본금을 확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대주주로 세우려던 KT가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게 되면서다. 인터넷은행특별법엔 산업자본이 법령을 초과해 은행 지분을 보유하려면 5년간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이유로 KT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아예 중단했다.심 행장은 “인터넷은행 도입 취지가 정보통신기술(ICT) 주도의 새로운 혁신인데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좌초 위기 몰린 케이뱅크, 투자자 찾아 싱가포르까지…

금융권 안팎에선 좌초 위기에 몰린 케이뱅크를 둘러싼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혁신 1호’인 케이뱅크가 규제에 막혀 기본적인 영업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케이뱅크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금융권의 전언이다. 유상증자 계획이 틀어진 데 따라 케이뱅크는 자본금 부족으로 지난 4월부터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자본적정성도 떨어지면서 케이뱅크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6월 말 10.62%까지 추락했다. 국내 19개 은행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융당국의 권고 기준(10%)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연말까지 자본을 확충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의 관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법 위반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인터넷은행 특례법 개정안은 김종석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5월 대표 발의했지만 번번이 우선순위에 밀려 논의되지 못했다. 지난달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다가 보류된 적도 있다. 21일 법안소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케이뱅크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해외 투자자 유치에 나섰다. 케이뱅크는 이달 말 싱가포르에서 대형 펀드를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국내 투자 경험이 있는 싱가포르 현지 펀드를 설득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심 행장은 “싱가포르는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은행 도입에 적극적인 분위기여서 국내 인터넷은행 시장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주요주주를 대상으로 소규모 증자를 추진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하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행 특례법에서 대주주 자격 요건이 완화되지 않고서는 정보통신기술(ICT) 주도의 금융 혁신이 일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ICT기업에 한해 34%까지 지분을 허용하는 특례법이 올해 1월 시행됐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며 “공정거래법 등 ICT업계 현실에 맞지 않는 잣대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심성훈 행장은 “기존 인터넷은행은 물론 향후 나올 제3, 제4 인터넷은행을 육성하려면 ICT 기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